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69) 길에서 눈짓으로만 대화하다 - 도로이목(道路以目)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커피공화국의 지존 스타벅스가 된서리를 맞았다. '책상에 탁! 탱크데이'. 지난 5월 18일 스타벅스가 텀블러 이벤트를 진행하며 공개한 이 슬로건이 화근이 됐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탱크 진입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즉각 SNS를 통해 5·18을 폄훼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사회적 파장이 커졌다. 정용진 회장이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해임하고 관련 임직원을 대기발령하는 등 발빠르게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정부 각 부처와 여권이 대통령의 비판에 적극 호응하며 스타벅스 불매 운동에 나섰다.

늘 그렇듯 온라인에서는 괴담 수준의 의혹이 난무한다. ‘탱크 텀블러’란 명칭과 용량(503mL)이 계엄군 탱크와 박근혜 전 대통령 수인번호였던 503번을 암시한다거나 ‘탱크 듀오 세트’의 할인율 21%가 5·18 당시 계엄군 집단 발포일인 5월 21일을 상징한다는 의혹,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2024년 4월 16일에 출시한 머그잔에 배를 난파시킨다는 신화가 담겨 있는 ‘사이렌’ 로고가 붙어 있는 게 수상하다는 의혹 등이다. 텀블러의 6가지 색상이 육사를 나온 전두환 전 대통령을 상징한다는 의혹에 이르러서는 실소를 금하기 어렵다. 스타벅스가 광신적 극우집단이 아닌 바에야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상상력을 지나치게 발휘하여 만든,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보는 게 상식일 듯하다. 사실 여부는 경찰 조사를 지켜보면 될 일이다.

1999년 한국 진출 이래 승승장구하던 스타벅스가 하루아침에 회사의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장사 잘 되라고 하는 게 마케팅인데, 소비자 감수성 부족한 마케팅이 매출 격감에 브랜드 자산까지 크게 훼손시켰다. '탱크데이' 마케팅은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부적절했다. 여러 단계의 결재 과정에서 걸러내지 못한 허술한 사내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 체계 역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의 '스타벅스 때리기'는 과유불급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의 마케팅이 역사인식의 부족으로 인한 실수였는지 5·18을 폄훼하려는 불순한 의도였는지 아직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막장, 인두겁, 패륜 등의 단정적이고 자극적인 언사로 질타한 것은 정치적 의도가 느껴지는 과도한 개입이다. 이 대통령이 음모론의 영향을 받은 건지, 대통령의 낙인 찍기가 음모론을 키운 건지 알 수는 없으나 지나쳐서 좋을 일은 세상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의 만기친람식 국정운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유독 스타벅스를 강하게 문제삼고 이슈몰이를 하는 건 코앞에 닥친 6·3 지방선거와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공소취소 특검과 장특공 폐지 논란은 압승이 전망되던 여권에 악재로 작용했다. 접전지역이 느는 선거 판세로 볼 때 지지층 결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리듯 때맞춰 스타벅스가 빌미를 제공했고 물실호기, 최대의 효과를 노리고 최고의 권력자 대통령이 직접 등판했다. 허나 지지층 결집을 노린 이슈몰이는 양날의 칼이다. 진보가 결집하면 보수도 결집하기 때문이다. 멀찌감치 앞서가던 김부겸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와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는 게 좋은 예다. 

워낙 비등점이 낮은 양은냄비형 사회인데다가 마침 선거도 코앞이다 보니 스타벅스 사태 역시 정쟁으로 비화했다. 매사 진영으로 갈려 싸우는 정치판이야 으레 그러려니 하지만, 문제는 증오와 적대의 진영논리가 정치권을 넘어 사회 전체로 파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타벅스를 겨냥한 전방위적인 공격에는 섬뜩함이 묻어난다. 대통령이 좌표를 찍듯 거듭 날을 세우자 추종세력들이 스타벅스 텀블러와 머그컵을 깨부수고 로고를 지우고 인증샷을 올린다. 스타벅스 매장에 계란을 던지고 애꿎은 직원들에게 폭언을 한다. 신변의 위협을 느껴 "출근이 공포"라고 호소할 지경이다. 

이용객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낙인찍기도 횡행하고 있다. 이른바 '스벅순찰대'가 스타벅스 매장에 들어가는 사람을 감시하고 무단 촬영하여 SNS에 올리고 비난을 퍼붓는다.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다니는 사람에 대한 살해 협박까지 등장했다. 이러다 보니 심리적 압박감을 느껴 스타벅스 이용을 주저하게 된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스타벅스 마시면 사상 검증당한다는 말도 나돈다. 5·18을 폄훼했다고 해서 스타벅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 되려 5·18 정신을 훼손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고대 중국 천하를 다스리던 주(周)나라의 제10대 왕 여왕(厲王)의 폭정에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중신 소공(召公)이 흉흉한 민심을 전하며 간언했지만 여왕은 오히려 화를 내며 신하들에게 명했다. "당장 무당과 감시자들을 풀어 나를 욕하는 놈들을 싹 다 잡아들여라! 잡히는 대로 전부 목을 베겠다!" 언로를 틀어막는 공포 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백성들은 불만이 있어도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도성은 찬물을 끼얹은 듯 적막해졌다. 그 상황을 역사는 이렇게 기록했다. "왕의 감시가 더욱 엄해지니 나라 사람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고 길에서 눈짓으로만 의사를 교환했다(王益嚴 國人莫敢言 道路以目)."

나라가 조용해지자 여왕은 크게 기뻐하며 소공에게 자랑했다. "보아라, 내가 백성들의 입을 싹 다 막아버리지 않았느냐!" 이때 소공이 한 말이 천고의 명언으로 남았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흐르는 물을 막는 것보다 어렵습니다(防民之口 甚於防川). 물을 강제로 막으면 둑이 터져 더 큰 피해를 주듯 백성들의 말을 막으면 결국 나라가 망합니다."

여왕은 소공의 경고를 무시했다. 공포정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억눌린 민심은 결국 폭발했고 여왕은 쫓겨나 피신처에서 십여 년을 숨어 살다가 죽었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성어가 '도로이목(道路以目)'이다. '길(道路)에서 눈짓으로(以目) 말한다'는 뜻인 도로이목은 정치적인 탄압이나 감시, 폭정이 심해서 백성들이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도 감히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그저 서로 눈짓으로만 원망과 불만의 뜻을 나누는 상황을 비유한다. 

출전은 중국 역사서인 《국어(國語)》 '주어(周語) 편'이다.
《국어》는 춘추시대 8나라의 정치 담론과 사건을 모아 놓은 책으로 좌구명이 편저자로 전해진다. '정치 교훈집' 성격이 강해 국가의 흥망과 백성을 다스리는 문제, 군주의 오만과 몰락, 간언의 중요성, 민심의 무서움, 천재지변과 정치의 득실 등의 주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연인끼리 눈짓 대화를 하는 건 입을 열고 말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구태여 말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쳐다만 봐도 꿀이 떨어지는 그런 사이도 아닌데 말을 하지 못하고 눈짓으로만 대화해야 한다면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언로가 트인 현대 민주사회에서 도로이목은 보다 복합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권력자의 SNS 좌표찍기, 정치권의 강한 도덕적 규탄, 온라인 군중 심리, 불매운동 압박 등으로 인해 개인의 발언이나 취향, 소비행태에 대한 사회적 불이익이 두려워 스스로 말을 삼가고 행동을 조심하는 사회 분위기, 이른바 '위축 효과(chilling effect)'가 형성된다면 그 옛날 왕의 서슬이 무서워 길에서 눈짓으로만 의사를 교환하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얼마 전 지인이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 선물을 보내왔다. 열어보니 스타벅스 커피와 케익 쿠폰이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지만 선물을 주고 받은 적은 없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굳이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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