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처럼 냉혹한 공주, 남성 혐오자, 괴물, 금사빠.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공주 투란도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자신이 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구혼자들의 목을 가차 없이 베면서도, 수수께끼를 푼 왕자 칼라프의 키스 한방에 무너져버리는 줏대 없는 여자.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냉혈 공주의 갑작스러운 굴복은 100년 가까이 숱한 논쟁을 낳았다. "마지막 키스는 진정한 사랑인가, 아니면 폭력인가."
예술의전당이 오는 22일부터 26일까지 총 4회 선보이는 오페라 '투란도트'는 이 오래된 논쟁에 새 시선을 예고한다. 논란의 중심인 결말은 그대로 두되, 관객들이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다르게 보도록 연출에 공을 들였다.
타이틀롤을 맡은 소프라노 에바 프원카는 지난 10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투란도트는 철학적인 면모를 많이 지닌 여성"이라며 "어떻게 보면 오해 받아온 캐릭터"라고 말했다. 이어 "투란도트는 다양한 결을 지닌 인물로, 지나치게 1차원적으로만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녀는 인간이 아닌 알레고리(寓意)"라고 설명했다.
정 연출은 이번 작품을 '푸치니발(發) 전쟁 종식 프로젝트'라고 소개하며, "겉으로는 중국을 배경으로 한 왕자와 공주의 전설적인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전쟁에 대한 통탄과 평화를 갈망하는 인류의 기원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작품에는 평화를 그리워하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작품 전반에 평화의 메시지가 내재돼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투란도트'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투란도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약속을 어기고 칼라프를 처형하거나, 두 사람이 서로를 죽이거나, 상대의 나라를 정복하는 등 연출에 따라 결말이 무궁무진하다. 푸치니가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채 열린 결말로 세상을 떠난 덕(?)에, 작곡가 프랑크 알파노가 푸치니의 초고를 바탕으로 만든 미완의 결말에 누구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다만 예술의전당의 '투란도트'는 기존 결말을 유지하면서도,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마지막 장면에서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정 연출은 "작품의 뿌리로 들어가면 갈수록 푸치니가 평화를 말하고자 한 점이 줄줄이 나왔다"며 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작품을 집필한 푸치니가 마지막 남은 목숨을 다해 전달하려 했던 평화의 메시지를 살려내겠다는 의욕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논란의 중심인 마지막 키스는 어떻게 그릴까. 정 연출은 마지막 키스를 '져줌으로써 진정으로 이기는 행위'로 해석했다. 자신을 먼저 내어주는 칼라프의 모습에 투란도트의 꽁꽁 얼어붙은 마음의 빙벽이 단숨에 무너져 내린다는 것.
에바 프원카 역시 "알파노의 웅장한 음악에 잔인한 연출이 더해지면 마지막 키스가 강간으로 잘못 해석되기도 한다"며 "이는 푸치니가 의도한 완벽한 짝을 원했던 공주가 칼라프를 사랑하게 되는 해피엔딩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투란도트 역의 소프라노 서선영은 이번 무대를 통해 관객들이 사랑에 빠지는 찰나의 순간을 느끼길 기대했다.
"생각해보면 마음이 바뀌거나 사랑에 빠지는 건 순간의 일이죠. 투란도트가 사랑에 빠지는 그 짧은 순간, 음악적인 여백이 있어요. 그 여백에서 마법 같은 시간을 느끼길 기대해요."
공연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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