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란 원내 소수 정당이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법안 통과를 막기 어려울 때, 자신들의 입장을 여론에 호소하면서 의사 진행을 합법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최근 우리 국회에서 이러한 필리버스터가 지나치게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 보면, 의석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정당이 독단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일이 잦기 때문에 필리버스터 역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필리버스터가 등장했다. 검찰의 보완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문제를 둘러싼 여야 대치 국면에서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로 저항했고, 민주당은 표결로 이를 종료시킨 뒤 본회의에서 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키는 대한민국 국회의 ‘습관적 현상’이 되풀이됐다.
그런데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단독 통과’는 이전보다 더욱 큰 문제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 즉 검찰의 보완 수사권 완전 박탈 문제는, 국민이 직접 체감할 가능성이 높은 ‘권리와 이익의 침해’와 맞닿아 있어, 법안이 통과된 뒤 다른 이슈에 묻혀 국민의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질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보완 수사권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해당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으니, 이 사실은 국민의 뇌리에 상당 기간 남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에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역시 과거처럼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의례적 행위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는 단순한 ‘저항 차원’을 넘어, 역사에 기록을 남기기 위한 행위라는 의미도 가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이 필요한 이유는, 훗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묻기 위한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완 수사권 완전 박탈에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 온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최근 주변에 “결국 책임은 이 법안을 주도한 강경파 의원들이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보도를 보더라도, 향후 문제가 드러날 경우 그 책임 소재는 분명하게 가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민주당 일각에서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 보완해 나가면 된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언급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보완 수사권 박탈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 국민에게 피해가 직접 미칠 수 있는 사안인데, 이들이 말하는 “미진한 부분” 혹은 ‘문제가 있으면’이라는 표현은, 이미 국민이 피해를 본 이후의 상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문제가 발생해 국민이 이미 피해를 본 상황에서 그때 가서 고치면 된다는 발상은 해당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킨 당사자들이 내세울 논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법을 개정하거나 제정하는 일은 국민에게 돌아갈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원칙 아래 이루어져야 하는데,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보완하겠다는 태도는, 입법기관의 구성원이 가져서는 안 될 논리이자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관심은 과연 이재명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지에 쏠리고 있다. 한동훈 의원이 자신의 SNS에 “이재명 대통령, 우왕좌왕한 것은 탓하지 않을 테니 거부권을 행사하라”고 밝힌 것만 보더라도, 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얼마나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재명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들 수 있는 이유는, 이재명 대통령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가 보완 수사권의 완전 폐지에 반대해 왔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21일 “(보완 수사권이) 예외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있다”며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 권력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 구제”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최소한 일부 범위에서라도 보완 수사권이 유지돼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정성호 장관 역시 이와 같은 입장을 가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강경파의 주도로 해당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니, 논리적으로 볼 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 번째 이유는 현재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과 관련이 깊다. 지난 30일 발표된 전국 지표조사인 NBS 조사 결과(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여론조사를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53%로, 계속해서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 문제와 이른바 ‘롤러 코스피’가 돼버린 주식 시장 문제 등으로 인해, 대통령 지지율이 단기간에 다시 반등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보완 수사권 문제를 대통령이 방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만일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대통령 지지율이 더욱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검찰의 보완 수사권 완전 박탈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공소 기각 사유가 두 가지 추가됐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지금 야권에서는 이 공소 기각 사유의 추가가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가 다시 부각되는 것을 막고, 자신에 대한 재판을 회피할 의도로 공소 기각 사유가 추가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도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지금 민주당이 전당대회 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거부권 행사가 쉽지 않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한다. 즉, 지금 시점에서는 당원 다수를 차지하는 강경파의 눈치를 여권 전체가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청와대 역시 “국회의 입법 과정과 최종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무회의가 언제 열릴 것인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당대회가 끝난 뒤 국무회의가 열린 것인지 여부가 거부권의 실현 가능성을 규정할 것이라는 말인데, 그래서 국무회의가 언제 열리고 그 결과가 무엇일지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필자 주요 이력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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