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4월 12일 소련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지구 궤도를 돌며 인류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이라는 역사를 썼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흘렀지만 이 문턱은 여전히 높다. 자국의 발사체와 유인우주선으로 사람을 궤도에 올려본 나라는 지금도 딱 세 곳, 러시아·미국·중국뿐이다.
수십 개국이 우주비행사를 배출했지만 대부분은 남의 로켓에 오르는 ‘탑승권’을 샀다. 얻어 타는 것과,직접 쏘아 올릴 티켓을 손에 쥐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 차이는 오래갔다. 자력 발사의 문턱을 가장 먼저 넘은 이 세 나라는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주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릴 때 그 문을 먼저 통과한 소수가 이후 수십 년의 판을 주도한다는 뜻이다. 진입장벽을 넘었다는 사실 자체가 곧 다음 시대를 이끌 자격이 되는 셈이다.
미국의 비영리 AI 연구기관 에포크AI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 참여한 4개 정예팀이 2026년 상반기에 개발한 AI 모델을 모두 ‘주목할 만한 모델’로 등재했다. 이 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가 매년 발간하는 ‘AI 인덱스’ 보고서의 핵심 지표로 쓰일 만큼 국가 AI 경쟁력을 가늠하는 국제적 척도로 통한다.
주목할 대목은 그 명단의 ‘좁은 문’이다. 2025년 한 해 2개 이상의 모델을 올리고, 2026년 들어 현재까지도 이름을 이어 올린 나라는 전 세계에서 미국·중국·한국 단 세 곳뿐이다. 우주에서 자력 발사의 문턱을 넘은 나라처럼 AI에서 자국 기술로 최전선에 이름을 새긴 나라도 지금 셋이다.
우주에서와 마찬가지로 AI에서도 ‘남의 기술을 가져다 쓰는 것’과 ‘자국 기술로 처음부터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무게를 갖는다. 우리나라는 이 차이를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자체 개발한 파운데이션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기술 자립과 개방형 생태계 구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각 팀이 독자적으로 쌓은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유하고 서로의 성과를 다시 딛고 올라서는 선순환을 지향했다.
소수의 몇몇 팀이 성과를 독점하는 구도를 넘어 AI 생태계 전체 파이를 함께 키우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 크다. 오픈소스 공유를 통해 후발 AI 기업과 스타트업들까지 기술 문턱을 낮춰 새로운 도전자들이 계속 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 AI 경쟁력의 저변을 넓히는 전략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자격의 유효기간이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자력으로 해냈다’는 사실은 이후 수십 년간 판을 주도할 출발점이 된다. 하지만 우주 경쟁이 그러했듯이 문은 언제까지나 열려 있지 않다. 지금 그 문 안에 들어선 소수가 다음 시대의 규칙을 쓰고, 뒤늦은 나라들은 다시 남의 기술에 오르는 처지에 놓인다. 한국은 이제 막, 얼마 남지 않은 그 문 안에 들어섰다.
그 자리에 들어섰다는 사실이 우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과감한 투자와 다음 세대 기술 개발, 인프라 확충과 인재 양성이 뒷받침돼야 자격이 실제 주도권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이 흐름을 이어갈 차례다. 우리가 쏘아 올린 성과가 다음 단계의 도전으로 이어지도록 국내 생태계의 역동성과 경쟁력을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을 계속 다져야 한다. AI 시대는 어제의 기술이 오늘 뒤처지는 속도전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는 순간 격차는 순식간에 벌어질 수 있는 만큼 지금의 긴장감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번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국민이 체감할 결과로 이어지도록 정부가 든든한 방향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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