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도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논설고문]
중동 정세 불안으로 유가가 급등하고 고물가·고환율이 겹치면서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외 악재 속에서도 올해 1분기 한국 경제 성장률은 35개 OECD 회원국중 2위를 기록하며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 었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은 역대 위기 때마다 산업과 무역의 발전을 지렛대 삼아 위기를 극복해 온 끈질긴 DNA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사는 곧 ‘위기극복의 역사’이자 ‘무역영토 확장의 역사’였 다. 1960년대 절대 빈곤 속에서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선택한 이후, 우리 경제는 무역을 통해 산업화를 이루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지만, 위기 때마다 대한민국은 무역을 돌파구로 삼아 더 높이 도약해 왔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은 대표적인 사례다. 국제 원유 가격 급등 으로 세계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졌을 때, 대한민국은 오히려 중동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오일머니를 확보한 중동 산유국에서 건 설 수주를 확대하며 외화를 벌어들였고, 이는 산업화의 중요한 자금줄이며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과 유럽 시장이 침체되자 우리 기업들은 중국과 신흥시장으로 빠르게 방향을 틀었다. 선진국 중심의 수출 구조를 신흥국 시장으로 과감히 다변화하며 세계에서 가장 빨리 위기를 극복한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지금 대한민국은 다시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중동사태 장기화는 국제 유가 상승과 공급망 불안을 동시에 초래하고 있으며, 세계 교역 성 장세 둔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구조적 변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여기에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 제조업의 해외 이전 확대 등 국내 산업 기반의 약화 문제까지 겹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대한민국 무역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내고 있다. AI 투자 확대와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 폭증에 힘입어 반도체 수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금년 5월 372억 달러를 기록했다. 전체 수출도 3개월 연속 850억 달러 이상의 역대 최고치를 연 이어 갈아치웠다.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연간 수출 1조 달러’ 달성 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하지만 화려한 성과 이면에는 구조적 위험도 존재한다. 현재 수출 증가 세가 사실상 반도체 단일 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 도체는 대한민국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이지만, 특정 산업 편중은 국가 경제의 안정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대만이 TSMC와 반도체 산업 의존 구조 속에서 글로벌 반도체 경기 변동에 민감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우리 역시 단일품목 의존이 심화될 경우 외부 리스크에 취약해질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지속 가능한 수출 1조 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대만형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는 '구조적 체질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수출품목의 다변화를 더욱 서둘러야 한다. 자동차·배터리·바이오 등 기존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시스템반도체·로봇·AI·방산· 친환경에너지 등 미래 전략산업을 새로운 수출축으로 키워야 한다.
둘째, 소비재 수출 확대가 중요하다. 최근 화장품과 가공식품이 각각 연간 100억 달러 이상의 수출을 기록하며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K-컬처 확산을 기반으로 한 K-푸드와 K-뷰티 콘텐츠 산업은 과거 중간재 중심의 수출 구조를 넘어 세계 소비시장을 직접 공략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셋째, 중소·중견기업과 서비스 산업의 수출 저변 확대가 절실하다. 25년 98,000여개의 수출 중소기업수를 대폭 늘리고, 세계 평균(20%)에 못 미 치는 서비스 수출 비중(15%)도 끌어올려야 한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구조를 넘어 보다 많은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도록 디지털 무역, 해외 마케팅, 물류·금융 지원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넷째, 수출시장 다변화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에 편중된 시장을 넘어 아세안·중동·중남미·아프리카 등 신흥국과 거대소비재 시장으로 통 상 영토를 확대해야 한다. 과거 중동 건설시장 진출이 오일쇼크를 극복 한 돌파구였듯이, 지금도 새로운 시장 개척은 위기 극복의 핵심 열쇠이 다.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수출의 경쟁력은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탄탄 한 산업구조를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독보적 기술력, 제조현장의 AI 전환, 공급망 재편 대응 능력, 탄소규제 등 미래 변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 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과거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주역이 우리 국민이었듯, 오늘날 공급망과 안보가 결합된 새로운 전략 경쟁 시대에도 미래를 바꾸는 힘도 결국 국민에게 있다.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기업가들, 산업 현장에서 세계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내는 근로자들, 그리고 대한민국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 는 국민들의 역량이 하나로 모일 때 지금의 위기 역시 새로운 도약의 계 기가 될 수 있다.
정부 역시 지금의 반도체 호황이 벌어준 골든타임을 결코 허비해서는 안 된다. 단기 실적에 안주하기보다 장기적 비전을 담은 산업정책을 수립하고, 산업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지속 가능한 무역 생태계 구축에 국가 역 량을 집중해야 한다. 수출 1조 달러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김학도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정치경제학 박사 △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통상교섭실장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현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현 충북대 특임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