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 나는 내가 배우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학 입시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뒤 우연히 연극을 배우는 곳을 찾아가게 됐다. 남 앞에 나서는 것도 어려워하던 청년이었지만 연기를 할 때는 내 안에 있는 것을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연극을 만났다.
1962년 연극 '소'로 처음 무대에 섰을 때는 너무 떨려서 어떻게 해냈는지 지금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 번 무대에 서고, 또 한 번 서다 보니 어느덧 65년째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청년 시절 무대와 객석에서 받은 울림이 내 평생을 이끌었다. 그 시절에 만난 작품은 평생의 취향이 되고, 삶을 버티는 힘이 되며, 때로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나에게는 그것이 연극이었다.
나는 배우가 가장 무서워해야 할 사람은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무대에서는 숨길 수가 없다. 준비가 부족해도 관객은 알고, 배우가 마음을 다하지 않아도 금방 알아챈다. 다시 찍을 수도, 고칠 수도 없다. 그날 그 시간에 배우와 관객이 만나고 그것으로 끝이다. 그래서 나는 평생 관객을 두려워하며 무대에 섰다. 오래 무대에 섰다고 해서 편해지는 것도 아니다. 막이 오르기 전이면 지금도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극장에서 젊은 관객들을 만나면 참 반갑다. 그런데 그런 관객 앞에 서면 오히려 더 긴장이 된다. 젊은 관객은 좋으면 좋다고, 지루하면 지루하다고 반응이 솔직하다. 그래서 나도 더 정직하게 무대에 서게 된다. 바쁜 시간을 쪼개 극장까지 와 준 사람들이니, 나도 그만큼 해내야 한다.
몇 해 전 박근형 배우와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할 때도 그랬다. 두 노인이 나와 오지도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이야기인데, 젊은 관객들이 함께 웃고 숨죽이며 지켜봐 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좋은 연극은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연극은 결국 사람의 일이고, 우리들의 이야기다. 사람이 무엇을 기다리고, 무엇 때문에 아파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일이다. 시대가 달라도, 나이가 달라도 사람 사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이야기가 정직하게 전해질 때 누구의 마음에든 닿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요즘 청년들은 문화예술을 즐기고 싶어도 선뜻 지갑을 열기 어렵다고 한다. 취업 준비와 생활비 걱정 속에서 공연 한 편은 ‘나중으로 미뤄도 되는 일’이 되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2027년 청년문화예술패스의 전면 확대 시행은 참 고마운 소식이다. 청년의 문화생활이 결코 뒤로 미뤄질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사회가 제도로 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청년문화예술패스가 평소 만나지 않았던 공연 하나를 우연히 만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배우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에서 만나는 이야기는 화면으로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를 남긴다. 예술은 꼭 다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마주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지금도 무대에 선다. 살아 있으니 하는 것이고, 평생 해 온 일이니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무대에 설 수 있고 나를 바라보는 관객이 있는 동안에는 맡은 일을 제대로 하고 싶다. 그리고 그 객석에 더 많은 청년이 앉아 주기를 바란다.
지금의 청년들 가운데는 내일의 배우와 연출가도 있을 것이고, 평생 문화예술을 곁에 두고 살아갈 관객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연극을 하며 받은 것을 다음 세대에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극내일기금’에 뜻을 보탰다. 젊은 배우와 창작자들이 계속 무대에 서고, 그 무대를 찾는 젊은 관객이 있어야 연극의 내일도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65년 전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섰던 무대가 내 평생의 일이 되었듯, 오늘 어느 청년에게는 처음 앉는 객석이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청년이 문화를 만나는 순간, 우리 문화의 내일도 함께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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