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 증시는 다시 한번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미국 증시가 단순한 낙관론을 넘어 ‘도취(Euphoria)’와 ‘광기(Mania)의 단계’에 진입했다고 경고했다. 그 상징적 사례로 제시된 기업이 바로 스페이스X다.
스페이스X는 인류 우주산업의 판도를 바꾼 위대한 기업이다. 재사용 로켓을 통해 발사 비용을 혁명적으로 낮췄고, 스타링크를 통해 위성 인터넷 시대를 열었으며, 화성 이주라는 인류 문명사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기업이라 하더라도 자본시장은 결국 숫자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숫자다.
투자자들은 현재의 실적보다 미래의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다. 투자은행들은 스페이스X의 AI 관련 사업 매출이 2030년까지 100배 성장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현재의 기업가치는 오늘의 실적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선반영한 결과다.
물론 역사적으로 위대한 기업들은 언제나 회의론 속에서 성장했다. 아마존도 그랬고, 테슬라도 그랬다. 하지만 시장이 미래를 평가하는 것과 미래를 맹신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2000년 닷컴 버블 당시 투자자들은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을 믿었다. 그 믿음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인터넷은 실제로 세상을 바꿨다. 문제는 인터넷 혁명의 승자가 될 기업과 그렇지 못할 기업을 구분하지 못한 데 있었다. 결과적으로 기술 혁명은 맞았지만 투자 수익률은 처참했다.
오늘날 AI 역시 비슷하다.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전망은 사실상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현재의 주가가 그 미래를 얼마나 과도하게 앞당겨 반영하고 있는가에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특히 우려하는 부분은 옵션시장이다. 주식시장보다 더 민감하게 투자심리를 보여주는 곳이 옵션시장이다. 원래 옵션은 보험의 성격을 갖는다. 투자자는 하락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풋옵션을 산다. 그러나 최근 미국 시장에서는 투기적 성격이 강한 초단기 옵션 거래가 폭증하고 있다.
특히 당일 만기 옵션인 0DTE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는 투자라기보다 사실상 도박에 가깝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기술주 중심 나스닥 시장에서 콜옵션 가격과 풋옵션 가격의 차이가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하락 위험에 대한 보험 수요가 크기 때문에 풋옵션이 더 비싸야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승에 베팅하는 투기적 수요가 시장을 압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낙관론이 아니다.
시장이 상승할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반드시 상승해야만 한다는 집단적 확신에 가깝다.
역사를 돌아보면 버블은 항상 같은 방식으로 끝났다.1637년 네덜란드 튤립 버블이 그랬다.
1720년 영국 남해회사 버블이 그랬다.1929년 미국 대공황 직전의 증시가 그랬다.2000년 닷컴 버블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버블은 기술이나 산업의 혁신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 때문에 붕괴했다.
전설적인 투자자 존 템플턴 경은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강세장은 비관 속에서 태어나고, 회의 속에서 성장하며, 낙관 속에서 성숙하고, 도취 속에서 죽는다.”
지금 미국 시장은 어느 단계에 있는가. 많은 전문가들은 이미 ‘낙관’을 지나 ‘도취’ 단계에 진입했다고 본다.
또 다른 투자의 현인 워런 버핏은 더 단순하게 말했다.“다른 사람들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라.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하라.”
현재 미국 시장은 두려움보다 탐욕이 지배하는 시장에 가까워 보인다.그렇다고 내일 당장 폭락이 온다는 뜻은 아니다. 버블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된다. 실제로 대부분의 투자자는 버블이 붕괴하기 직전 가장 많은 돈을 벌고, 붕괴 직후 가장 많은 돈을 잃는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폭락 시점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다. 시장이 광기에 빠졌다고 해서 즉시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광기는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광기의 끝은 언제나 비슷했다. 미래의 장밋빛 전망이 현재의 숫자를 완전히 압도할 때, 결국 현실은 계산서를 들고 나타난다.
한국 투자자들은 더 이상 미국 시장의 구경꾼이 아니다.서학개미 시대가 열리면서 미국 주식과 ETF는 한국 가계 자산의 중요한 축이 됐다. 엔비디아, 테슬라, 팔란티어,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에 대한 국내 투자 규모는 사상 최대 수준이다.
문제는 미국 시장의 충격이 이제 곧바로 한국으로 전이된다는 점이다.만약 미국 증시가 큰 폭의 조정을 받는다면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주식 자산 가치가 급감할 뿐 아니라 원·달러 환율 상승, 외국인 자금 유출, 국내 증시 조정이라는 연쇄 충격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개인투자자들은 미국 기술주와 나스닥 ETF에 집중 투자한 경우가 많다. 이는 상승기에는 큰 수익을 가져다주지만 하락기에는 위험도 집중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한국 투자자들이 반드시 비관할 필요는 없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를 동반한다. 미국 시장이 과열될수록 오히려 냉정함이 가치가 된다. 현금 비중 관리, 분산 투자, 장기적 관점의 우량 자산 축적은 여전히 유효한 원칙이다.
AI 혁명은 실제로 진행 중이다. 문제는 AI 혁명이 틀렸느냐가 아니라, 그 혁명이 이미 현재 주가에 얼마나 반영되었느냐이다.
시장은 언제나 미래를 먼저 반영한다. 그러나 미래를 너무 많이 앞당겨 반영한 시장은 결국 현실과 다시 만나야 한다.
존 템플턴의 경고와 워런 버핏의 조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탐욕이 시장을 지배할 때일수록 투자자는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 파티는 계속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상 모든 파티에는 결국 계산서가 따라왔다.
지금은 수익률을 자랑할 시기보다 위험을 점검할 시기다. 그리고 위대한 투자자는 언제나 군중보다 먼저 흥분하지 않고, 군중보다 먼저 냉정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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