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가 '세계 최약체 통화' 논쟁에 휘말렸다. 만성적 통화 약세의 상징인 튀르키예 리라보다도 실질 구매력이 더 약해졌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물가·교역 구조까지 반영한 실질실효환율로 보면 엔화 기초 체력이 사상 최저권까지 떨어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로빈 브룩스 연구원이 지난 24일 엑스(X)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브룩스 연구원은 "일본 엔화가 튀르키예 리라를 밑돌아 세계 최약체 통화가 됐다"고 주장했다. 근거는 실질실효환율로 교역 상대국 통화 대비 강약을 물가·교역량까지 고려해 산출한 지표다.
다만 엔화가 실제로 리라보다 약해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실질실효환율은 기준연도 대비 구매력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여서, 통화 간 절대 수준을 단순 비교하기에는 논란이 있다. 닛케이도 "엔화가 최약체 리라보다 약해졌다"는 주장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엔화 실효환율은 장기 하락세, 리라는 반등세라는 점은 분명하다.
엔화를 가로막는 첫 번째 요인은 무역수지다. 일본 무역적자는 2022년 연간 20조 엔 규모까지 불어난 뒤 지난해 3조 엔 미만으로 줄었고, 올해도 2월 이후 3개월 연속 월간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중동 정세 불안으로 원유 가격이 높게 유지되면서 흐름이 다시 바뀔 수 있다. SMBC닛코증권의 미야마에 코야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무역적자가 연간 5조 엔까지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재정도 부담이다. 고유가로 확장 재정 필요성이 높아진 가운데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지난달 25일 3조 엔을 웃도는 2026년도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표명했다. 하지만 다케다 아츠시 이토추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완화적 금융환경을 유지한 채 적극 재정을 펴는 것이 통화 신뢰 저하로 이어지고, 금리 상승으로 번지면서 '일본 매도'로 연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달러 대비 환율만 보면 엔화 약세는 덜해 보인다. 중동 사태 이후 약 3개월간 인도네시아 루피아, 한국 원화, 튀르키예 리라는 달러 대비 4~5% 하락했다. 반면 엔화 하락폭은 2% 미만에 그쳤다. 그러나 이는 4월 말 이후 일본 당국의 엔화 매입 개입 영향이 크다. 재무성은 지난달 29일 4월 28일~5월 27일 개입액이 11조 7349억엔이라고 발표했다. 엔저 국면 개입으로는 사상 최대다. 이런 조치가 없었다면 엔화 약세가 더 두드러졌을 수 있다.
따라서 엔화 실질 가치 회복은 환율 방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케다 수석은 다카이치 정권의 성장전략 투자가 국내 산업을 키우고 해외 자금을 끌어들일지가 관건이라고 봤다. 미즈호종합연구소의 히가시후카사와 다케시 주임 이코노미스트는 기대인플레이션이 2%대에 안착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물가 상승을 예상해 임금을 올리고, 이것이 서비스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야 엔화 실질 가치도 바닥을 다질 수 있다.
다만 히가시후카사와 이코노미스트는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이 임금·물가 선순환으로 이어지기까지 "연 단위의 시간이 걸린다"고 봤다. 결국 외환시장 개입으로 환율을 일시 방어할 수는 있어도, 원유 수입 부담과 확장 재정, 낮은 실질금리, 성장잠재력 둔화가 겹쳐 엔화 '기초 체력'이 단기간에 살아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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