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오랜만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취재 수첩 한 권을 손에 쥔 채 서문시장의 활기와 동성로의 불빛, 그리고 근대골목의 사계절을 수없이 오갔던 기억이 선명하다. 늘 마주하던 익숙한 도심의 풍경을 뒤로하고 이번 여정에서는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온, 오래된 시간 속으로 발길을 옮겨보기로 한다.
군위의 고즈넉한 풍경에서 시작해 달성의 깊은 품으로 이어지는 1박2일 여정. 발길이 닿은 묘역과 정원, 미술관과 사당은 저마다 다른 공간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수백 년 세월을 품어 안은 채 나지막한 이야기를 건넨다는 점에서 꼭 닮았다. 모진 풍파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오랜 세월을 버티며 가치를 이어온 사람들의 온기와 흔적이 그곳에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 군위 엄흥도 묘소, 후손들이 지켜온 충절
영월의 호장이었던 엄흥도는 어린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른 인물로 전해진다. 세조의 서슬 아래 누구도 쉽게 나설 수 없던 시절, 그는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고 단종의 마지막을 지켰다.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단종의 비극이 다시 조명되면서 엄흥도의 이름도 더 널리 알려졌다.
그의 마지막 안식처를 둘러싼 이야기는 지금도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다. 강원 영월에도 엄흥도 묘역이 전해지고, 군위 문중은 엄흥도가 후환을 피해 둘째 아들 광순과 함께 이곳으로 숨어들어 생을 마쳤다고 본다. 엄흥도의 18대 직계 후손 엄종훈씨는 “후손들이 대대로 가슴에 품어온 족보와 구전 기록이 그 근거”라고 강조했다.
역사적 정설이 어느 쪽인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는 수백 년 동안 이 외진 곳을 찾아 잡초를 뽑고 봉분을 다독여 왔다는 사실이다.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관리된 묘역의 자태가 그 오랜 정성을 증명하는 듯하다.
◆ 부계면 사유원, 노거수가 이룬 사색의 숲
엄흥도 묘역이 남긴 여운을 안고 군위 부계면 사유원으로 향한다. 최근 대구·경북 여행지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공간 중 하나다. 사유원은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에 놓였던 오래된 모과나무를 지켜내려는 한 사람의 뜻에서 시작됐다. 전국 각지에서 옮겨온 노거수들이 팔공산 자락에 뿌리를 내렸고 시간이 흐르며 정원과 건축,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사색의 공간이 됐다.
약 70만㎡ 부지에는 수백 년 세월을 견뎌온 모과나무 108그루를 비롯해 다양한 수목과 석재가 어우러져 있다. 모진 풍파에 굽고 뒤틀린 나무와 거칠게 갈라진 수피, 하늘을 향해 기묘하게 뻗은 가지들이 세월의 흔적을 말없이 보여준다.
숲길을 걷는 내내 각양각색 건축물과 자연스럽게 마주한다.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소요헌과 소대, 건축가 승효상이 참여한 현암과 사담 등이 팔공산 풍경 속에 자리한다. 이 건축물들은 풍경을 밀어내지 않는다. 산세와 숲길 사이에 몸을 낮추고 자연의 일부처럼 스며든다.
사유원의 매력은 걸음을 늦출 때 비로소 명확해진다. 가파른 길을 지나 숨이 고를 때쯤 팔공산 능선이 시야를 채운다. 그중에서도 오래 머물게 되는 곳은 모과나무 군락이다. 바람을 따라 서걱이는 잎사귀 소리만 나지막이 퍼진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니 바쁜 일상 속에 복잡했던 머릿속이 이내 맑게 비워진다.
◆ 대구간송미술관, 추사의 난초에 담긴 세월
이튿날 여정은 수성구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시작한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일제강점기 사재를 털어 지켜낸 문화유산을 지역에서도 가까이 만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대구간송미술관은 개관 이후 대구의 새 문화 거점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미술관을 찾은 이유는 기획전 ‘추사의 그림 수업’을 보기 위해서다. 대중에게 추사 김정희는 서예가이자 ‘세한도’ 작가로 익숙하다. 이번 전시는 그를 제자들을 길러낸 스승이자 그림을 통해 자기 세계를 완성해간 예술가로 조명한다.
추사가 남긴 난초 그림 앞은 관람객들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다. 이를 감상하는 관람객들 시선이 퍽 진중하다. 젊은 시절의 난초가 힘 있는 필치와 긴장감을 품고 있다면 말년의 난초는 군더더기를 걷어내 한층 유연하고 깊이가 있다. 화면을 채운 선은 몇 가닥에 불과하지만 비워냄으로써 오히려 채워지는 여백의 미가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보 ‘세한도’와 보물 ‘난맹첩’ ‘불이선란도’ 등 추사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7월 5일까지 이어진다.
◆ 달성 묘골마을, 일상에 녹아든 선비의 정신
미술관을 떠나 달성군 하빈면 묘골마을로 향한다. 사육신 중 한 명인 충정공 박팽년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순천박씨 집성촌이다.
돌담길을 따라 기와집들이 늘어선 골목 안쪽에는 지금도 주민들의 가옥마다 온기가 감돈다. 수백 년 세월의 자취가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마을 전체는 마치 하나의 살아 있는 박물관과도 같다.
육신사로 향하기 전에 박팽년 선생 후손이 운영하는 한옥 카페 ‘묘운’에 들른다. 전통 한옥 구조를 살리면서도 머무는 이의 편안함을 놓치지 않았다. 반듯하게 정돈된 마당과 기와지붕,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마을 풍경이 제법 평온하다.
찻잔 너머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대구간송미술관에서 마주한 추사의 난초를 떠올린다. 묘골마을이 품은 정취도 그와 닮았다. 요란하지 않기에 오히려 깊은 여운을 남긴다. 덜어내고 비워낸 자리마다 세월의 무게가 은은하게 배어나는 곳, 참 담담해서 오래 머물고 싶은 묘운의 풍경이다.
◆ 하빈 육신사, 꺾이지 않는 기억의 힘
묘골마을 깊숙한 곳에 자리한 육신사에서 이번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육신사는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목숨을 바친 사육신, 곧 박팽년·성삼문·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이곳이 달성 하빈에 자리한 배경에는 박팽년 후손들의 극적인 서사가 있다. 박팽년의 둘째 아들 박순의 아내 성주 이씨는 멸문지화 속에서도 유복자를 지켜냈다. 그 아이는 훗날 박비로 불리다 성종 때 사면을 받고 박일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사육신 혈통 가운데 유일하게 이어진 박팽년 가문의 이야기는 이 마을에 깊게 남아 있다.
육신사의 제향은 여러 차례 부침을 겪었다. 처음에는 박팽년을 중심으로 제향이 이어졌고 이후 사육신을 함께 모시는 공간으로 확장됐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는 아픔도 겪었으나 후손들은 제향을 끊지 않았다. 오늘의 육신사는 그 기억을 다시 세운 공간이다.
사당 규모가 크지는 않다. 그러나 기둥 하나, 문고리 하나마다 후손들이 닦고 조여 온 시간이 남아 있다. 큰 목소리로 충절을 말하지 않아도 이곳에 서면 오래 지켜온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엄흥도 묘역에서 시작해 사유원의 모과나무와 대구간송미술관, 묘골마을을 지나 육신사로 이어진 여정. 머문 곳은 저마다 달랐지만 오래된 시간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흔적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닮았다.
화려한 도심의 야경 대신 묘역과 정원, 미술관과 사당을 채운 오래된 시간이 이내 폐부 깊이 스며든다. 수백 년 세월을 건너와 가슴에 새겨진 이 명징(明澄)한 이야기들은 여행이 끝난 후에도 쉽게 잊히지 않을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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