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안보와 원유 수출을 둘러싼 딜레마에 빠졌다. 이란과 친이란 세력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사우디가 전면적인 군사 작전에 나서기도, 협상에 나서기도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군사적 지원마저 불확실해 사우디의 선택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고 AP 통신이 13일 보도했다.
'호르무즈' 대체 핵심 수송로 피격...친이란 세력 소행 의심
최근 육상과 해상에서 사우디의 원유 수송망이 잇따라 흔들리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12일(현지시각) 사우디 리야드·메디나 지역을 겨냥한 드론 공격이 발생해 동부 유전지대에서 홍해 연안 얀부항으로 원유를 운송하는 동서 파이프라인의 가동이 이날 중단됐다.
약 1200㎞에 달하는 이 송유관은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사우디산 원유를 홍해로 운송할 수 있는 핵심 대체 수송로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비해 하루 약 500만 배럴의 원유를 이 경로로 우회 수송해왔다. 이는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4∼5%에 달하는 규모다.
바브엘만데브 요충지 장악하며 압박하는 후티 반군
사우디의 해상 수송로도 위협받고 있다.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가 최근 홍해 연안에서 세력을 빠르게 확대하면서다. 11일 AP와 AFP에 따르면 후티는 홍해 연안의 주요 항구인 모카를 장악한 데 이어 하루 만에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전략적 요충지인 페림섬까지 점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홍해 입구의 핵심 해상 관문이다. 이곳에서 후티의 장악력이 확대될수록 사우디가 홍해를 통해 원유를 수출하는 길도 위협받게 된다.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기 위해 확보해 둔 대체 수송로가 육상과 해상에서 동시에 흔들리는 셈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1일 사우디의 원유 공급량이 30여 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후티와 연계된 단체들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을 공격한 것도 원인 중 하나로 짚었다.
전쟁도 협상도 부담…美 군사 지원도 불확실
문제는 사우디가 후티에 대한 군사 대응을 전면전으로 확대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사우디가 공세를 강화하면 전쟁이 장기화하는 것은 물론 후티가 사우디의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보복 공격을 더욱 확대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2015년부터 아랍 연합군을 결성해 예멘 내전에 개입해 후티 반군과 전쟁을 벌였지만, 지상전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전쟁으로 약 15만명이 숨지고 예멘은 기근 위기에 놓였다. 2022년 휴전 이후 사우디는 자국의 경제 개혁과 지역 안정에 집중해왔다. \
중동 전문가 닐 퀼리엄은 AP에 "최근 후티의 진격으로 사우디가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은 커졌지만, 가능한 모든 선택지에는 상당한 비용과 불확실한 결과가 따른다"고 말했다.
외교적 해법도 쉽지 않다. 후티가 협상 조건에 사우디의 공습 중단과 예멘 봉쇄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사우디로서는 이를 받아들일 경우 후티의 영향력이 장기적으로 더 커질 수 있다는 부담이 있다.
미국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우디와 다른 걸프 국가들은 수십 년간 미국의 안보 보장에 의존해왔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의 개입 의지가 예전보다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두 차례 전화해 후티를 공격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대신 미국은 사우디에 후티 타격을 위한 표적 관련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AP는 미국이 현재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해 이란을 압박하고 선박에 대한 공격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는 만큼 예멘에서 또 다른 군사작전에 나설 여력도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또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내 전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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