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격차가 아니라 질문의 격차였다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린 제77차 세계뉴스미디어총회(WNMC)에 참석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기술 격차가 아니었다. 질문의 격차였다.

아주미디어그룹 영문통신사 AJP 국장으로 참석한 이번 총회에서 나는 한국의 인공지능(AI) 활용 사례를 소개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AI를 흡수하는 나라 중 하나다. 뉴스룸 역시 번역, 자동화, 콘텐츠 생산성 향상에 AI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아주경제 역시 에이전트 기반 서비스와 리퀴드 콘텐츠, 예측형 사용자 경험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총회 현장에서 마주한 세계 언론의 고민은 다른 곳에 있었다.

한국 언론이 아직 "AI로 무엇을 자동화할 수 있을까"를 묻고 있을 때, 세계 유수 언론은 "AI 시대에 언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묻고 있었다.

사흘 동안 이어진 발표와 토론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나 기사 요약, 번역 자동화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용자 경험, 개인화, 에이전트, 정보 구조화, 신뢰, 그리고 고유취재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AI는 여전히 중심 화두였지만, 정작 논의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저널리즘이었다.
 
3일현지 시각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린 제77회 세계뉴스미디어총회WNMC 2026 행사장에 아주미디어그룹과 AJP 소개 브로슈어가 세계 각국 언론사의 신문 및 간행물과 함께 비치돼 있다 AJP서혜승 편집국장
3일(현지 시각)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린 제77회 세계뉴스미디어총회(WNMC 2026) 행사장에 아주미디어그룹과 AJP 소개 브로슈어가 세계 각국 언론사의 신문 및 간행물과 함께 비치돼 있다. [AJP서혜승 편집국장]

가장 인상적이었던 변화는 기사 중심 사고의 해체였다.

인도 힌두(The Hindu)는 하나의 기사를 여러 형태로 재구성하고 있었다. 독자는 같은 기사를 200자 요약으로 볼 수도 있고, 질의응답 형식으로 읽을 수도 있으며, 오디오 설명으로 들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사가 아니라 독자가 원하는 방식이었다.

스웨덴 보니에르 뉴스(Bonnier News)는 수십 년간 축적한 기사 아카이브를 대화형 서비스로 바꾸고 있었다. 독자는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는 대신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언론사의 기사들이 답한다.

검색은 대화로 바뀌고 있었다.

인도 스크롤(Scroll.in)은 더 흥미로웠다. 그들은 기사를 단순한 읽을거리로 보지 않았다. AI를 활용해 타임라인, 지식 그래프, 인물 관계도, 사건별 클러스터, 자동 생성 질의응답 등을 제공하는 연구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었다. 학자와 연구자가 특정 이슈를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작업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독일 이펜 디지털(Ippen Digital)은 지방선거 하루 동안 4000건이 넘는 기사를 자동 생산한 사례를 소개했다. 하지만 핵심은 생산량이 아니었다. 지역별, 공동체별, 궁극적으로는 개인별 맞춤 뉴스였다.

세계 언론은 더 이상 기사 생산 경쟁을 하고 있지 않았다.

독자 경험 경쟁을 하고 있었다.

이번 총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례는 독일 통신사 dpa였다.

dpa의 전략총괄 아스트리트 마이어는 "뉴스 결과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공개한 dpa IQ는 기존 뉴스 서비스와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전통적인 뉴스 통신사는 기사를 공급한다. 하지만 dpa는 기사 자체보다 기사 안에 담긴 사실과 맥락, 관계와 데이터를 구조화해 AI가 직접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하고 있었다.

AI 에이전트는 dpa IQ에 접속해 특정 사건의 타임라인을 요청할 수 있고, 관련 인물과 과거 기사, 최신 업데이트를 실시간으로 가져올 수 있다.

기사 단위가 아니라 사실 단위다.

많은 언론사가 AI를 이용해 콘텐츠를 생산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동안 dpa는 AI 시대에 언론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인프라.

어쩌면 그것이 AI 시대 뉴스 산업의 미래에 가장 가까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오스트리아 지역신문 클라이네 차이퉁(Kleine Zeitung)은 한발 더 나아갔다.

디지털 총괄 제바스티안 크라우제는 AI를 새로운 독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15년 동안 언론은 구글을 위해 콘텐츠를 최적화했다. 검색엔진최적화(SEO)에 매달렸고 클릭을 위해 경쟁했다.

하지만 이제 챗GPT와 퍼플렉시티, 코파일럿, 구글 AI 모드가 기사를 읽고 요약하고 재구성한다.
 
3일현지 시각 프랑스 마르세유 팔레 뒤 파로에 설치된 제77회 세계뉴스미디어총회WNMC 2026 행사 안내 구조물 AJP 서혜승 편집국장
3일(현지 시각) 프랑스 마르세유 팔레 뒤 파로에 설치된 제77회 세계뉴스미디어총회(WNMC 2026) 행사 안내 구조물 [AJP 서혜승 편집국장]

AI는 이미 독자가 됐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앞으로는 인간을 위한 사이트와 에이전트를 위한 사이트가 따로 존재할 수도 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SEO를 넘어 답변엔진최적화(AEO), 다시 생성형엔진최적화(GEO)였다.

더 이상 검색 결과 상위 노출이 목표가 아니다.

AI가 어떤 정보를 인용하고 어떤 언론사를 신뢰할 것인가가 새로운 경쟁이 되고 있었다.

반면 AI가 발전할수록 더욱 강조된 것은 역설적으로 저널리즘의 본질이었다.

이번 총회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연설은 뉴욕타임스의 A.G. 설즈버거 발행인의 몫이었다.

설즈버거는 AI를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AI 기업들이 결국 언론이 생산한 취재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는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사실은 누군가의 고유취재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직접 만난 사람의 증언.

기자가 입수한 문건.

현장을 발로 뛰며 확인한 사실.

AI는 그것을 요약할 수 있다.

재배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산할 수는 없다.

총회 곳곳에서 반복된 메시지도 같았다.

AI는 기자를 대체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기자가 더 많은 취재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다.

AI가 범람할수록 사실은 더 중요해진다.

합성 콘텐츠가 늘어날수록 현장 취재는 더 중요해진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신뢰는 더 비싸진다.

마르세유에서 돌아오며 얻은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한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기술을 받아들이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빠른 도입이 곧 선도는 아니다.

세계 언론은 이미 자동화의 다음 단계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기사에서 경험으로.

검색에서 대화로.

콘텐츠에서 지식으로.

독자에서 에이전트로.

그리고 자동화에서 다시 저널리즘으로.

에즈라 에만의 말처럼 지금은 누구도 지도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세계 언론이 향하는 방향은 보인다.

그 방향은 AI가 아니라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뉴스를 경험하는지, 그리고 저널리즘이 왜 여전히 필요한지를 다시 묻는 방향이었다.

어쩌면 한국 언론이 지금 던져야 할 질문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AI로 무엇을 자동화할 것인가가 아니라, AI 덕분에 무엇을 더 취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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