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공채 줄이고 전문인재엔 파격 연봉…日 고용문화 바뀐다

  • 3대 은행 신입채용 4.8%↓… 후지쯔는 신입·경력 구분없이 수시 채용

  • 부서 넘는 '사내 구인' 등장… 공무원 '경험자 채용' 75% 급증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본에서는 매년 봄 그해 대학을 졸업하는 이들을 대규모로 뽑고, 입사한 뒤 회사가 부서와 업무를 정한다. 임금은 맡은 일이나 성과보다 근속연수에 따라 오르고, 직원은 한 회사에서 정년까지 일한다. '신졸 일괄채용(대졸 정기공채)·연공서열·종신고용'으로 대표되던 일본식 고용문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세 가지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사람부터 뽑아 회사가 필요한 곳에 배치하던 방식에서 이제 기업들은 필요한 일을 먼저 정한 뒤 그 일을 할 사람을 골라 시장가격에 따른 보수를 제시한다. 직원들도 조직이 짜준 단선형 경력에서 벗어나 자신이 일할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변화는 기업 채용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신입사원이 한꺼번에 들어가던 하나의 큰 문이 필요한 분야와 기술별로 갈라지는 중이다. 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미쓰비시UFJ은행과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미즈호파이낸셜그룹 등 일본 주요 은행의 2027년도 신입사원 채용 계획은 총 2180명으로 올해 봄보다 4.8% 줄어들 전망이다. 그렇다고 채용문이 일률적으로 좁아지는 것은 아니다. 3대 은행은 전체 신입채용을 줄이면서도 IT·글로벌·자산운용 분야에는 전문 코스를 따로 두고 적극적인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 즉시 업무에 투입할 경력직은 올해(2026년도) 계획이 지난해보다 2.7% 많은 1300명이다. 3대 은행 중 한 곳은 AI 활용이 신입채용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며, 업무 효율화로 채용 인원이 더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AI가 신입 일자리를 밀어내는 한편으로, 그 AI를 다룰 사람은 더 필요해지고 있다.

필요한 인재를 골라 뽑으려면 임금도 시장가치에 따라 지급할 수밖에 없다. 특히 AI와 사이버보안처럼 수요가 몰리는 첨단 분야에서는 외국계 기업과도 인재 확보 경쟁을 벌여야 해 기존 연공서열형 임금표로는 원하는 사람을 데려오기 어렵다. 일본 기업에서 연봉 800만 엔(약 6954만원)을 받던 인재가 외국계로 옮긴 뒤 1년 만에 2000만 엔을 넘긴 사례도 있다. 미쓰비시UFJ은행은 2024년 도입한 'Ex(전문가) 제도'를 활용해 시스템 개발과 금융시장, 사이버보안 인재에게 30대 중반에도 지점장·부장급 연봉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손보재팬 등을 거느린 SOMPO홀딩스는 6월 AI·사이버보안·법무 분야 전문인력을 지주회사가 일괄 채용해 각 그룹사에 배치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30대 전반의 젊은 인재에게도 연봉 1000만 엔대 이상을 지급할 수 있게 했다. 연차와 직급에 맞춰 보수를 정하던 기존 체계에 예외를 만들어 외부 인재시장의 '시세'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후지쯔는 아예 채용 방식 자체를 시장가치에 맞춰 바꿨다. 2025년 모집부터 신입 일괄 채용을 폐지하고 신입과 경력직을 구분하지 않는 수시 채용으로 전환했다. AI와 데이터과학, 사이버보안 등의 전문인재에게는 일반 직원과 다른 보수 체계를 적용한다. 사내 위원회가 희소성과 기여도를 따져 S·A·B·C 4개 등급으로 나누고, A등급은 월급에 30만 엔, B등급은 15만 엔을 얹어준다. 최고 등급인 S는 연봉 2500만~3500만 엔까지 개별 책정할 수 있다. 아직 해당자는 없다. 입사 연도와 근속연수가 아니라 시장에서 평가받는 기술의 희소성에 따라 보수가 좌우되기 시작했다.

다만 이런 변화가 일본 기업 전반으로 번진 것은 아니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 게이단렌(경단련)이 지난해 9~11월 조사한 337개사 가운데 직무에 따라 임금을 정하는 방식을 도입했거나 도입 예정·검토 중인 곳은 26%에 그쳤다. 연공형 기업이 갑자기 높은 보수를 제시하려 해도 취업 규칙과 급여 규정에 근거가 없다는 벽에 부딪힌다.

채용과 보수뿐 아니라 사람을 배치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코니카미놀타는 지난달 '스킬 공유 제도'를 도입했다. 각 부서가 IT와 사업 기획 등 필요한 업무와 기술을 적은 '구인 공고'를 사내에 올리면 다른 부서 직원이 이에 지원한다. 심사를 거쳐 선발된 직원은 본업 근무 시간 외에 월 20시간, 최장 3개월까지 일하고 기존 급여와 별도로 월 최대 10만 엔을 받는다. 그저 직원들의 부수입을 챙겨주자는 제도가 아니다. 회사 안에서 사장(死藏)되고 있는 기술을 필요한 곳에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취지다. 인력이 부족할 때마다 파견이나 외부 위탁으로 메워온 회사로서도 비용과 기밀 유지라는 차원에서 이득이다. 신입 사원을 한꺼번에 뽑아 회사가 정한 부서에서 주어진 일을 하도록 하던 기존 방식에 직원이 스스로 자신의 기술을 활용할 다른 일을 선택할 수 있는 통로가 추가된 것이다.

비슷한 변화는 관료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5일 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관료 사회에서는 조직의 허리를 맡아온 30~40대 중견 인력의 이탈이 두드러지는 반면 관료 사회로 들어오려는 민간 경력자는 크게 늘었다. 퇴직 공무원을 포함한 민간 경력자를 대상으로 한 국가공무원 '경험자 채용'에는 2025년도 2360명이 지원해 전년보다 74.7% 증가했다. 일본에서 가장 보수적인 조직으로 평가받는 관료사회에서도 신입으로 들어가 고위직을 바라보며 한 부처에서 일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문화가 달라지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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