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일본을 직접 지목해 재정 확대와 금융완화를 함께 추진하는 '리플레 정책' 중단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그동안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일본이 엔화 강세로 이어질 조치에 나설 것으로 믿는다며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을 우회적으로 주문하는 수준에 그쳤으나 이번에는 다카이치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까지 바꾸라고 요구했다. 이 같은 미국 측의 공개 압박에 일본이 어떻게 나설지 주목된다.
3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베선트 장관은 1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일본을 직접 지목해 "리플레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다카이치 정부에 적극적 재정 기조의 수정을, BOJ에는 엔화 약세를 바로잡기 위한 금리 인상을 요구한 것이다.
베선트 장관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2차 아베 내각이 추진한 아베노믹스를 언급했다. 그는 아베노믹스를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출을 이끈 성공적인 정책으로 평가하면서 물가상승률이 2%에 도달했다면 리플레 정책은 이미 목표를 달성한 것이며, 이제는 그 성공이 가져올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다카이치노믹스"라며 당시와 달라진 경제 상황에 맞춰 정책을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통상 '사나에노믹스'라고 불리는 다카이치 총리의 경제정책을 베선트 장관은 '다카이치노믹스'라고 표현했다.
요미우리는 베선트 장관의 비공개 불만이 공개 압박으로 바뀐 것은 일본의 재정정책과 그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한층 커졌기 때문으로 봤다. 미국 정부는 일본의 장기금리 상승이 미국 금융시장으로 번질 가능성도 경계하고 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4.8%까지 올라 2025년 1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정부로서는 장기금리 상승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끌어올려 유권자 부담을 키울 가능성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 정부의 설명은 베선트 장관의 발언과 엇갈렸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가타야마 재무상은 1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일본의 재정정책에 우려를 나타냈느냐는 질문에 "놀랄 만큼 없었다"고 답했다. 주요 7개국(G7) 가운데 일본의 단년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작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다카이치 정부가 경제성장과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양립시키겠다고 설명해 베선트 장관을 비롯한 각국 참석자들의 공감을 얻었다고도 주장했다. 미국은 일본에 정책 전환을 요구했다고 밝혔지만, 일본은 오히려 자국의 정책 방향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공감을 얻었다고 설명한 것이다.
우에다 총재도 미국 측의 요구에 선을 그었다. 그는 1일 기자회견에서 환율 움직임에 종전보다 강하게 반응할 필요가 생겼느냐는 질문에 "그런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만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우에다 총재는 이달 17~18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금리를 올릴지 묻는 말에 "다음 회의를 포함해 매번 회의에서 확실히 논의하고 싶다"고 답해 인상 가능성 자체는 열어뒀다. 닛케이에 따르면 시장이 반영한 9월 금리 인상 확률은 2일 오후 기준 97%에 달했다.
미·일 간 인식 차가 드러난 가운데, 미국의 압박은 이번 기자회견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요미우리는 향후 환율과 채권시장 동향에 따라 오는 10월 차기 G20 회의를 앞두고 베선트 장관이 일본에 정책 전환을 거듭 요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실제 정책 운용이 당장 크게 달라지기보다는 대외적인 설명 방식부터 바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이와증권의 스에히로 도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다카이치 정부가 베선트 장관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기보다 이미 리플레 정책 단계에서 벗어났다고 설명하는 한편, 적극재정 색채를 점차 약화하고 시장 안정과 재정 규율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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