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다소 ‘성스럽게’ 등장한 외계생명체는 마거릿(에밀리 블런트)과 다니엘(조시 오코너)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한다. 이를 전해 들은 마거릿은 매우 비장한 표정으로 전세계 인류를 향해 입을 뗀다. “Listen”. 그러고서 영화는 끝난다.
이후에 밝혀졌어야 했던 외계생명체의 메시지는 이렇게 인류에게 가 닿기도 전에 상상의 영역으로 넘어가 버렸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굳이 이 메시지를 잘라먹은 이유가 뭘까. 그 메시지가 너무 엄청난 것이어서?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질까봐?
아니면 마침내 입을 연 외계생명체의 말이 하찮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외계 메시지의 지극한 성스러움이 해를 입을까봐? 스필버그의 깊은 뜻은 알 길이 없으나, 그 메시지가 얼마나 성스럽든, 또 얼마나 충격적이든 그것을 ‘충격과 공포’로 온전히 받아들일 사람은 스필버그의 생각보다는 훨씬 적을 것이라는 것은 꽤 자신할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외계인에 대한 태도는 1977년작 ‘미지와의 조우’에서 ‘ET(1982)’, 그리고 ‘디스클로저 데이’까지 50여년 동안 결국 한 단어로 집중된다. 스필버그의 영화를 논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이기도 한 ‘경외(Wonder)’다.
영화에서 외계인을 다룰 때는 그들을 선한 존재로 상정하기보다 대개 지구를 파괴하러 온 정복자로 다룬다. 우리는 외계인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에 무지에 방어하는 방법은 어벤져스 같은 막대한 ‘무력’이다.
이를 담은 영화들은 ‘블록버스터’ 장르를 입고, 지구의 일부를 날려먹을 정도의 대혈투를 거친 후 비로소 안전해진 우리의 터전을 보여준다. 그리고 관객들은 안도한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사람들이 지구를 더 사랑하게 되고 안전해진 내 주거지에서 더 안락해지는 수단이 된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무려 50여년 전부터 ‘미지와의 조우’를 통해 외계인은 지구에 온 착한 손님일지 모른다는 의견을 거의 처음으로 제안한다. 거대한 우주선이 지구에 닿았고 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눈부신 빛은 그저 감탄과 ‘경외’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큰 우주에 생명체가 오직 인간일 리 없다는 스필버그의 희망이 빛으로, 선의로, 경외로 영화 속에 담긴 것이다.
이 어린아이 같은 소망은 영화 ‘ET’에 이르면 호기심 가득한 접촉이 되고, 악의라고는 전혀 없는 ET와 엘리엇(헨리 토마스)의 눈물겨운 우정이 된다. 서로를 구하려고 자신의 목숨마저 기꺼이 버리려 했던 이 둘 사이의 우정이 어찌나 애달픈지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한바탕 눈물바람이 된다.
스필버그의 외계인을 향한 선의는 딱 거기까지가 좋았던 것 같다. 그가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믿는 그 순수한 마음이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정도는 우정과 교감, 그 수준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80세의 스필버그가 마침내 내놓은 외계인 3부작의 마지막이라 할 만한 ‘디스클로저 데이’는 희망이 아니라 ‘확신’이 담겼다. 그렇게 되면 외계인을 그다지 믿지 않거나, 있더라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영화는 수용되기가 힘들다.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에서 성스러운 외계인의 강림을 믿지 않는 자는 악으로 그려지고 있다.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증거 자료들을 수십년 동안 지켜왔던 ‘노아’ 역을 맡은 콜린 퍼스는 인터뷰에서 본인의 역할을 “세상의 가혹한 진실로부터 자녀를 보호하려는 부모”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애타는 노아의 마음은, 진실이 모든 인류에게 공평하게 밝혀져야 한다는 무리들로부터 철저히 배척당한다. 왜냐하면 외계인이 존재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에서 외계인의 존재를 너무 확신한 나머지 그것을 종교의 위치에까지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님께서 이토록 광대한 우주를 오직 우리만을 위해 만드셨을까?”
영화는 모두가 외계인의 존재를 알아야만 하는 이유 역시 성경의 말씀을 빌어, 그리고 종교의 힘을 빌어 당위를 설명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수십년 동안 감춰졌던 외계생명체에 대한 비밀이 한순간에 전세계에 공개되는 것이 왜 무조건적으로 옳은가. 필자는 이 영화를 보고도 그 답을 찾지 못하겠다.
영화 속 또 다른 사건, 즉 북한에서 반란군이 봉기해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국제 정세가 사실은 더 궁금하다. 그리고 그것이 필자에게 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수십년 동안 미국의 민간 조직인 ‘워덱스’로부터 생체실험을 당하고, 갇히고, 죽음을 당해도 별 조치를 취하지 못한 외계인보다는 말이다.
외계 생명체에 대해 스필버그가 어쩌다 이토록 신앙과 같은 확신을 갖게 되었는지 그 연유를 알 수는 없다. 그러한 인식을 갖게 된 이유를 알아보겠다고 80세 노인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고픈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자신의 믿음을 잔뜩 전시해놓은 영화를 보고 있자니 씁쓸함이 몰려온다.
상반된 의견을 거의 완벽히 배제한 믿음은 자연스럽게 불편함을 불러일으킨다. 이 비밀스러운 지구적 비밀이 공개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고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의 행각은,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해 자료와 통계를 기초로 한 분석, 그로 인해 법이나 제도 등으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아닌, 오로지 신념에 기초해서 반대되는 의견을 일방적으로 묵살하는 것으로 보였다. 필자는 그 폭력성에 무척 불편해졌으며 순수하다 못해 촌스러워진 스필버그의 믿음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르는 것을 두려워 말라”
이 말은 언젠가는 지구를 방문할 외계생명체를 ‘미지와의 조우’처럼 천상의 음악을 듣듯 평화롭게 맞이하려면 미지의 것에 대해 겁을 내지 말라는 지침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내내 무지한 대상에 대해서 거의 무조건적으로 두려움을 가져왔던 인간의 입장에서는 공허한 말이다.
이 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두려움을 없애는 근거가 무조건적인 믿음이어선 안된다. 그러니까 종교 같은 신앙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토록 배타적인 태도는 필자가 알던 스필버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영화로 이룰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룬 스필버그가 다음 작품으로 어떤 이야기를 내놓을지, 혹시 다시 확신에 가득찬 믿음의 전시를 보게 되지는 않을지 그의 다음 영화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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