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장관은 최근 관훈토론회에서 주 52시간제 문제를 한국 내부가 아닌 중국 등 경쟁국과 비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와 연구개발(R&D), 스타트업 등 속도가 경쟁력인 분야에서는 일하겠다는 사람의 의지를 제도가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률적인 근로시간 규제가 기술 개발을 늦추고 성취하려는 청년과 전문인력의 선택권까지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영훈 장관의 주장은 다르다. 그는 기자들과 오찬간담회하는 자리에서 주 52시간제 예외 없이도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큰 성과를 내고 있다고 짚었다. 특히 강조한 부분은 현행 제도다.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 특별연장근로 등 유연근무 장치가 있는데도 기업들의 활용이 많지 않은 만큼 별도의 예외를 마련할 필요가 있냐고 묻기도 했다. 미래의 불확실한 위기보다 현재 확인되는 사실과 제도의 실효성을 먼저 따져보자는 의미다.
한국 경제를 사실상 반도체가 이끄는 상황에서 정부가 메가프로젝트에 속도를 내고 있는 지금 두 의견 모두 일리가 있다. 반도체 산업은 한번 기술 주도권을 놓치면 따라잡기가 쉽지 않은 속도전의 영역이다. 현장에서 특정 시기에 집중적인 연구가 불가피하다면 제도가 이를 수용할 여지도 필요하다.
문제는 논쟁의 장소와 방식이다. 산업부 장관은 토론회에서, 노동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각자의 논리를 펼쳤다. 부처 간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은 정책 조정이 아니라 장외 공방이다.
최근 비슷한 장면도 있었다. 반도체에서 발생한 초과이익을 어떻게 배분할지를 놓고 두 부처는 하루 사이로 별도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다양한 의견을 듣는 공론의 장은 많을수록 좋은 만큼 토론회를 개최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같은 정부의 부처가 각자 토론회를 열어 자신들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목소리를 확인하고 끝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산업부가 산업계의 논리를, 노동부가 노동계의 논리를 확산하는 행위는 정책 조정을 대신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주장이 있다면 같은 테이블에서 서로의 주장를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토론의 목적이 다른 주장과 부딪혀 결론을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양쪽이 공개석상에서 서로의 주장을 반박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른다. 산업장관의 주장대로 반도체 경쟁이 그토록 급박하다면 장외 공방이 오가는 사이 중국의 기술 추격은 더 빨라질 것이다. 노동장관의 말대로 건강권이 걸린 문제라면 결론이 늦어질수록 현장의 불확실성과 갈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초 국무회의에서 "정책 추진 과정에서 부처 간 이견이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논쟁해 달라"고 주문했다. 부처가 국민을 대신해 논쟁하지 않으면 결국 국민이 직접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는 이유였다.
지금 시점은 대통령의 주문을 실행할 때다. 비공개 관계 부처 협의도 필요하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일수록 두 장관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근거와 대안을 공개적으로 토론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노동권과 미래의 산업 경쟁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식의 논쟁도 끝내야 한다.
'일할 자유'와 '일하지 않을 권리'는 서로를 지워야만 살아남는 가치가 아니다. 둘을 함께 지킬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정치와 행정의 역할이다. 두 장관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장외 발언이나 별도의 토론이 아닌 한 자리에서의 명확한 결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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