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혁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따라다니는 숫자다.
박 사장은 취임 간담회에서 2028년까지 외래관광객 3000만명 달성 목표를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질적 성장보다 양적 확대에 치우친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지만, 박 사장은 관광객 수보다 시장의 규모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에서 만난 박 사장은 "3000만이라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시장이 커지면 항공과 숙박 등 관광 인프라가 늘고 민간 투자도 뒤따른다. 늘어난 관광 수요는 다시 지역 소비와 투자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박 사장은 취임 후 관광산업의 복잡성을 새삼 실감했다고 말했다.
"밖에서는 관광을 즐겁고 행복한 산업으로 봤습니다. 막상 와보니 항공과 숙박, 콘텐츠, 서비스 등 수많은 분야가 얽힌 매우 복잡한 산업이더군요. 반도체가 이보다 복잡할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관광은 어느 한 분야만 성장한다고 산업 전체가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 항공과 숙박, 여행사, 콘텐츠, 교통, 지방자치단체 등 여러 주체가 맞물려야 한다. 박 사장이 취임 직후 임직원들에게 가장 먼저 꺼낸 화두도 ‘생태계’였다.
"관광공사가 관광 생태계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세일즈를 미션으로 하는 공공기관은 드뭅니다. 공사는 이제 홍보를 넘어 세일즈 기관으로 역할을 넓혀야 합니다."
◆ "홍보 아닌 세일즈"…시장 키워 인프라 이끈다
박 사장은 민간에서 쌓은 마케팅 경험을 공사 사업에도 적용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인프라를 다 지어놓고 손님을 무작정 기다리지 않습니다. 지방을 다니며 가장 많이 들은 말도 '관광객이 와야 교통도 확충하고 숙박시설도 짓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3000만명 목표를 볼링의 가운데 핀에 비유했다. 중심 목표를 분명히 세워야 나머지 성과도 함께 따라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올해 방한 관광시장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 방한 외래관광객은 1071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3% 늘었다.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지면 지난해 연간 기록인 1894만명을 넘어 올해 목표 2300만명에 근접할 가능성도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박 사장은 "2200만명은 무난히 넘길 것으로 보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2300만명까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입국자 수와 지방공항 입국객 증가율, 국제선 좌석 공급량, 크루즈 입항 실적 등 시장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를 꼼꼼히 챙긴다.
◆ 이제 한국 관광도 제값 받아야
그는 시장의 성장세와 함께 한국 관광이 안고 있는 문제도 짚었다.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수도권 쏠림'과 '가격 경쟁력'이다.
서울은 몰려드는 인파로 과잉 관광(오버투어리즘)을 걱정하지만, 지방은 하룻밤 묵어갈 체류형 기반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저가 상품의 수익을 쇼핑 일정으로 보전하는 관행이다.
"한국 관광은 이제 당당하게 제값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 필요한 건 제살깎기식 할인 경쟁이 아니라 압도적인 콘텐츠 경쟁입니다."
공사는 올해 국민이 참여하는 관광서비스 점검체계를 새로 구축했다. 심층 점검을 맡을 누리살핌단 50명도 선발해 전국 주요 관광지의 수용태세를 살피고 있다. 점검 결과는 지자체에 전달해 현장 개선에 활용한다.
◆ K-컬처·의료·MICE 연결…지역 체류로 넓힌다
박 사장은 K-컬처와 의료관광, MICE를 지역 관광과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연이나 진료, 국제회의를 찾은 방문객이 주변 지역까지 경험하고 더 오래 머물게 하겠다는 것이다.
"K-팝은 지금 메인스트림 근처까지 와 있다고 봅니다. 다만 세계 각국이 K-팝의 제작 시스템을 배우며 자국 콘텐츠를 키우고 있어 언제든 도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가 꺼내든 해법은 연관 상품을 묶어 소비를 늘리는 '크로스셀(Cross-selling)'과 서비스의 질을 높여 객단가를 올리는 '업셀(Up-selling)'이다.
공연장만 찍고 떠나는 게 아니라, 그 지역의 맛집과 거리, 고유의 스토리까지 소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광공사가 엔터테인먼트사와 지역 관광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료관광과 MICE도 지역 체류와 소비를 늘릴 분야로 꼽았다. 박 사장은 "의료관광 하면 성형외과만 떠올리던 시대는 끝났다"고 잘라 말했다. 중증 치료부터 건강검진, 치과 영역까지 저변이 넓어졌고, 의료관광객은 지난해 사상 처음 200만명을 돌파했다. 공사는 최근 중앙아시아 로드쇼를 마쳤고, 9월엔 몽골 금융권·광산기업 대상 설명회도 준비 중이다.
의료관광을 포함해 웰니스·뷰티 관광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해당 분야 관광객 지출액은 2조5662억원으로, 2023년(9289억원)보다 약 3배 늘었다. 관광공사는 개별여행객(FIT) 증가가 이러한 성장세를 이끈 주요 요인으로 보고 있다.
그는 제일기획 재직 당시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인 'MWC(Mobile World Congress)'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을 현장에서 지켜봤던 일화를 들었다.
"MICE가 도시를 살리는 힘을 바르셀로나에서 직접 봤습니다.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올해 서울·경기·인천·부산·대전·대구·제주·고양 등 8개 지역 컨벤션뷰로(CVB)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해외에서 발굴한 국제회의 정보를 지역과 나누는 협업 플랫폼도 만들고 있다.
◆ 공항·항만·크루즈·페리, 관문을 넓히다
지역관광 분야에서는 지방공항과 항만을 관문으로 활용하는 데 힘을 싣고 있다.
올해 4월 출범한 '지방공항 국제관광 허브화 TF'는 청주·대구공항을 시범 모델로 국제선 유치와 관광상품 개발을 병행 중이다. 부정기 국제선 11개 노선, 356편을 유치·지원했고, 상반기 청주공항 입국자는 전년 대비 109% 급증한 약 6만2000명, 대구공항은 약 5만7000명을 기록했다.
"청주공항으로 들어와 곧바로 SRT를 타고 서울로 이동하면 지역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공사는 충청권·영남권을 잇는 초광역 관광코스 35개를 개발하고, 지역 특화 콘텐츠 333개를 발굴해 해외지사에 마케팅 가이드로 배포했다. 공사는 지방공항과 함께 크루즈·페리를 통한 관광객 유치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관문은 공항, 크루즈, 페리 세 가지입니다. 이 세 통로를 동시에 정비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 칭다오에서 5대 페리선사 대표들과 협상했고, 여수를 중심으로 한 항만 관광협의체도 새롭게 꾸려지고 있다. 청주·대구에서 시작한 지역관광협의체는 연말까지 전국으로 확대할 구상이다.
'반값여행'으로 불리는 지역사랑 휴가지원사업도 같은 흐름이다. 올해 약 20만명이 신청했고, 참여자의 81.2%는 "이 사업이 없었다면 해당 지역을 찾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디지털관광주민증도 지난해 약 409억원의 지역 소비를 이끌었다. 다만 박 사장은 "프로모션은 방문의 계기일 뿐, 다시 찾게 만드는 힘은 결국 콘텐츠에 있다"고 말했다.
◆ 관광벤처와 AI, 그 다음 무대는
공사는 싱가포르·도쿄·방콕의 해외관광기업지원센터를 통해 국내 관광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으며, 베트남·말레이시아까지 거점을 넓힐 계획이다. "해외 진출은 단발성 성과로 끝나선 안 됩니다. 현지에서 지속 가능한 수익모델을 정착시키는 게 핵심입니다."
그는 국내 관광업계에 글로벌 유니콘 기업이 아직 없다는 점을 아쉬운 대목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생애주기적 육성 마스터플랜'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분절적으로 이뤄지던 기존 지원 사업들을 하나로 꿰어 체계적인 육성 프로세스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박 사장은 "기업 발굴부터 시작해 초기 공간 및 자금 지원, 기업 간 매칭을 통한 실증 사업, 투자 유치, 마지막 해외 지사 설립 지원까지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되는 '라이프타임 케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사는 오는 9월 관광벤처 네트워킹 행사인 '이음주간'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글로벌 유니콘 기업 육성 청사진을 업계와 공유할 예정이다.
박 사장은 인공지능(AI)과 데이터 활용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먼저 이용자가 자연어로 질문하면 AI가 관련 데이터를 찾아 조합하고,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제시하도록 '데이터랩'을 고도화한다. 2027년 말 베타 버전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다.
여러 곳에 흩어진 회원 서비스도 '비짓코리아'로 모은다. 13개 B2C 사이트의 통합 작업을 2027년 하반기까지 마치고, 현재 약 160만명인 회원을 1000만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박 사장은 데이터랩과 통합 회원 정보를 한국 관광의 핵심 자산으로 보고 있다. 관광객의 관심과 이용 행태가 데이터로 쌓이면 더욱 정교한 관광 마케팅과 맞춤형 안내가 가능해진다는 판단이다. 공사는 이를 토대로 2028년까지 AI 기반 차세대 관광안내 통합플랫폼을 구축할 예정이다.
"회원 데이터가 축적되면 비짓코리아와 데이터랩은 대체 불가능한 한국 관광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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