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 칼럼] 평양의 환대, 베이징의 셈법

  • …시진핑 주석의 평양행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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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교수(연구실장)]



지난 6월 8일 평양 순안공항에 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영접했다. 김일성광장에 두 정상의 대형 초상화가 나란히 걸렸을 때, 국제사회는 7년 만에 재현된 최고 수준의 초밀착 의전에 주목했다. 외교·경제는 물론 군사 분야까지 교류를 전면 확대하기로 한 이번 만남은 겉보기엔 단단한 '혈맹의 복원'처럼 읽힌다. 그러나 화려한 말의 성찬 뒤에 숨겨진 구조적 이해관계를 뜯어보면, 이번 평양행은 철저히 자국 우선주의와 패권 경쟁을 염두에 둔 중국식 지정학적 셈법에 따른 결정임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이완을 틈탄 북·중·러 간 외교에서 북한식 시계추 외교가 거둔 작은 승리이기도 하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방북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격히 러시아 쪽으로 기울어진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대북 영향력을 다시 확보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행보라고 평했다. 영국 BBC 또한 "이번 방북은 단순한 친선 도모가 아니라 대북 레버리지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짚으며 겉포장과 다른 중국의 철저한 손익계산서에 주목했다.

이번 시진핑 주석의 방북이 순망치한(唇亡齒寒)에 비견되던 북·중 관계가 북·러 밀착 행보로 인해 균열을 보인다는 평가 속에 이루어졌기에 그 진의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던 것도 사실이다. 북·러 밀착은 중국의 개입을 불렀고, 결과적으로 북한의 신장된 외교적 입지를 공인해준 모양새가 되었으니 김정은 위원장이 성대한 의전을 준비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평양 순안공항을 가득 채운 붉은 오성홍기와 성대한 환영 인파는 겉보기엔 피로 맺어진 북·중 혈맹의 완벽한 복원처럼 보였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미국을 향한 경고성 메시지로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동북아 지정학의 내면을 뜯어보면, 이번 시진핑 주석의 평양행은 결속의 과시보다는 급격히 가까워진 북·러 관계에 제동을 걸기 위한 중국의 전략적 불안감이 반영된 조치다. 돌이켜보면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에 뒤이은 푸틴과 김정은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체결은 중국에 거대한 외교적·안보적 딜레마를 안겼다. 북한이 동유럽의 벨라루스처럼 러시아의 전초기지로 전락해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통제 불능 상태로 몰고 가는 것은 동북아 안정을 입이 닳도록 강조해온 중국이 원하는 시나리오가 결코 아니었다.

반대로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북·중간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 내지는 북·중·러간 3각 연대를 통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항하는 것에 비해, 중국이 북핵 문제를 주도하거나 동북아 내 영향력을 과도하게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복잡한 속내를 갖고 있다. 중국이 자신들이 구축한 대북 영향력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균형을 맞추기를 원하는 것이 이미 북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러시아의 셈법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동북아 지정학의 본질적인 공포는 북·러의 폭주가 한·미·일 안보 공조를 유례없이 결속시키고, 나아가 나토(NATO)의 영향력까지 아시아·태평양으로 끌어들이는 역풍을 낳는다는 점에 있다. CNN은 "시 주석이 이번 방북에서 과거와 달리 '한반도 비핵화'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 주석은 이번 방북을 통해 북한의 핵문제를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안보는 러시아,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려는 북한의 이른바 ‘안러경중(安露經中)’ 노선을 차단하고자 했다. 이는 북한의 핵문제를 유보하더라도 북한을 확실히 중국의 영향력 아래 묶어두겠다는 지정학의 발로다.

그렇다면 비핵화 외교는 종말을 맞이했을까? 북·중 언론 보도에 숨겨진 고도의 심리전을 보면 동상이몽의 성격이 엿보인다. 이번 방북을 계기로 양국 관영 매체는 겉으로는 결속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철저히 다른 계산을 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수 없다. 시 주석은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6.8) 기고문을 통해 "세계 다극화와 포용적 경제 세계화를 공동 추진하자"고 역설하며 북·중 관계의 발전을 "혼란한 시기의 필수 과제"로 규정했다. 특히 과거와 달리 '한반도 문제'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각국의 실정에 맞는 사회주의 길과 상호 주권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밝히며 북한의 체제와 핵 보유 문제를 묵인하는 태도를 취했다.

반면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와 관영 신화통신은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면서도, 서방과의 전면적 대립 구도에 완전히 말려들지 않으려는 절제된 톤을 유지했다. 중국 내부 보도는 북·러가 보여준 군사적 밀착과는 거리를 두며, 북한을 미·중 패권 경쟁의 최전선 완충지대로 관리하겠다는 프레임을 고수했다. 노동신문 환영 사설(6.8)이 "전통적인 조중친선을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맞게 발전시키자"며 중국의 무조건적인 경제적·안보적 방어벽 역할을 노골적으로 기대한 것과도 대조적인 대목이다.

분명한 것은 북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명시적 입장 변화는 없다는 점이다. 외교부 린젠 대변인은 시 주석의 평양행 당일 브리핑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 측의 입장과 정책은 연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은 남북한 사이에서 중국이 양자 관계를 고려한 전략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안보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의 분석대로, 중국은 안보리 제재를 뒤로 우회해 북한산 광물 밀수와 정유 공급을 묵인하면서도, 북한의 폭주가 자국의 대유럽·대미 경제 관계를 완전히 파탄 내지 않도록 조율하는 전략적 후견인 체제를 관영 언론을 통해 정교하게 연출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안은 무엇인가? 북·중 초밀착과 북핵 묵인이라는 거대한 파고가 몰아치는 지금, 대한민국 외교의 기존 문법은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을 “중국을 겨누는 단검”(5.22)으로 비유하여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 미·중 갈등 틈바구니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하거나, 한·미·일 공조라는 단선적인 동맹 강화 구호에만 매몰되는 방식으로는 북·중·러의 구조적 밀착과 북핵 위협을 타개할 수 없다.

이제 한국은 미·중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에서 벗어나, 판을 뒤흔들 수 있는 독자적 안보 생존 카드를 쥐고 공세적인 국익 외교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 중국이 한반도 정세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의 독자적 핵무장론 확산과 미국의 전략자산이 한반도 및 주변 해역에 상시 배치되는 상황이다. 외신들 역시 한국의 전략적 전환 필요성을 지적한다. 블룸버그 등 외교 전문 매체들은 동북아 안보 지형이 요동칠수록 한국이 독자적인 억제력을 확보하라는 대내외적 압박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는 이 잠재적 카드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중국을 향한 강력한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중국이 북한의 핵 고도화와 밀수를 방조한다면, 한국 역시 국가 생존을 위해 생존 차원의 안보 선택을 고려할 수 있음을 베이징과 워싱턴의 지도부에 분명히 경고해야 한다. 즉, 북한의 군사적 목적을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 중국의 안보 국익에도 이롭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되, 우리의 생존을 타국의 선의에 맡기지 않는 영리한 외교만이 다가올 격랑을 헤쳐 나갈 유일한 길이다.
 
한기호 필자 주요 이력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교수(연구실장) ▷연세대 통일학 박사 ▷통일부 과장(서기관) ▷(사)북한연구학회 대외협력위원장


  ▷연세대 통일학 박사 ▷통일부 과장(서기관) ▷(사)북한연구학회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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