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SK가 호남권 반도체 거점화를 중심으로 인공지능(AI) 시대 새 산업지도를 그리고 있다. 호남에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거점을 조성하고, 충청과 영남, 인천 등 다른 권역에도 디스플레이·배터리·부품·바이오 투자를 넓히는 방식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산업 구조를 지방으로 분산해 국가 균형발전과 공급망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호남권을 포함한 지방 반도체 투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29일 청와대에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열고 반도체와 AI, 피지컬AI를 중심으로 한 국토 공간 대전환 구상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은 호남 반도체 거점화다. AI 반도체 수요가 커지면서 패키징과 테스트 등 후공정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후공정은 전공정 팹보다 입지 유연성이 상대적으로 커 지방 분산의 현실적 출발점으로 꼽힌다. 호남은 재생에너지와 용수, 대규모 부지를 갖춘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가 전력과 용수 확보에 부담을 겪는 상황에서 호남이 새 대안으로 부상한 배경이다.
삼성은 호남권 반도체 투자와 함께 전국 주요 사업장을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호남을 반도체 후공정 축으로 삼고, 충청권은 디스플레이·배터리·반도체 부품, 영남권은 모바일·전자부품·제조, 인천은 바이오 거점으로 키우는 식이다. 호남을 시작점으로 삼되 권역별 산업 기반을 묶어 전국 단위 첨단산업망을 짜겠다는 그림이다.
충청권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와 삼성SDI 천안사업장, 삼성전기 세종사업장 등이 거론된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배터리, 반도체 기판 등 AI 시대 핵심 부품을 키울 수 있는 기반이다. 영남권에서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과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삼성SDI 울산사업장이 제조 경쟁력 강화 축으로 꼽힌다. 인천 송도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중심으로 바이오 사업 확장 가능성이 크다.
SK하이닉스도 기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청주 생산축을 유지하면서 호남 또는 충청권에 후공정·생산 거점을 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AI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면서 생산능력과 패키징 역량을 동시에 확충해야 하는 상황이다. 호남 반도체 투자 논의가 삼성만의 구상이 아니라 국내 메모리 산업 전체의 생산기지 다변화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구상이 단순한 지역 배분이 아니라 AI 시대 산업 재배치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반도체는 AI 연산의 기반이고, 배터리와 ESS는 전력 인프라를 떠받친다. 디스플레이와 모바일, 전장 부품은 피지컬AI와 로봇, 자율주행 확산과 맞물린다. 바이오는 고부가 첨단 제조의 또 다른 축이다. 권역별 강점을 활용하면 수도권 일극 구조를 완화하면서도 공급망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호남 반도체 거점화는 단순한 지역 투자가 아니라 AI 시대 산업지도를 다시 짜는 출발점"이라며 "다른 권역 투자와 맞물리면 수도권 중심 첨단산업 구조가 전국 단위로 확장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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