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칼럼] 대통령은 왜 개천절 경축식에 참석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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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이제 한 달 남짓이면 제4358 주년 개천절 경축식이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1949년 이래 최근까지 개천절 행사에 관하여 관계 부처의 보관자료를 전부 확인하지는 못하였으나 대통령이 참석하여 기념사를 한 적은 얼마 되지 않으며 이제는 총리가 대통령 명의 축사를 대독하는 것도 아니고 총리 명의 축사를 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버렸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역대 정부에 대통령의 개천절 경축식 참석을 요구하였으나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지난해 출범한 이재명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왜 개천절 경축식에 참석하지 않는가? 역대 대통령들이 개천절을 기피하였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개천절에 대통령이 아니라 총리가 총리 명의 경축 메시지를 내놓는 것이 오래전 관례가 된바 그 이후에 있어서는 대통령의 불참을 문제 삼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2014년 '정부의전편람'은 단지 ‘개천절 경축사는 통상 국무총리가 하는 것으로 정착됨’이라고 하고 있다. 의전편람은 어디까지나 편람이므로 왜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는지 설명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개천절은 나라가 열린 것을 기리는 국경일로, 3·1 절이나 광복절 등 여타 국경일보다 훨씬 더 의미가 크다. 그런데 대통령은 왜 참석하지 않는가? 역대 대통령들과 그 참모들은 어떤 생각에서 개천절에 대해 소극적 태도를 갖게 된 것인가?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자료(2003.10.3)는 개천절 유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날을 기리는 제천의식은 먼 옛날부터 전래되었는데 부여의 영고, 예맥의 무천, 마한과 변한의 계음, 고구려의 동맹, 백제의 교천, 신라와 고려의 팔관회 등에서 행해진 제천행사에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개천절이라 이름 짓고 시작한 것은 대종교에서 비롯됐다. 1909년 1월 15일 대종교에서 개천절을 경축일로 제정하고 매년 행사를 거행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개천절 행사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했고 특히 상해임시정부는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여 경하식을 행하였으며, 충칭 등지에서는 대종교와 합동으로 경축 행사를 거행했다. 광복 후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계승하여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식 제정하였다.” 이 설명을 보면 개천절이 특정 종교와 관련이 있어 국가원수로서 특정 종교에 치우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불참하는 것이라는 추측이 얼핏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단군이 20세기 초에 등장한 어떤 종교의 숭배 대상이라는 것과 단군의 개국이 우리나라의 시작점이라는 상징성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대종교에서 개천절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다고 해서 개천절 기념식을 일종의 종교행사처럼 인식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총리 참석도 문제가 될 수 있고 개천절을 국경일로 제정한 1949년 법률도 손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단군에 대한 인식을 유지하여 왔다.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사대주의가 만연하였던 조선시대에도 그 인식은 면면히 이어져 왔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은 104회, '승정원일기'는 173회나 국조로서 단군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 '삼국유사' '세종실록' '동국통감' 등에 실려 있는 고조선 건국 기사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단군의 개국 서사를 한갓 고서에 수록된 근거 없는 황당한 이야기로 취급하며 폄하하는 소위 주류 강단사학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개국 서사가 일부 신화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실제로 수많은 고문헌을 보면 단군을 신화로 간주하지 않고 분명히 국조로 인식하고 있다.
 
2024년에 건국절 논란이 있었는데, 한쪽에서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을 주장하고 다른 쪽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 11일을 주장하였다. 2차 대전 이후 독립하여 나라를 세운 대부분 제3세계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1945년 일제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세워진 신생 독립국이 전혀 아니다. 우리의 국가성은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우리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이고 그 점에서 개천절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겠다. 재외공관에서 개천절을 소개할 때 ‘National Foundation Day’라고 설명하는데 매우 적확한 번역이다.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미래 경영 청년 네트워크’가 대선 예비후보 12명에게 ‘대통령에 당선되면 개천절 행사에 참석하겠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단지 2명이 답변을 하였고 ‘참석하겠다'고 답변한 후보는 단 한 명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 수준이 이 정도인 것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에 이 단체가 대한민국 국민 20~50대 1000명을 대상으로 '개천절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를 하였는데 '개천절에 대통령이 공식 행사에 참석하고 축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에 대해 67%가 그렇다고 답변하였고, '개천절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나'에 대해 96%가 알고 있다고 답하였고, '개천절을 기념하는 것이 국민 화합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해 59%가 그렇다고 답하였고, ‘개천절을 기념하는 것이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는 78%가 그렇다고 하였다.
 
이제 대통령은 부질없는 정치적 득실 저울질을 그만하고 ‘관례’라는 핑계를 대지 않기를 바란다. 대통령은 기독교계 일부가 표출하고 있는 지나친 거부감, 일부 사학계의 견해 등을 의식하기보다는 국민 통합을 촉진하고 나아가 남북통일을 향한 민족 차원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민족사의 출발을 경축하는 자리에 참석하여야 한다. 처음 나라가 열린 날을 기리는 자리에 국가원수의 불참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더욱이 대통령은 앞서 설명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국민 여론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국무총리의 2025년 개천절 경축사에 대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개천절 경축사에서 ‘국조 단군’에 대한 언급이 빠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작년 경축사를 보면 개천절을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건국이념 아래 겨레의 하늘이 열린 날”이라고만 설명하고 경축사 어디를 보아도 개국의 주체인 ’국조 단군‘에 대한 언급은 없다. 개천절 경축사에서 빠져서는 안 되고 그래서 빠진 적이 없는 ’국조 단군‘이 빠진 것은 단순한 실수로 보기 어렵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대 법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외교관 연수과정 수료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러시아 공사 ▷상명대 글로벌지역학부 초빙교수 ▷현 유라시아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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