[최씨네 리뷰] '요즘' 옷 입고, 갈 길은 잃다…최민식·한소희 '인턴'

영화 인턴 스틸컷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 '인턴' 스틸컷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리메이크작의 운명은 가혹하다. 훌륭한 원작을 둔 작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잘해도 본전이고, 못하면 원작을 훼손했다는 비난이 뒤따른다. 리메이크 영화들은 여타 작품들보다 증명해야 할 게 많아서다. 원작의 정서를 지키면서도 이 시대에 다시 꺼낼 이유를 찾아야 한다.

창업 3년 만에 100억대 매출을 달성하며 브랜드 '우투투(WOO22)'를 패션 업계의 다크호스로 성장시킨 젊은 CEO '선우'(한소희 분). 성공을 향해 쉼 없이 달려온 열정 과부하 상태의 그녀 앞에 막내로 입사한 실버 인턴 '기호'(최민식 분)가 나타난다. 경력 37년 사회생활 만렙의 베테랑이지만 낯선 디지털 업무 환경과 자유분방한 문화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던 '기호'. 그러나 특유의 성실함과 인간미 넘치는 소통은 서서히 '선우'의 마음을 움직이고 모든 면에서 다른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없는 시선과 경험을 나누며 쉼 없이 달리던 일상에 뜻밖의 온기를 더한다.

2015년 개봉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인턴'은 경험 많은 70세 인턴과 젊은 CEO의 만남을 통해 세대를 넘어선 연대와 성장을 그리며 국내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현 세대에게 필요한 '어른', 바쁘고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과 나아가야 할 길을 '벤'(로버트 드니로 분)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2026년, 다시 스크린에 걸린 한국판 '인턴'(감독 김도영)은 원작의 익숙한 뼈대에 2026년 한국 사회의 옷을 새로 입혔다. 패션 스타트업의 현실과 디지털 업무 환경, AI에 익숙한 직장인들의 생태계까지 일터의 풍경을 현재형으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다.
영화 인턴 스틸컷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 '인턴' 스틸컷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한국판 '인턴'의 가장 큰 미덕은 시대를 옮겨오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점이다. 11년 전 미국 스타트업의 풍경을 맹목적으로 답습하는 대신 세금 혜택을 노려 실버 인턴을 채용하거나 AI에게 업무 문구를 묻는 2026년 한국의 직장 문화를 영리하게 포착해 냈다.

선우의 행보는 현 시대와도 맞닿아 있다. 원작과는 다른 길이다. 흔들리는 순간에도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선택들은 원작의 가치관을 낡은 방식으로 끌어안기보다 현시대의 관객이 온전히 납득할 수 있는 주체적인 방향으로 조정됐다. 시대에 맞는 공감대를 형성하려 한 연출의 영리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영화의 치명적인 한계도 드러난다. 시대의 외피는 매끄럽게 갈아입었으나 정작 이 작품이 무엇을 새롭게 말하고자 하는지 그 서사의 중심축은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원작 '인턴'이 세대와 국경을 넘어 찬사를 받은 이유는 단순히 젊은 사장과 나이 든 인턴의 무난한 우정을 그렸기 때문이 아니다. 빠르고 젊은 감각만이 정답이라 믿는 삭막한 세상에서, 천천히 상대의 말을 듣고 묵묵히 중심을 잡아주는 '벤'의 아날로그적 미덕을 통해 '좋은 어른의 필요성'을 뭉클하게 증명해 냈기 때문이다.

김도영 감독의 '인턴'은 어른의 몫과 신사다운 태도를 깊이 있게 조명하는 대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발을 맞추며 공존하려는 '균형 맞추기'에 집중한다. 그러나 세대 갈등이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화합해 가는 과정이든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는 않았다. '감다살'('감 다 살았다'는 뜻의 유행어)이나 '영크크'(영 크리에이티브 크루의 줄임말) 같은 신조어로 얼버무리기엔 세대 갈등의 골이 너무 깊다.
 
영화 인턴 스틸컷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 '인턴' 스틸컷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헐거운 서사의 빈자리는 배우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70대 인턴 기호 역의 최민식은 묵직함과 능청스러운 유머를 덧입혀 극을 견인한다. 다만 캐릭터 자체로는 '기호'의 활약이 또렷하지는 않다. 원작 '인턴'의 '벤'이 보여준 적재적소의 조언이나 깊이 있는 통찰이 '기호'로는 보이지 않고 '최민식'으로만 보인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좋은 어른, 젊은 세대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기호'의 인상은 캐릭터가 아니라 '최민식'이라는 배우 자체가 만들어 낸 것에 가깝다. 한소희는 워커홀릭 CEO '선우'의 날카로움과 불안을 그려낸다. 한국판 '인턴'이 원작과 다른 색깔을 내는 데 한소희의 지분이 컸다. 캐릭터의 아쉬움과는 별개로 한소희와 최민식이 빚어내는 케미스트리는 충분히 흥미롭다.

'인턴'은 리메이크의 딜레마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원작을 그대로 옮기기만 하면 리메이크로서 존재 이유가 없다. 시대를 옮겨왔다면 그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화두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인턴'은 2026년의 직장,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풍경을 성실하게 옮겨놓았지만 정작 '이 시대에 필요한 어른은 누구인가'라는 스스로 던진 질문에는 답하지 못했다. 132분에 달하는 러닝타임도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 긴 시간 동안 설명할 만큼 서사가 완성도를 갖추고 있지는 않다.

2026년에 걸맞은 옷을 갖춰 입었지만 '예쁜 옷'을 입은 '인턴'이 정확히 어디로 가고 싶은지 방향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턴'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추석 극장가에 어울리는 안정적인 선택지이기는 하다. 16일 개봉. 러닝타임은 132분, 관람등급은 12세 이상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