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연의 타임캡슐] 서울에 묶인 권한, 지방의 시간을 빼았다

  • 소멸 사회로 가는 길목에 서다 (3)

 
황승연
[황승연 교수]

  
 
대한민국은 흔히 일본의 뒤를 따라간다고 말한다. 부동산 가격도, 저성장도, 고령화도. 그러나 인구 문제만큼은 단순한 '추격'이 아니다. 한국은 일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소멸 사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일본이 40여 년에 걸쳐 겪은 변화를 우리는 불과 10~20년 사이에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인구 감소 현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경제와 산업, 교육과 국방, 지방 공동체와 복지 재정, 그리고 기업의 지속 가능성까지 국가를 지탱하는 모든 기반이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일본이 먼저 경험한 소멸 사회의 현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국가다. 1990년대 이후 출산율이 장기간 1.3명 안팎에 머물고 평균수명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늘어나면서 2007년에 이미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1%를 넘어섰다. 현재는 약 30%에 이른다.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1995년 약 8700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감소하여 현재는 7300만명 수준까지 줄었다.
 
인구 감소는 지방부터 무너뜨렸다. 일본 총무성 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의 빈집은 약 900만호에 달한다. 전체 주택의 13.8%, 다시 말해 집 7~8채 가운데 한 채가 비어 있는 셈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집을 무료로 주거나 1엔에 매물로 내놓는 사례까지 등장하였다. 사람이 떠난 마을에는 상점이 문을 닫고 병원이 사라지며 버스와 철도 노선이 폐지되었다.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학교는 통·폐합되었고 산부인과와 소아과가 없는 지역도 늘어났다.

주민의 절반 이상이 65세를 넘어 공동체를 유지할 최소한의 노동력과 소비가 사라진 마을도 크게 늘었다. 이미 2014년 일본 민간연구기관인 일본창성회의는 전국 1799개 기초 지방자치단체 중 49.8%인 896개 지방자치단체가 장기적으로 소멸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여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지방 소멸이 더 이상 가설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청년들의 삶도 달라졌다. '초식남', '사토리 세대', '비혼 문화'라는 말이 사회현상이 되었다. 경쟁과 출세보다 최소한의 삶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늘어났다. 물질적 욕망을 버려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잃었기 때문이다. 성장 사회가 축소 사회로 바뀌면서 인간의 가치관까지 변했다.
 
일본의 대응과 한계, 그리고 한국이 더 위험한 이유
 
일본 정부도 이러한 위기를 방관하지는 않았다. 1994년 '엔젤플랜'을 시작으로 '신엔젤플랜', '저출산사회대책기본법', '어린이·육아지원법' 등을 차례로 시행하였다. 아동수당 확대, 무상보육, 육아휴직 확대, 보육시설 확충 등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였다. 최근에는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이라며 연간 약 3조엔 규모의 추가 재정을 편성하고 있다.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2024년 일본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230만명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정년을 65세 이상으로 연장하고 일부 기업은 70세까지 계속고용을 실시하고 있다. 제조업과 물류업은 자동화와 인공지능을 적극 도입하고 있으며, 편의점과 음식점에서는 노인 종업원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수십년 동안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음에도 출산율은 여전히 1.15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인구 감소를 막지 못했고 다만 감소 속도를 조금 늦추었을 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이다. 한번 시작된 인구 감소는 그만큼 되돌리기 어렵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보다 더욱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3년 0.72명, 2024년 0.75명, 2025년에도 약 0.8명 수준으로 OECD 국가 가운데 1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일한 국가다.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대체출산율 2.1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일본이 '감소 사회'라면 한국은 이미 '소멸 사회'의 문턱을 넘어섰다. 고령화 속도 또한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1%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 2050년에는 약 40%가 65세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가능인구가 노인 한 명을 부양하는 비율은 현재 약 3.4명에서 2035년에는 2명 안팎, 2050년에는 1.3명 수준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모두 지금의 제도로는 지속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에 남은 마지막 골든타임
 
인구 감소는 단순히 아이 숫자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력이 줄고 소비가 감소하며 창업이 위축된다. 대학은 신입생을 채우지 못하고 군은 병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중소기업은 후계자를 찾지 못해 문을 닫고 지역 경제는 활력을 잃는다. 세금을 내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연금과 의료비는 계속 늘어난다. 결국 남아 있는 생산가능인구에게 더 많은 세금과 부담이 집중된다.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되면 국가는 성장이 아니라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현금 지원이나 일회성 출산장려금만으로는 부족하다. 청년들이 미래를 믿고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기업의 성장 환경을 조성하고, 과도한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며, 지방에도 독자적인 교육과 문화, 산업이 함께 살아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수십년에 걸쳐 축적된 기업이 세대를 넘어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업 승계를 가로막는 제도적 장벽도 함께 제거해야 한다.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있어야 청년은 결혼과 출산을 계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 모두 이 문제를 국가의 생존 문제로 인식하는 일이다. 지금의 저출산과 고령화는 어느 한 부처나 한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정책 과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존립과 직결된 문명적 과제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늙어가면서 값비싼 대가를 치렀고 지금도 치르고 있다. 우리는 아직 선택할 시간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않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훨씬 빠르고 출산율은 일본보다 훨씬 낮다. 다시 말해 일본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일본보다 더 빠르게 소멸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일본은 잃어버린 40년을 경험했지만, 한국은 지금과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잃어버린 한 세대'를 넘어 국가의 지속 가능성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인구는 경제지표가 아니라 국가의 생명력이다. 인구가 사라지면 시장도, 기업도, 복지도, 국방도 함께 무너진다. 소멸 사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지금의 선택이 만들어 내는 미래이다. 지금이 대한민국의 마지막 골든타임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지방의 자율과 책임이다
 
지금까지 소멸 사회를 막겠다며 중앙정부가 내놓은 수많은 정책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수백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수도권 집중은 더욱 심해졌고 지방 소멸은 오히려 빨라지고 있다. 정책이 실패했는데도 정책을 만드는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돈도 권한도 중앙정부가 쥐고 있고, 지방은 중앙정부의 예산과 허가를 기다리는 처지에 놓여 있다. 서울에 있는 중앙정부와 국회가 지방의 현실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한계에 이른 것이다.
 
일본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9년 지방분권 개혁을 단행하였다.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하면서 각 지방이 스스로 살 길을 찾도록 했다. 그 결과 모든 지역이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사례들이 나타났다. 후쿠오카시는 규제 완화와 창업 지원을 통해 일본 최고의 스타트업 도시로 성장했고, 도야마시는 '콤팩트 시티' 정책으로 고령사회에서도 도시 기능을 효율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인구 5천명 남짓한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정은 정보통신 기업을 적극 유치하여 젊은 인구가 다시 찾아오는 마을로 변모하였다. 중앙정부가 만든 성공이 아니라 지방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진 결과였다.
 
대한민국도 이제 지방을 중앙정부의 지원 대상이 아니라 국가 발전의 주체로 바라보아야 한다. 지방정부에 징세권과 예산권과 재정운영권과 규제 완화 권한, 산업 유치 권한을 과감하게 넘겨주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지도록 해야 한다. 모든 지방이 살아남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몇몇 지역이 성공하면 그것이 다른 지방의 혁신을 이끄는 경쟁이 된다. 지금처럼 모두를 똑같이 관리하는 중앙집권 체제로는 모두가 함께 쇠퇴할 가능성이 더 크다.
 
소멸 사회는 인구 문제만이 아니라 국가 운영 방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같은 방법을 반복한다면 소멸 사회는 더 이상 예측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더 유능한 중앙정부가 아니라 더 강한 지방이다. 지방이 살아야 기업이 살고, 기업이 살아야 청년이 남으며, 청년이 남아야 아이가 태어난다. 지방분권은 지방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국가 개혁의 출발점이다.

황승연 필자 주요 이력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전 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경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굿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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