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증시는 하루에도 수백 포인트씩 오르내리는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했음에도 주가는 급락했고, 하루 만에 이를 만회하는 반등이 이어졌다. 8월에는 진폭이 좀 줄었지만 그래도 방향성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주식장이 도박판이 됐다"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다.
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해야 하는 증권사 리서치센터들도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말(리포트)의 무게에 책임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증시 베테랑'들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어떤 예측을 내놓을까.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을 최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만나 하반기 증시 전망과 방향성을 들어봤다. 김 센터장은 30년 증시에 몸담은 베테랑이다. 그는 "지금은 과거에도 경험하지 못했던 시장"이라며 "금융시장 역사를 둘러보면 비슷비슷한 일들이 있지만 이번에 나타났던 현상은 처음 보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극심한 변동성이 시장 위기는 아니라고 했다.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내는 성장 기대와 메모리 반도체 특유의 높은 변동성이 맞물리며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높은 변동성은 뉴노멀"이라고 진단했다. 시장의 방향을 예측하려 애쓰기보다 변동성을 견딜 수 있는 투자 원칙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결국 핵심은 '인내'다.
"메모리 반도체, 역사적으로 주가 진폭 커"
김 센터장은 앞으로도 높은 변동성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AI라고 하는 안 가본 길을 가는 데 가장 중추적인 기업이고, 메모리 반도체는 역사적으로 주가의 진폭이 컸다"며 "두 종목이 시가총액의 50%를 넘게 차지한는 만큼, 이들의 진폭이 코스피로 정의가 되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물론 변동성이 투자자들에게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조바심에 추격 매수에 나서거나 공포심에 손절매를 선택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다만 김 센터장은 변동성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올라갈 때도 평균으로부터 벗어난 가격 변동성을 보이곤 하는데 그것 역시 금융시장에서 말하는 변동성"이라며 "좋다, 나쁘다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최근 반도체 대장주들의 조정을 두고 시장 일각에서는 AI 투자 사이클이 꺾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그는 반도체의 구조적 성장세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봤다. 김 센터장은 "SK하이닉스는 최근 1년 동안 주가가 18배 가까이 올랐고, 삼성전자도 7배 상승했다"며 "이렇게 많이 오른 주식은 조정을 받을 때 완만하게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지금 나타나는 조정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과 달라진 점도 짚었다. 장기 공급계약(LTA) 확대와 AI 투자 증가로 기업들의 이익 체력이 과거보다 한층 강해졌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지금 여러 가지 걱정들이 있는데, 과거와 그래도 달라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장기 공급계약 등이 늘면서 예전처럼 이익이 반토막 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라며 "큰돈을 벌면 주주 환원 등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반도체 조직도 여기서 무너지기보다는 리바운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미 시장의 기대 수준이 높아진 만큼 "상반기와 같은 뜀박질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엇갈리는 목표주가는 자연스러운 현상"
최근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둘러싼 증권사들의 목표주가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급등락을 반복하는 장세 속에서 실적과 밸류에이션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면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는 가장 낮게는 30만원, 가장 높게는 65만원으로 증권사 간 격차가 35만원에 달한다. 이를 두고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누구의 전망을 믿어야 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김 센터장은 이를 오히려 건강한 시장의 모습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주식시장의 생리가 파는 사람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이라며 "내가 한 푼이라도 비싸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가격에 왜 팔겠느냐. 각자 자신을 위해서 의사결정을 내리지만 그게 맞물리는 게 주식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며 "서로 다른 전망과 논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특히 "애널리스트들이 한목소리로 다 잘 된다고 한다면 주가가 형성되지 않는다"며 "누군가는 사라고 하고, 누군가는 팔라고 하는 상황 속에서 투자자들이 취사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은 생태계"라고 부연했다.
이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 발표 이후 증권사들의 전망이 엇갈리는 이유도 결국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러운 상황이므로 의견이 다른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안정적인 투자란 없어...오로지 견뎌야"
김 센터장은 '투자의 해법'을 찾는 투자자들에게 무엇보다 '견딜 수 있는 돈'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장의 방향을 맞히려 하기보다 변동성을 버틸 수 있는 투자 원칙을 세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김 센터장은 "(주식 투자를) 안정적으로 한다는 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변동성을 이길 수 있는 돈으로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투자와 투기의 차이도 분명히 했다. 그는 "첫 번째로 합당한 주식을 사야한다"며 "내가 어떤 자산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적정한 가치를 평가하고, 이거보다 낮은 가격에 사서 가치로 수렴할 거라고 믿는 행위는 투자지만 나보다 누가 더 비싼 가격에 사주겠지라는 기대에서 하는 거는 투기"라고 지적했다. 결국 투자란 단기 시세가 아니라 기업의 본질적 가치에 무게를 두는 행위라는 설명이다.
김 센터장은 주식의 본질에 대해서도 "주식은 저점에서 잘 사서 고점에 팔고 나오는 게임이 본질적으로 아니다"라며 "기업과 '동업'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주식시장에선 별일이 다 나타날 수 있는데 본질적으로 그 변동성을 견딘 사람들이 돈을 버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투자의 대가 찰리 멍거의 말도 인용했다. 김 센터장은 "주식시장은 인내심 없는 사람의 돈이 인내심 있는 사람에게 넘어가는 곳"이라며 결국 좋은 기업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투자자의 마음가짐도 강조했다. 그는 "아이러니한 게 우리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 투자하지만 부자처럼 투자하지 않으면 부자가 되기 어렵다"며 "야구 선수가 홈런 치려고 어깨에 힘만 잔뜩 들어가면 공을 맞추지 못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어깨에 힘을 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반기 주목할 이벤트는 엔비디아·美 금리·주주환원"
앞으로 남은 4개월, 김 센터장은 하반기 증시를 좌우할 변수로는 AI 투자 지속 여부와 미국 통화정책을 꼽았다. 그는 "전반적인 AI에 대해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대와 우려가 있는데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어떤 가이런스를 줄 거냐가 중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이어 "나머지는 금리"라며 "미국 연준이 강하게 긴축을 하고 그러면 주가가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의 물가 압력이 과도하지 않고 경기 역시 지나치게 과열된 상황은 아닌 만큼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공격적인 긴축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벌어들인 엄청난 이익에 대해 어떻게 주주들을 위해 쓸 지도 중요할 것"이라며 "주주 환원의 현실화 여부, 어느 정도 강도를 할 거냐 이런 것들이 주가를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하반기 코스피 전망에 대해 김 센터장은 "목표치를 알 수는 없고 시장이 저평가됐나 고평가됐나는 판단을 내릴 뿐"이라며 "지금은 상당히 싼 가격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다만 상반기처럼 반도체가 시장을 이끌며 가파르게 상승했던 국면과는 시장의 동력이 다소 달라진 만큼, 증권가 일각에서 제기된 '1만피' 전망이 당시와 같은 속도로 전개될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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