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채권시장에서 심상치 않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국고채 금리가 전 구간 4% 시대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이후 외국인 자금이 30조원 넘게 유입됐음에도 금리 상승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시장은 이미 새로운 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금리 상승이 아니다. 저금리 시대의 종료, 그리고 고금리 뉴노멀의 시작이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금리를 경기 조절 수단 정도로 생각한다. 경기가 나쁘면 내리고, 물가가 오르면 올리는 정책 변수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는 변화는 그보다 훨씬 구조적이다.
한국 경제는 지난 20여 년 동안 사실상 저금리 체제 위에서 성장해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은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고 코로나19 이후에는 그 규모가 더욱 커졌다. 돈은 넘쳐났고 금리는 낮았다. 가계는 대출을 늘렸고 기업은 차입을 통해 투자를 확대했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도 풍부한 유동성을 먹고 성장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AI 시대는 예상보다 많은 자금을 요구한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전력망과 통신 인프라 구축에는 천문학적 자본이 필요하다. 결국 시장은 더 많은 자금을 요구하게 되고 이는 장기적으로 금리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국 경제의 체질이 아직도 저금리 시대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가계부채는 여전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영끌과 빚투의 기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금리가 1~2%포인트만 올라도 가계의 소비 여력은 크게 줄어든다. 이미 일부 취약차주들은 원금은커녕 이자 부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코로나19 시기에 빚으로 버텼던 많은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높은 부채를 안고 있다. 매출은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는데 금융비용만 늘어나고 있다. 고금리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폐업과 생존을 가르는 현실이 되고 있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에는 낮은 금리를 활용해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회사채 발행 비용이 높아지고 차환 부담도 커지고 있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은 투자 축소와 고용 감소 압력을 동시에 받을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정부다.
한국의 재정 운용 역시 사실상 저금리를 전제로 설계돼 왔다. 국가채무는 빠르게 늘어났고 복지와 재정지출 요구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금리가 높아질수록 국채 이자비용도 함께 증가한다. 결국 미래 세대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금리를 억지로 낮출 수는 없다.
1980년대 3저 호황 이후 과도한 유동성 관리 실패가 부동산과 자산시장 왜곡으로 이어졌던 경험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물가를 잡지 못하면 결국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지금 한국은행이 긴축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금리 인상을 막는 것이 아니라 고금리 시대에 적응하는 전략이다.
가계는 과도한 레버리지 의존 구조를 줄여야 한다. 부채를 통한 자산 증식이 당연했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기업은 차입 중심 경영보다 생산성과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정부 역시 단기 경기부양보다 재정 건전성과 성장 잠재력 제고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값싼 돈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시장은 다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국고채 금리 4%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경제가 새로운 질서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고금리 뉴노멀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시작된 현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금리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한 환경에 맞는 새로운 생존 전략을 마련하는 일이다.
저금리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 이제 한국 경제는 '돈의 시대'가 아니라 '금리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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