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동안 마약과의 전쟁 최전선에는 개가 있었다. 독일 셰퍼드와 래브라도 리트리버 같은 탐지견은 인간의 후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능력을 발휘해왔다. 여행객의 가방 속 깊숙이 숨겨진 마약도, 컨테이너에 은닉된 마약도 귀신같이 찾아냈다. 일반적으로 개의 후각은 인간보다 수십 배에서 수천 배까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은 향수를 맡지만 개는 그 향수 속에 섞여 있는 개별 화학물질까지 구분한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개들이 긴장해야 할 소식이 들려왔다. 관세청이 AI와 후각센서를 결합한 ‘전자코(Electronic Nose)’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탐지견의 후각 원리를 모방한 전자 장치가 공기 중 미세 입자를 분석하고, 인공지능이 이를 학습해 마약 성분을 식별하는 기술이다.
많은 사람들은 AI라고 하면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떠올린다. 질문하면 답을 해주고, 글을 써주고, 번역을 해주는 존재 말이다. 하지만 AI 혁명의 진짜 무대는 컴퓨터 화면 안이 아니라 현실 세계다.
AI는 이미 인간의 눈을 닮아가고 있다. CCTV 영상에서 범죄자를 찾고, 병원에서는 CT와 MRI 영상을 판독한다. AI는 인간의 귀도 닮아가고 있다. 음성을 인식하고 실시간 통역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제 AI는 인간의 코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마약 밀수
관세청이 전자코 개발에 나선 이유는 분명하다. 마약 밀반입 수법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여행객의 가방이나 화물 속에 마약을 숨겨 들여오는 방식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해외직구 물품 속에 감추고, 커피 원두에 섞고, 향수병에 넣고, 어린이 장난감 속에 숨긴다. 심지어 액체 상태로 만들어 음료수처럼 위장하거나 의약품 포장 속에 은닉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 세관은 자동차 부품 내부에 숨겨진 펜타닐을 적발한 적이 있다. 멕시코 마약조직은 과일 운반 차량이나 농산물 상자 속에 마약을 숨겨 국경을 넘기려 했다. 중국에서는 국제특송 화물을 수백 건으로 쪼개 극소량의 합성마약을 보내는 방식이 등장했다.
마약 밀수범들은 냄새를 감추기 위해 커피와 향신료, 향수 등을 동원한다. 그러나 AI는 속지 않는다. AI는 냄새를 맡는 것이 아니라 화학적 패턴을 읽는다. 커피 향 아래 숨어 있는 마약 성분도, 향수 냄새 속에 감춰진 합성마약도 데이터로 분석한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분자는 속일 수 없는 셈이다.
미국은 펜타닐과 싸우고 중국은 AI 감시망을 만든다
전자코 기술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펜타닐 사태 때문이다.
펜타닐은 원래 의료용 진통제다. 하지만 극소량만으로도 강력한 효과를 내기 때문에 불법 마약시장의 핵심 상품이 됐다. 최근 수년간 미국에서는 매년 수만 명이 펜타닐 관련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하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를 국가안보 수준의 위협으로 간주하는 이유다.
미국 국토안보부(DHS)와 세관국경보호국(CBP)은 멕시코 국경을 중심으로 AI 기반 마약 탐지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X레이 장비와 화학센서, 영상인식 기술, AI 분석시스템을 결합한 통합 플랫폼이다. 수천 대의 차량과 수만 개의 화물이 국경을 통과해도 AI가 위험 징후를 우선 선별한다.
미국 연구진은 탐지견의 후각 패턴을 데이터화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특정 냄새에 반응하는 탐지견의 행동과 화학성분 데이터를 AI가 학습하는 방식이다. 인간이 수십 년 동안 축적해온 탐지견의 경험을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더욱 공격적이다.
중국은 AI 감시카메라와 후각센서, 빅데이터를 연결하는 국가 차원의 통합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공항과 항만, 물류센터, 국경검문소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전자상거래가 폭증하면서 소량 마약 밀수가 늘어나자 AI가 화물정보를 분석하고 후각센서가 화학물질을 탐지하며 영상인식 시스템이 의심 물품을 추적하는 다층 방어망을 만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과 중국 모두 탐지견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재로서는 탐지견과 AI가 함께 일하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AI가 1차 선별을 하고 탐지견이 최종 확인하는 구조다. 마치 의사가 AI 진단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AI는 인간의 코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확장한다
전자코의 의미는 마약 단속에만 있지 않다. 이 기술은 AI가 인간의 오감을 하나씩 디지털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AI 카메라는 인간의 눈을 모방한다.
음성인식 기술은 인간의 귀를 모방한다.
전자코는 인간의 후각을 모방한다.
일부 연구에서는 맛을 분석하는 ‘전자혀(E-Tongue)’와 촉각을 구현하는 ‘전자피부’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인류는 오랫동안 컴퓨터를 ‘생각하는 기계’로 발전시켜 왔다. 이제는 ‘느끼는 기계’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전자코의 활용 범위도 무궁무진하다.
의료 분야에서는 폐암과 당뇨병, 알츠하이머 환자의 호흡에서 나오는 특정 화학물질을 분석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환자가 숨을 한 번 내쉬는 것만으로 질병을 진단하는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
식품산업에서는 와인과 커피, 치즈의 품질을 평가하고 식품 부패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전자코를 활용해 참치 신선도를 측정하는 기술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환경 분야에서는 유독가스 누출을 조기에 감지하고 대기오염 물질을 분석할 수 있다. 농업에서는 병충해에 걸린 작물에서 나오는 냄새를 감지할 수 있고, 축산업에서는 가축 질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도 있다.
관세청의 전자코 프로젝트는 단순한 마약 탐지 기술이 아니다. AI와 센서, 빅데이터가 결합하는 새로운 산업혁명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다.
많은 사람들은 AI를 인간의 경쟁자로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은 인간을 없애지 않았다. 자동차는 인간의 다리를 확장했고, 망원경은 인간의 눈을 확장했으며, 전화기는 인간의 귀를 확장했다. 컴퓨터는 인간의 두뇌를 확장했다.
AI도 마찬가지다.
AI는 인간의 코를 빼앗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코를 확장하는 것이다.
관세청의 전자코 프로젝트는 그래서 단순한 기술개발 뉴스가 아니다. 인간의 후각을 데이터로 바꾸고 AI가 이를 학습해 범죄를 찾아내는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이다.
과거 마약과의 전쟁은 탐지견과 세관원의 몫이었다. 앞으로는 탐지견과 AI가 함께 싸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 공항 입국장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짖는 개가 아닐지도 모른다. 꼬리도 흔들지 않고 짖지도 않지만 수백만 개의 냄새 데이터를 기억하고 있는 인공지능이 여행객 곁을 조용히 지나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다. 인간의 오감이 디지털로 확장되는 문명사적 변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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