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도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논설고문]
정부가 발표한 6·29 메가프로젝트를 둘러싸고 국가 전략산업에 대한 입지 논의가 뜨겁다. 서남권의 반도체·AI데이터센터, 충청권의 바이오·디스 플레이, 영남권의 피지컬AI·우주항공 등 권역별 성장축을 새롭게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지역간 기대와 우려가 겹치며 여론이 분분하다. 그러나 이제 핵심은 특정 지역의 유불리에서 벗어나, 국가가 선택한 5극3특 균형성장 전략을 어떻게 성공으로 연결할 것인가에 있다.
인재와 기업, R&D 인프라가 수도권으로 쏠리는 고질적인 악순환 속에서 지역 산업기반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이제 균형성장은 시혜적 배려가 아니라 국가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다. 국가 전략산업을 지역별 잠재력과 연계해 체계적으로 육성함으로써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산업지도를 그려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메가프로젝트는 과감한 정책적 결단이며, 지역산업정책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시도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처음이 아니다. 참여정부의 균형발전, 이명박 정부의 광역경제권, 이후 지방시대 전략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이름을 달리하며 지역 성장축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여기서 성패를 가른 것은 명칭이 아니라 ‘얼마나 일관되게 실행했는가’였다.
당시에도 반도체 등 국가 핵심산업을 수도권에만 집중시키는 것은 공급망 안정성과 균형성장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으며, 잠재력 있는 비수도권 지역에도 거점을 육성해야 한다고 제안했고 일부 반영되기도 했다. 진정한 균형성장은 입지 선정 이후 지방정부의 실행 의지, 기업의 투자, 대학·연구기관의 혁신 역량, 중앙정부의 지속적인 제도적 지원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 자생력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이번 메가 프로젝트의 거시적 방향성에 공감한다.
최근 정부는 5극3특 전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지방분권균형 성장법」을 개정하고 균형성장영향평가를 도입했으며, 초광역 협력사업 재정 기반도 마련했다. 산업통상부의 「산업 R&D 혁신방안」과 지역 R&D, 제조AI(M.AX), 권역별 첨단산업 육성은 지역정책을 산업정책으로 전환하려는 중요한 시도다. 정책의 핵심은 과거처럼 지역에 예산을 나누어주는 방식이 아니라, 수요 앵커기업이 중심이 되어 실제로 투자-고용- 생산으로 이어지는 산업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지역은 지원 대상이 아니라 산업 경쟁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번 메가프로젝트를 둘러싸고는 입지의 적정성과 전력·용수 등 산업 인프라의 부족을 우려하고 있다. 국가 전략산업의 입지 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어느 지역이 더 유리한가를 따지는 데에서 나아가, 국가적 결정을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에 국가적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번 결정은 대한민국 산업정책의 역사에서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수도권 중심으로 형성된 첨단산업 지도를 과감하게 재편하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위험도 있다. 산업 인프라 확충에 대한 치밀한 실행 계획 없이 추진된다면, 결국 정치적 결정이었다는 비판과 함께 지역사회에 상실감만 남길 수도 있다.
이번 메가프로젝트가 '대한민국 산업지도를 바꾼 결정'으로 평가받을지, 아니면 단순한 지역개발사업으로 남을지는 지금부터의 촘촘한 실행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첫째, 균형성장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 전략이다. 지역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산업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구조 전환이다. 수도권과 지역이 함께 성장해야 국가 전체의 혁신 역량이 유지된다. 수도권 인구 분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독자적인 산업 거점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둘째, 정부는 선정이 아니라 ‘완성’에 책임을 져야 한다. 전력, 용수, 용지, 교통, 인재 등 핵심 인프라는 입지 선정 이후가 아니라 동시에 설계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호남권 등 모든 권역에 대한 종합적인 실행계획이 필요하다. 정부가 연일 점검회의를 열어 각 권역의 인프라 구축을 점검하고 속도전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셋째, 지방정부는 더 이상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다. 대통령이 청와대 중심의 전담기구와 월례회의를 통해 사업을 점검하겠다고 밝힌 만큼, 각 시·도지사 역시 메가프로젝트 전담 상황관리체계를 구축해 인허가와 인프라, 기업애로 해소, 인력 양성까지 전 과정을 책임 있게 관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방자치의 본질이다.
넷째, 지역의 산업생태계가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만큼 중요한 것이 지역의 준비다. 첨단산업은 대기업 하나를 유치한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대학과 연구기관, 앵커기업이 함께 국가 R&D를 기획하고 산업생태계를 구축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지역 차원의 정책 싱크탱크를 육성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거 세계스카우트잼버리를 통해 국가 프로젝트가 준비 부족으로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지 경험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후속 투자와 제도 설계에 매진하고, 기업은 투자로 응답하며, 지방정부는 사업의 주체로 끝까지 실행을 책임져야 한다.
세계는 지금 반도체와 AI, 미래차, 바이오, 방산을 중심으로 새로운 산업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지역이 아니라 글로벌 산업 클러스터다. 지역 논쟁에 머무르는 순간 국가 경쟁력도 함께 약화된다.
5극3특 메가프로젝트는 대한민국 산업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국가적 선택이다. 이 전략이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이번 결정은 또 하나의 지역정책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지도를 새롭게 그린 중차대한 결단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단 하나다.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것인가, 아니면 논쟁으로만 끌고 갈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메가프로젝트의 성공 조건은, 끝까지 책임지는 실행이다.
김학도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정치경제학 박사 △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통상교섭실장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현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현 충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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