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 원칙 상식] 40년 만의 엔저가 한국 경제에 던지는 질문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62엔을 넘어서며 엔화 가치가 40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소식은 한국 산업계에 비상령을 의미했다. 자동차와 철강, 기계, 전자 등 일본과 경쟁하는 수출기업들은 가격 경쟁력 약화를 걱정했고, 정부와 시장은 원·엔 환율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엔저는 곧 한국 경제에 악재라는 공식이 오랫동안 통했다.

하지만 2026년 한국 경제는 과연 1980~1990년대와 같은 구조일까. 이번 엔저는 오히려 우리에게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엔화가 얼마나 떨어졌는가'보다 '한국 경제는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의 산업 구조를 보면 과거와는 상당히 달라졌다. 한국 수출의 중심은 반도체와 첨단 정보기술 산업으로 이동했고, 일본과 직접 경쟁하던 품목의 비중은 크게 줄었다. 글로벌 생산기지를 해외로 분산한 기업도 많다. 한·일 수출경합도 역시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처럼 엔저만으로 한국 수출이 크게 흔들리는 구조는 아니라는 의미다. 오히려 일본산 부품과 소재를 보다 낮은 가격에 들여올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된다.

그렇다고 안심할 일만은 아니다. 엔저의 영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한국인의 소비가 일본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여행과 직구가 늘면서 국내에서 소비될 돈이 해외로 흘러가고 있다. 서비스수지 악화와 내수 소비 유출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등장한 것이다.

과거에는 엔저가 공장을 흔들었다면 이제는 소비를 흔들고 있다.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이 영향을 받고, 수출보다 내수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환율 자체보다 경제 체질이다. 환율은 국제 자금 이동과 금리, 지정학적 변수에 따라 언제든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반면 생산성과 기술력, 산업 경쟁력은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이다.

오늘날 세계 시장에서 기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환율보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첨단 제조기술, 공급망 안정성, 브랜드 가치다. 일시적인 환율 효과보다 기술과 혁신이 만드는 경쟁력이 훨씬 오래간다.

40년 만의 엔저는 분명 주목해야 할 경제 현상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 경제가 던져야 할 질문은 '엔화가 얼마나 더 떨어질까'가 아니라 '환율 변화와 관계없이 경쟁할 수 있는 산업을 얼마나 더 키울 수 있을까'여야 한다.

환율은 늘 변한다. 그러나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40년 만의 엔저는 이제 환율만으로 경제를 설명할 수 있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경제가 집중해야 할 곳은 외환시장의 숫자가 아니라 미래 산업을 키우는 기술과 혁신의 현장이다.

 

30일 도쿄의 한 증권사 전광판에 엔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사진AFP연합뉴스
30일 도쿄의 한 증권사 전광판에 엔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사진=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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