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은사 영결식에서 법주사 다비까지, 명진 스님의 마지막 순례 ㅡ
2026년 8월 25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봉은사 대웅전 앞마당에 맑고도 묵직한 종소리가 울렸다. 명종 다섯 타였다. 사흘 전인 8월 22일 제주 서귀포 하예포구 인근 바다에서 갑작스럽게 입적한 명진(明盡)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 세수 76세, 법랍 52년. 열아홉 살에 출가한 뒤 반세기를 넘게 수행자의 길을 걸었던 한 사람이 이제 마지막 의식을 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장례는 한 사찰이나 한 종단만의 장례가 아니었다. 대한불교조계종과 시민사회가 함께 마련한 종교시민사회장이었다. 불교계 스님과 신도들은 물론 천주교와 개신교 등 이웃 종교인, 시민사회와 학계·문화예술계 인사, 정치인, 노동자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까지 봉은사를 찾았다. 명진 스님이 생전에 얼마나 넓은 세상을 자신의 수행처로 삼았는지를 그의 마지막 길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탄성문도회 회장 도공 스님은 영결사에서 명진 스님에게 사회운동과 종단개혁마저 수행의 한 방편이었다고 회고했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자비 또한 깊어져야 한다는 것이 명진이 이해한 불교였다. 중생이 아프면 수행자도 아파야 하고, 세상에 억울한 사람이 있다면 그 곁에 서는 것 또한 수행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선원 조실 영진 스님은 1994년 조계종 종단개혁 과정에서 명진 스님이 가사를 벗어 부처님 전에 바치고 종단개혁을 촉구했던 모습을 떠올린 뒤 “파도가 되어 물결이 되어 다시 오소서”라고 발원했다. 바다를 사랑했고 끝내 바다에서 마지막을 맞은 명진의 삶과 묘하게 겹치는 말이었다.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는 그의 삶을 동체대비(同體大悲)와 억강부약(抑强扶弱)이라는 두 말로 압축했다. 동체대비란 남과 나를 근본적으로 하나의 몸처럼 여기고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받아들이는 큰 자비다. 억강부약은 강한 자의 횡포를 누르고 약한 사람을 돕는다는 뜻이다. 명진 스님의 생애를 돌아보면 이 두 말이 절묘하게 겹쳐진다. 용산 철거민의 고통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절망도, 세월호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울음도 그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런 곳으로 갔다. 때로는 돈을 내놓았고, 때로는 함께 울었으며, 때로는 권력자를 향해 거친 사자후를 토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정부자 씨가 영결식에서 끝내 눈물을 쏟은 것도 그래서였다. 명진 스님은 유가족들에게 견뎌야 진상규명도 하고 안전한 사회도 만들 수 있다고 격려했고, 자신이 대신 욕할 사람들에게 욕을 해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청소기와 재봉틀 등 필요한 물건을 챙겨주며 가족들을 보살핀 일도 있었다. 유가족의 울음은 거창한 이념이나 정치적 구호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가장 외롭고 힘들었을 때 곁에 있어준 한 사람을 잃었다는 슬픔이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함세웅 신부가 조사에 나선 것도 이날 장례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종교의 울타리는 달랐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오랜 세월 이어졌다. 함 신부는 바다를 이야기했다.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면서 모든 물을 받아들인다. 높은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도, 작은 골짜기의 물도 받아들이고 깨끗한 물과 흐린 물을 가리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불교가 말하는 자비와도 통한다. 자신을 낮추어 모든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자비다.
이날 가장 철학적인 추도는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의 장시 「영산의 춤」이었다. 도올은 명진의 마지막을 단순한 육신의 죽음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명진 스님이 평소 프리다이빙을 하며 깊은 바닷속에서 경험했다고 말했던 무념의 세계를 죽음과 우주, 그리고 불교의 공(空)과 연결했다. 사람이 깊은 물속으로 내려가 숨과 생각의 경계가 희미해질 때 이름도 직책도 기억도 사라지고, ‘나’라고 부르는 존재가 생겨나기 이전의 어떤 상태를 마주한다는 것이다. 도올은 이를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가 만나기 이전, 곧 우주의 무념으로 돌아가는 것에 비유했다. “죽는다는 생각의 찰나도 없이 적멸보궁으로 들어갔다”는 그의 시적 표현은 사실을 설명하는 문장이라기보다 한 철학자가 한 수행자의 죽음에 바친 장엄한 해석이었다.
그리고 장사익이 노래했다. 조지훈의 「낙화」였다. 꽃이 지는 모습을 통해 삶의 무상과 아름다움의 소멸을 노래한 시다. 장사익 특유의 거칠면서도 깊은 목소리가 봉은사 대웅전 앞을 메웠다. 꽃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도 영원히 피어 있지 않는다. 오히려 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생명은 끝이 있기 때문에 소중하다. “꽃이 지는 아침에 울고 싶어라”라는 마지막 구절은 그날만큼은 명진 스님을 위해 존재하는 말처럼 들렸을 것이다. 꽃 한 송이는 졌지만 꽃이 진 자리에는 씨가 남는다. 사람도 떠나지만 그 사람이 남긴 뜻과 영향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결식을 마친 명진 스님의 법구는 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로 향했다. 베트남전 참전 뒤 다시 수행자의 길로 들어섰고 1974년 탄성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은 출가 본사였다. 법주사에서 노제를 지낸 뒤 법구가 연화대에 모셔지자 “스님, 하화요”라는 전통의 외침과 함께 불이 붙었다. 속리산 골짜기로 독경이 퍼지고 불길과 연기가 하늘로 솟았다. 한 인간의 육신이 다시 불과 바람과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육신은 사라진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명진 스님이 우리 사회와 한국 불교에 던진 질문은 이제 살아 있는 사람들이 받아야 할 몫이 됐다.
2. 명진은 누구인가
― 선방에서 거리로, 그리고 자승 스님과의 하늘나라 화해 ㅡ
명진 스님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는 선승이었고 종단개혁가였으며 사회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였다. 봉은사 주지였고 종단과 정치권력을 거칠게 비판했던 논객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존경받는 수행자였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정치적인 스님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를 이해하려면 진보와 보수, 운동권과 수행자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195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그는 1969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뒤 1974년 법주사에서 다시 수행자의 길을 시작했고, 1994년 조계종 개혁운동에 참여했다. 중앙종회 의원과 부의장을 지냈으며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봉은사 주지를 맡았다. 그의 삶을 크게 바꾼 사건 가운데 하나는 1980년대 광주의 진실을 접한 일이었다. 선방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던 수행자가 국가폭력에 쓰러진 사람들의 모습을 접하고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세상이 이토록 아픈데 수행자는 혼자 깨달음만 구하면 되는가. 그 질문 이후 선방의 벽은 무너졌고 세상이 그의 선방이 되었다.
그에게 수행은 좌선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약자 곁에 앉는 것도 수행이었고, 불의 앞에서 말하는 것도 수행이었다. 1980년대 불교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에 참여했고, 1994년 종단개혁 과정에서도 앞장섰다. 조계종 내부에서 중앙종회 의원과 부의장이라는 소임을 맡으면서도 종단 권력 자체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명진 스님의 생애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자승 스님이다. 두 사람은 한국 현대불교사에서 가장 극적인 대척점 가운데 하나였다. 자승 스님은 총무원장으로서 거대한 종단의 중심에 있었고, 명진 스님은 그 종단 권력을 안팎에서 비판했다. 2010년 봉은사의 총무원 직영사찰 전환을 둘러싸고 두 사람의 갈등은 폭발했다. 명진 스님은 당시 이명박 정부와 종단 지도부가 자신을 봉은사에서 몰아내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결국 그해 봉은사를 떠났다. 이후 국가정보원이 당시 명진 스님의 동향과 발언을 수집했던 정황이 공식 조사와 관련 문건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단순한 종단 내부 갈등을 넘어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관계라는 문제로 확장됐다.
2017년에는 종단 지도부에 대한 비판 등을 이유로 조계종에서 제적되는 가장 무거운 징계를 받았다. 명진 스님은 다시 싸웠다. 이번에는 사회법정이었다. 법원은 제적 처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고, 1심과 2심에서 잇달아 명진 스님의 손을 들어주었다. 2026년 양측이 상고하지 않으면서 승적은 회복됐다. 그러나 승적을 되찾았을 때 자승 스님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자승 스님은 2023년 세상을 떠났고, 이제 명진 스님도 그 뒤를 따랐다.
우리는 두 사람의 싸움을 다시 이승의 잣대로 판정하고 싶지는 않다. 명진이 모든 일에서 옳았고 자승이 모든 일에서 틀렸다고 단정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거대한 종단을 운영하는 현실에는 수행자의 이상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조직과 행정, 재정과 정치의 무게가 있다. 자승 스님에게도 그 나름의 현실과 책임이 있었을 것이다. 명진 스님 또한 완전한 인간이 아니었다. 거친 말도 했고 정치적 편향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승패가 아니라 두 사람이 남긴 질문이다. 종교권력은 어디까지 필요한가, 종교는 정치권력과 얼마나 거리를 두어야 하는가, 조직의 안정과 수행자의 양심이 충돌할 때 무엇을 먼저 선택해야 하는가.
이제 두 사람 모두 없다. 총무원장도 없고 봉은사 주지도 없다. 승적도, 자리도, 조직의 권력도 없다. 그렇다면 저세상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이 이승에서처럼 다툴 이유가 있을까. 나는 오히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웃었으면 좋겠다. 명진 스님이 “내가 말이 좀 지나쳤소”라고 하면 자승 스님도 “나도 자리가 사람을 너무 붙잡았던 모양이오”라고 답하며 한바탕 웃었으면 좋겠다.
불교의 궁극은 분별을 넘어서는 데 있다. 너와 나, 승자와 패자, 개혁파와 현실파,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도 인간이 잠시 만들어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는 말은 어느 한 곳에도 집착해 머물지 말고 그 마음을 내라고 가르친다. 명진도 자승도 이제 서로를 붙잡았던 미움과 집착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것이 두 수행자에게 가장 어울리는 마지막 화해일 것이다.
명진 스님이 자신의 수행모임 이름으로 삼았던 단지불회(但知不會)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다만 알지 못함을 알 뿐이라는 뜻이다. 소크라테스의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말과도 통한다.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 순간 인간은 독선에 빠진다. 정치도, 종교도, 언론도 자신만이 진리를 독점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위험해진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지혜의 시작이다.
3. 명진이 남긴 선한 영향
― 약자의 천막을 절집으로, 강남의 부자 절을 수행도량으로 ㅡ
명진 스님을 평가할 때 그의 정치적 발언만 기억해서는 삶의 절반을 놓치게 된다. 그에게서 중요한 것은 말과 행동을 붙이려 했다는 점이다. 봉은사 주지 시절 그는 대형사찰 운영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실험했다.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신도들이 재정 운영 과정에 참여하도록 했다. 사찰의 재산과 돈이 주지 개인이나 소수 승려의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종교기관의 돈은 신도의 정성과 사회적 신뢰 위에 존재하는 만큼 그 쓰임 역시 투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 종교가 다시 새겨야 할 기본이자 상식이다.
그보다 더 상징적인 일이 1,000일 동안 매일 1,000배를 올린 천일천배(千日千拜) 수행이었다. 강남 한복판 대형 사찰의 주지가 매일 자신의 몸을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낮추는 모습을 처음에는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하루가 열흘이 되고 백 일이 되고 천 일이 되면서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말로 수행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절을 한다는 것은 몸을 낮추는 일이다. 머리를 바닥에 두는 일이다. 돈이 많은 사람도 절할 때는 머리를 바닥에 두어야 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도 부처 앞에서는 몸을 낮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절은 인간의 평등을 몸으로 배우는 수행이다. 명진의 천일천배가 강남의 신도들에게 준 가장 큰 가르침도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높지 않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힘없는 사람보다 귀하지 않다는 사실을 몸으로 확인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명진의 진짜 절 수행은 사찰 밖에서도 이어졌다. 용산 참사 현장으로 달려갔고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찾았다. 세월호 유가족 곁에 섰으며 베트남전 피해자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군 의문사 유가족을 위로하고 노동자와 시민사회의 고통스러운 현장을 찾았다. 때로는 자신의 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 자리에서 그는 법문을 먼저 하지 않았다. 사람의 손을 잡고 같이 울고 함께 앉았다.
이것이 불교의 관세음(觀世音) 정신이다. 관세음은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어떤 소리인가. 대부분은 울음이다. 힘없고 억울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 사람의 울음이다. 관세음보살은 높은 곳에 앉아 그 울음을 내려다보는 존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고 그 곁으로 내려가는 존재다. 명진 스님이 지향했던 불교도 그 방향에 있었다.
그가 용산 참사 이후 유가족에게 적지 않은 돈을 남몰래 전달했다는 이야기가 뒤늦게 알려졌고,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주며 마음을 보탰다는 증언도 나왔다. 베트남전 참전의 기억을 안고 살았던 그는 훗날 베트남 피해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길을 택했다. 자신이 직접 총을 쏘지 않았다는 사실로 책임을 피하려 하지 않고, 역사 앞에서 한 인간이 질 수 있는 도덕적 책임을 생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명진 스님은 백기완 선생과도 가까웠고, 통일과 남북불교 교류에도 관심이 컸다. 사회참여와 종단개혁, 평화와 통일, 언론 자유를 서로 다른 과제로 보지 않고 모두 인간 존엄의 문제로 연결했다. 그에게 종교는 현실의 고통에서 도피하는 피난처가 아니라 현실의 고통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이 점에서 예수의 가르침과도 만난다. 《마태복음》에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굶주린 사람을 먹이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고, 외로운 사람과 갇힌 사람을 찾아가는 일이 곧 신을 섬기는 것이라는 뜻이다. 불교의 자비와 기독교의 사랑은 종교의 이름은 다르지만 고통받는 인간 앞에서 행동해야 한다는 점에서 하나가 된다.
노자의 《도덕경》은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다. 가장 높은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 명진 스님의 마지막이 바다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깊게 다가오는 말이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보다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삶, 권력자의 식탁보다 철거민의 천막을 찾는 삶, 그것이 상선약수의 정신이다.
4. 다섯 경전 앞에서 다시 읽는 명진
― 불경·성경·《도덕경》·《주역》·《천부경》이 묻는 인간과 종교 ㅡ
명진 스님의 삶을 한 종파의 언어로만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가 남긴 질문은 종교보다 크다. 인간은 무엇인가, 권력은 무엇인가, 삶과 죽음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동서양의 오래된 경전들은 놀랍게도 서로 가까운 답을 내놓는다.
불교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연기(緣起)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독립된 나는 없다. 나의 행복이 다른 사람의 고통 위에만 세워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비는 선택적인 선행이 아니다. 세상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내놓는 행동이다. 명진 스님이 말하고 행동했던 동체대비 역시 여기에서 나온다. 남의 아이가 죽었는데 어떻게 나와 관계없는 일인가. 노동자가 거리로 내몰렸는데 어떻게 내 일이 아닌가. 전쟁에서 민간인이 죽었는데 어떻게 과거의 일로만 돌릴 수 있는가. 불교는 그 고통이 결국 나의 고통이라고 가르친다.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은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말한다. 권력에도, 자리에도, 자신의 주장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명진과 자승의 긴 갈등을 돌아보면서 이 구절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두 사람에게 모두 필요한 가르침이었을 것이며, 살아 있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에서도 가르침의 핵심은 사랑과 실천이다. 예수는 권력의 중심보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버림받은 사람 곁에 있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종교적 신분이 아니라 실제 행동이었다. 누가 이웃인가. 고통받는 사람을 지나치지 않은 사람이다. 명진 스님의 사회참여 역시 이 지점에서 종교 간 경계를 넘어선다. 불교의 자비와 기독교의 사랑은 결국 고통받는 인간 앞에서 행동하라는 지점에서 만난다.
《도덕경》의 상선약수는 또 다른 길을 보여준다. 물은 자신을 주장하지 않지만 생명을 살리고, 다투지 않지만 바위를 뚫으며, 언제나 낮은 곳으로 간다. 지도자도 그래야 하고 종교인도 그래야 하며 언론인도 그래야 한다. 가장 약한 사람의 자리로 내려가 그곳에서 세상을 보는 것, 높은 자리에서 약자를 내려다보지 않는 것, 그것이 참된 덕의 출발이다.
《주역》의 건괘에는 “천행건 군자이자강불식(天行健 君子以自強不息)”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의 운행이 쉬지 않으니 군자 또한 스스로 힘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명진의 천일천배 수행과 종단개혁에는 이 자강불식의 정신이 있었다. 그러나 《주역》은 강함만을 말하지 않는다. 곤괘에서는 “지세곤 군자이후덕재물(地勢坤 君子以厚德載物)”이라고 한다. 땅이 모든 것을 넉넉하게 실어주듯 인간도 두터운 덕으로 모든 존재를 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강불식과 후덕재물, 강한 개혁정신과 넓은 포용력이 함께 있어야 인간의 길은 온전해진다. 명진에게 필요했던 것도, 자승에게 필요했던 것도 어쩌면 이 두 덕목의 조화였을지 모른다.
우리 민족의 오래된 경전으로 전해지는 《천부경》은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로 시작한다. 하나에서 시작하지만 그 하나에는 시작이 없고, 마지막에는 다시 하나로 돌아간다는 우주적 사유다. 천지인(天地人), 곧 하늘과 땅과 인간이 서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질서 안에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삶과 죽음 역시 완전히 끊어진 두 세계만은 아니다. 사람의 몸은 흙과 물과 바람으로 돌아가지만 그 사람이 남긴 말과 행동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삶으로 이어진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 사람이 다시 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것 또한 인간세계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윤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명진 스님 자신도 윤회를 단지 죽은 뒤 다른 육신으로 태어나는 문제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한 행동이 다시 나와 세상으로 돌아온다는 뜻을 중요하게 여겼다. 선한 행동은 선한 결과의 씨앗을 낳고 악한 행동은 또 다른 악한 결과를 낳는다. 선업선과(善業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다. 결국 인간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유산은 돈도 지위도 아니고 선한 영향이다.
돈은 흩어진다. 권력은 끝난다. 직책은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 크고 화려한 건물도 언젠가는 허물어진다. 그러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살리고 위로한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용산에서 위로받은 가족들의 기억,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기억, 세월호 가족들의 눈물, 베트남에서 그의 큰절을 보았던 사람들의 기억, 봉은사에서 한 수행자가 1,000일 동안 매일 1,000배씩 몸을 낮추는 모습을 바라본 신도들의 기억 속에서 명진은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한국 불교는 이제 명진 스님의 삶과 죽음 앞에서 다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더 큰 절을 짓는 것이 불교의 미래인가. 더 많은 재산과 더 강한 조직을 갖는 것이 불교의 미래인가. 권력자와 가까워지는 것이 종교의 힘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불교의 미래는 다시 사람에게 돌아가는 데 있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돌아가고, 수행으로 돌아가며, 청정과 자비로 돌아가야 한다. 시대의 불의 앞에서는 말해야 하지만 그 말은 증오가 아니라 자비에서 나와야 한다. 비판하되 인간을 미워하지 않고 싸우되 상대의 인간성까지 부정하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어려운 수행일 것이다.
명진 스님도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다. 과오가 있었을 것이고 그의 거친 정치적 언어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삶은 인간적이다. 한 인간을 성인으로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삶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하는 문제다. 명진에게서 배울 것은 특정 정치진영이 아니라 약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다. 자승과의 갈등에서 배울 것은 어느 한쪽의 승패가 아니라 종교권력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봉은사에서 배울 것은 대형사찰의 성공담이 아니라 지도자가 먼저 몸을 낮추고 돈을 투명하게 관리할 때 공동체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하는 기본과 원칙이다.
불경도 말한다. 성경도 말한다. 노자도 말하고 《주역》도 말한다. 《천부경》 역시 인간과 우주가 서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오래된 깨달음을 전한다. 표현은 다르지만 가리키는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을 낮추고 비우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고쳐가며, 나와 남이 완전히 따로 떨어진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명진 스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도올의 추도시처럼 우주의 무념으로 돌아갔는지도 알 수 없다. 영진 스님의 발원처럼 파도와 물결이 되어 다시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단지불회로 돌아간다. 다만 알지 못함을 알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도 하나 있다. 사람은 결국 떠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다. 권력보다 사람을 선택하고, 욕망보다 절제를 선택하며, 증오보다 자비를 선택하고, 강한 사람의 박수보다 약한 사람의 눈물을 먼저 바라보는 삶. 그것이 종교의 길이고 인간의 길이어야 한다.
명진도 갔다. 자승도 갔다. 두 사람이 그렇게 치열하게 다투었던 자리와 권력과 시비도 이제 모두 이승에 남았다. 어느 세계에선가 두 수행자가 다시 만나 생전의 긴 갈등을 내려놓고 웃기를 바란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앉으랴.
서산에 해가 지면 동쪽에 달이 뜬다.
일락서산 월출동(日落西山 月出東).
한 사람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선한 영향은 다른 사람 안에서 다시 떠오른다. 그것이 삶이고, 그것이 윤회이며,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죽음을 넘어 살아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진리는 권력보다 오래간다. 정의는 조직보다 크다. 자유는 어떤 권력에도 갇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비는 그 모든 것을 품는다.
명진 스님, 이제 편히 가시라.
파도가 되어 물결이 되어 다시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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