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에 위치한 이른바 ‘워커하우스’가 6·25전쟁 당시 월턴 워커 미 제8군사령관이 상주하며 유엔군을 총지휘했던 공간이라는 통념은 사실과 다르며, '미 제8군사령부 지휘통제실'로 명칭과 역사적 기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학계의 지적이 나왔다.
특정 개인의 일화에 가려져 있던 미군의 통신 거점 역사를 비롯해, 이후 5년 넘게 이어진 국제 의료 구호 활동과 캠퍼스를 되찾기 위한 학생들의 저항사까지 '입체적 팩트'를 온전히 복원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지난 7월 31일 국립부경대에서 열린 학술심포지엄 ‘한국전쟁과 국립부경대학교, 그리고 워커하우스’에 나선 역사·군사·도시공학 전문가들은 워커하우스를 둘러싼 과장과 오류를 지적하며 정밀한 역사적 재평가를 촉구했다.
이동원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부산의 군사적 성격이 한국전쟁 발발 뒤 돌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부산은 청일전쟁 시기부터 일본의 대륙 진출을 위한 군사 수송 거점이었으며, 해방 직전에는 약 8400명의 일본군이 주둔하는 등 "이미 완성된 병참도시에 가까웠다"는 평가다.
이상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위원에 따르면, 미 육군 공식 전사를 분석한 결과 미 8군사령부가 당시 부산수산대학(현 부경대)에 머문 기간은 1950년 9월 6일 오후 4시부터 9월 23일 오후 2시까지 단 16일 22시간에 불과했다. 캠퍼스 이전의 핵심 목적 역시 워커 장군의 거처가 아닌, 당시 동아시아에서 대체 불가능했던 텔레타이프 등 '통신장비 보호'였다. 워커 장군과 주요 참모들은 대구의 전방지휘부에 남아 전선을 지휘했다.
이 연구위원은 "워커 장군이 이곳에 상주했다는 근거가 없는 만큼 '워커하우스' 대신 '미 제8군사령부 지휘통제실'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다"며 "당시 한반도에 지상군을 파견한 참전국이 3개국(한국·미국·영국)에 불과함에도 '16개국 연합군을 총지휘한 곳'으로 부풀려 설명해 온 관행도 철저한 팩트체크를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임하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는 지휘소가 떠난 이후 캠퍼스가 변모한 의료 거점으로서의 역사에 주목했다. 1951년 11월 제21후송병원을 시작으로 제21기지병원, 스웨덴 적십자병원(서전병원)이 차례로 들어서며 1957년 3월까지 무려 5년 4개월간 전쟁병원으로 쓰였다.
이 교수는 "부경대 전사에서 군수사령부보다 더 오랜 기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의료기관"이라며 치열했던 의료구호사를 조명했다. 이어 "1955년 스웨덴 적십자사의 병원 인수에 반대해 시위를 벌이고, 국방부의 제5육군병원 설치 시도를 막아내며 1957년 4월 끝내 캠퍼스 반환을 이끌어낸 수산학교 학생들의 저항사도 함께 기록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워커하우스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11개 핵심 구성유산에 포함되지는 못했으나, 서사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연계유산'이라고 평가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워커하우스는 2016년 세계유산 등재 추진 초기 후보에 올랐으나, 화재와 복원으로 인한 원형 변화와 워커 상주 여부 등 사실관계의 한계로 구성유산 목록에서 빠졌다.
하지만 강 교수는 "구성유산에서 빠졌다는 것이 역사적 가치의 상실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미군이 해안과 가깝고 교통이 유리한 이 캠퍼스를 지휘 및 의료 거점으로 선택했던 '장소성'을 강조하며, "건물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고 현 위치에 보존하여 피란수도 부산이 전쟁을 딛고 국제사회와 연대했던 과정을 해설하는 장소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워커하우스와 캠퍼스의 전쟁사는 현재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게도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한 학생은 "학교 안에 워커하우스라는 건물이 있는 줄도 몰랐다"며 낯선 역사에 놀라움을 표했다. 현존 건물이 있더라도 정확한 역사 해설이 뒤따르지 않으면 기억이 전승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전문가들은 워커 개인의 확인되지 않은 일화를 걷어낸 자리야말로 미 8군의 지휘·통신 거점, 국제 의료진의 구호 활동, 캠퍼스 반환을 요구한 학생들의 저항이라는 다층적 역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고 입을 모았다.
1950년부터 1957년까지 캠퍼스에 새겨진 군사·의료·교육의 시간을 정밀하게 복원하는 작업이 피란수도 부산과 대학사에 남겨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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