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75) 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다 - 화이부동 (和而不同)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지난달 31일, 검사의 모든 수사 권한을 빼앗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래 72년 유지되어 온 형사사법체계가 바뀐 것이다. 보완수사권만이라도 존치해 달라는 민심은 끝내 외면받았다. 국민 10명 중 6명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했으나 이 또한 거부되었다. 

돈 없고 빽 없는 사회적 약자들은 피눈물을 흘리게 생겼는데 집권 민주당은 일제의 사슬에서 풀려나 해방을 맞기라도 한듯 환호작약한다. 그리고 입을 모아 말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복수를 완수했다고. 법 개정을 주도한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봉하마을을 방문한 뒤 자못 감회에 젖어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영전에 올렸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야~ 기분 좋다~!!!'라고 하고 계시지요?" 사진 속 조화의 리본에는 "내주신 숙제 다 끝냈습니다, 대통령님"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들에게는 형사소송법 개정, 즉 '검수완박'이 숙제였고 검찰은 복수의 대상이었다. 그 복수의 서사에 그들이 대변하겠다는 서민도 없고 사회적 약자도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애용하는 SNS에 가입까지 하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간청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 씨가 오죽하면 김용민 의원에게 "지옥에나 가세요"라는 분노의 댓글을 날렸겠는가. 약자의 편에 서는 '서민 대통령'이 되기를 바랐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노 전 대통령이 과연 이런 숙제를 내주었으며 이런 복수를 원했을까?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재석 178명 중 찬성 175명, 반대 2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되었다. 법안에 반대한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압도적 의석수를 점유한 민주당이 주도한 법안이니 결과는 뻔했으나 반대표가 두 표 나왔다는 사실에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다. 누가 반대표를 던졌을까? 한 표는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이 던졌고, 다른 한 표는 곽상언 민주당 의원에게서 나왔다. 오호~ 놀랍지 않은가! 민주당 의원이 반대하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노무현 전 대통령 사위라니. 검수완박이 노 전 대통령이 내준 숙제이고 복수의 완성이라는데, 대체 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노무현 정신의 완성으로 평가한 분들의 주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뜻과 전혀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시절 소위 '검수완박'을 추진한 적이 없다. 검찰 권력뿐 아니라 경찰 권력의 독주 역시 분명히 경계했다." 놀라지 마시라. 곽상언 의원이 반대표를 던진 후 페이스북에 직접 올린 글이다. 곽 의원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의 뜻과 정치를 왜곡하지 말고, 그의 죽음을 정치적 상징으로 소비하지 말라"고도 했다.

그런 거였다. 민주당은 그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내세워 감성(感性)을 자극하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감성팔이, 즉 '노무현팔이'를 한 것이었다. 사실 그들은 한미 FTA, 이라크 파병,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당리당략보다 국익을 우선한 노 전 대통령의 결정을 사사건건 반대했다. 퇴임 후 가족들의 뇌물 수수 혐의로 노 전 대통령이 코너에 몰렸을 땐 매몰차게 등을 돌렸다. 정치적 이용가치가 소멸했다고 보고 손절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고 국민들의 추모 열기가 뜨거워지자 태도를 돌변, 노 전 대통령을 '영웅'으로 떠받들면서 노무현 정신을 들먹이고 걸핏하면 봉하마을에 내려가 묘소를 참배하고 인증샷을 올린다. 망자가 내주지도 않은 숙제를 한다면서, 바라지도 않은 복수를 한다면서 검찰개혁의 명분으로 삼고 정략적으로 활용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끝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어느 일간지의 촌평처럼 어떤 국민은 다른 국민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인가? 이 대통령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사필귀정의 필연적 조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개정안을 반대하는 절반 이상의 국민들은 옳고 그름도 분별하지 못하는 팔푼이들인가?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사자성어를 남용하다 보니 오용도 잦다. 연전에는 대통령에게 '호가호위'하지 말라고 일갈한 국회의원도 있었다. 거부권 행사를 간절히 청원했던 김진주 씨는 이 대통령을 '회피형 대통령'으로 지칭하며 "지지한다 반대한다는 말도 없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책임을 지기 싫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분, 웬만한 정치평론가들보다 낫다.

나는 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익에 필요한 결단을 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균형감을 높이 평가한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진심에 공감한다. 재임 중이든 퇴임 후든 국민과 가까이 하려던 소탈함을 기억한다. 그런 게 '노무현 정신'이라고 믿는다. 노무현 정신의 요체는 '애민(愛民)'이다. 강성지지층의 눈치를 보면서 보완수사권 폐지에 앞장선 사람들은 노무현 정신을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 그것은 계승이 아니라 참칭일 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오군란 이래 외국군이 주둔한 용산 부지에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공원을 만들어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며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을 제정했다. 이른바 '노무현특별법'이다. 그 취지에 정파를 초월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노무현 정신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싸늘한 부동산 민심에 화들짝 놀라 '닥치고 공급'을 하겠다며 4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사회적 합의를 깨고 용산공원에 아파트를 짓겠다고 한다. 그들의 레토릭은 역시 '노무현팔이'에 불과했다.

《논어》'자로(子路)편' 23장은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12자에 불과하지만 세상을 사는 도리를 꿰뚫고 있다. 군자는 타인을 존중하고 조화롭게 어울리지만(和), 남의 의견을 맹종하거나 자신의 소신을 버리고 부화뇌동하지 않는다(不同). 즉, 원칙과 대의를 지키면서 남과 협력한다. 반면에 소인은 정치적 이해관계나 진영 논리에 따라 겉으로는 패거리를 짓고 동조하지만(同), 속으로는 진정한 조화나 인간적 신뢰를 이루지 못한다(不和). 즉, 이익에 따라 합종연횡할 뿐 화합은 없다. 화이부동은 군자의 길이고 동이불화는 소인의 길이다. 

2018년 존 맥케인 상원의원은 소속 정당 공화당이 당론으로 정한 오바마 업적 지우기를 막기 위해 뇌종양 수술 11일 만에 고향집에서 워싱턴으로 3000km를 날아가 반대표를 던졌다. 그의 한 표가 결과를 바꾸었다. 오바마는 2008년 자신의 대통령 꿈을 좌절시킨 경쟁자였다. 정치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맥케인 상원의원이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재작년 총선 무렵, 경복궁역 4거리를 지나갈 때면 종로에 출마한 곽상언 민주당 후보의 선거 현수막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종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발판이 되어준 정치 1번지다. 그걸 보면서 장인의 후광으로 편하게 금뱃지 달고 명예, 권력 등의 세속적 가치나 탐하는 그렇고 그런 부류로 여겼다. 섣부른 판단이었다. 설령 장인 덕으로 당선이 되었다 할지라도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의정 활동을 하느냐이기 때문이다.

곽상언 의원이라고 강성지지층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다음 공천에 대한 걱정이 없겠는가. 그럼에도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졌고 검수완박은 노무현의 뜻과 다르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유는 간명했다. "곧 다가올 국민의 고통이 눈에 보였고, 국민의 흐느낌과 눈물이 귀에 들리는데 차마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짧은 이 말에서 정치인으로서 곽 의원의 가능성을 보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런 마음으로 정치를 해달라는 게 한결같은 민심 아니겠는가. 

곽상언 의원은 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는 군자의 마음가짐을 실천에 옮겼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요"라고 말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지난 2월 '법 왜곡죄법' 표결 때도 민주당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민주당의 상왕이라 불리는 김어준, 진보의 빅 스피커라는 유시민 등 진영의 '언터처블'에게도 쓴소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를 비난하는 쪽에선 이같은 소신 행보를 '관심 끌기'로 폄훼하고 '뉴이재명' 세력과의 야합설까지 제기하지만, 곽 의원의 결기있는 모습에서 3당 합당을 반대하던 장인 노무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어쩌다 보니 퇴행적 막장 정치를 일일연속극처럼 보고 살아야 하는 나라가 됐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조용한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 요란하지도 격렬하지도 않지만 일상이 되어 익숙해진 절망이다. 곽상언 의원의 화이부동 소신 정치가 조용한 절망 속에서 희망을 길어올리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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