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혁신형 제약 R&D 우대, 셈법이 틀렸다

보건복지부가 14년 만에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기준을 전면 개편하고 지난 18일부터 신규 인증 신청을 접수하고 있다.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고 심사 항목을 25개에서 17개로 줄이는 등 평가 체계를 손질했다. 연구개발(R&D) 투자와 임상시험 건수, 수출 규모 등은 정량지표로 전환해 평가 기준을 보다 명확히 했다. 인증 최저 합격점수는 65점으로 설정됐고 탈락 기업에는 미인증 사유를 서면으로 통보해 평가 결과에 대한 예측 가능성도 높였다.

다만 문제는 이번 개편의 핵심인 R&D 투자 비중 기준이 업계 체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괄적으로 높아졌다는 데 있다. 개편안에 따르면 직전 3개년 평균 의약품 매출액이 1000억원 미만인 기업은 매출 대비 R&D 비중을 기존 7%에서 9%로, 1000억원 이상인 기업은 5%에서 7%로 각각 올려야 한다. 최소 연구개발비 기준도 50억원에서 70억원으로 상향됐다. R&D 투자를 늘린 기업에 약가를 우대해 신약 개발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마침 제네릭 약가까지 인하되는 시점과 맞물려 업계에서는 혁신형 인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생존 카드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 지표 자체가 기업의 R&D 노력을 거꾸로 반영하는 역설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년 유예기간을 뒀다고는 하지만 매출 규모가 작을수록 상대적으로 무거워지는 R&D 부담의 방향성 자체는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매출이 R&D 투자보다 더 빠르게 늘면 정작 연구개발에 더 많은 돈을 쓰고도 비중은 오히려 줄어드는 일이 벌어진다. 실제로 한미약품은 상반기 별도 기준 R&D 투자액이 전년보다 늘었으나 매출이 5714억원에서 6922억원으로 21.1% 증가하면서 매출 대비 투자 비중이 되레 낮아졌다.

실제 연구개발에 더 많은 돈을 썼지만 지표상으로는 'R&D에 소홀해진 기업'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성장 속도가 빠른 기업일수록 역설적으로 약가 우대 기준을 맞추기 더 어려워지는 구조인 셈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R&D 투자 비율로 약가 가산을 적용하면 매출이 적을수록 유리해지는 구조가 된다"며 "약가 우대를 받기 위해 매출을 고의로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인데, 획일적인 약가 가산 제도가 기업 경영 전략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번 개편은 매출 1000억원 미만인 중소·중견 제약사에는 R&D 비중 기준을 9%까지 높이고, 임상 진전 단계별 가중치와 기술이전의 질적 성과까지 함께 평가하도록 했다.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중견사로서는 투자 규모와 성과의 질을 동시에 입증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 매출이 조금만 늘어도 비중이 깎이는 허점까지 겹치면 성장하는 기업일수록 인증 문턱 앞에서 오히려 손해를 보는 삼중의 역설에 놓이게 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건의로 매출 1000억원 미만 구간을 세분화해 R&D 투자 규모에 따라 점수를 차등화한 것은 최소한의 숨통을 틔워준 조치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세부 배점 조정만으로 R&D 비중 기준 자체가 낮아진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문턱은 그대로인 채 계단 폭만 촘촘하게 나눈 셈이다.

제약산업은 신약 개발이라는 장기 레이스에서 다양한 규모의 플레이어가 함께 뛰어야 혁신의 저변이 넓어지는 산업이다. 대형 제약사 중심의 획일적 잣대만 고수하다가는 정작 다음 블록버스터 신약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중소·중견 기업들의 R&D 동력을 꺾을 수 있다.

제도 개편의 성패는 대형사 몇 곳의 인증 유지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중소·중견 기업이 혁신의 사다리에 계속 발을 걸칠 수 있느냐로 판가름 날 것이다.
 
산업2부 이효정 차장
산업2부 이효정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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