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윤의 증시 라운지] 점점 '매운맛'에 중독되는 투자자들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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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에도 단계가 있다. 라면집이나 떡볶이 가게에 가면 순한 맛, 보통 맛, 매운 맛, 아주 매운 맛 식으로 강도가 나뉜다. 처음엔 순한 맛도 충분히 맵다. 땀이 맺히고 혀끝이 얼얼해 “다음엔 덜 맵게 먹어야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그 자극이 잊히고, 어느 순간 같은 맛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된다. “이번엔 한 단계만 올려볼까”라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매운맛은 중독성이 있다. 혀가 자극에 익숙해질수록 더 강한 맛을 찾는다. 처음엔 매운 떡볶이도 버거웠지만 나중엔 불닭, 마라, 극강 매운맛 메뉴를 찾아다닌다. 자극에 적응한 미각은 이전 단계의 맛을 ‘심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운맛은 점점 세분화된다. 보통 맛으론 부족해지고, 더 강한 맛, 더 센 자극을 원한다.

요즘 증시를 보고 있자면 꼭 그런 모습이다. 순한 맛에서 매운 맛으로, 다시 아주 매운 맛으로 옮겨가는 듯하다. 한때 은행 예·적금만 찾던 자금은 주식시장으로 이동했다. 이제는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는 분위기다. 레버리지 ETF, 인버스 ETF, 선물형 상품, 단일 종목 파생상품으로 돈이 빠르게 몰리고 있다. 수익률에 대한 시장의 미각이 점점 더 자극적인 방향으로 변하는 셈이다.

이른바 삼전닉스 2배 레버리지·인버스 상품 출시 하루 만에 2조원(총거래액은 10조원)이 쏠리고, 선물·옵션 거래를 위한 장내파생상품 거래예수금이 급증한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거래대금이 쏠리는 현상은 지금 시장이 단순한 강세장을 넘어 ‘고위험 베팅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의할 점은 증시가 늘 역설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공포가 극심할 때가 아니라 모두가 낙관에 취해 있을 때다. 코스피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8천피 시대’를 열자 시장 분위기는 흥분에 가까워지고 있다.  문제는 돈이 많아진 것이 아니다. 돈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승장의 초기 자금은 비교적 신중하다. 기업 실적과 산업 전망을 분석하며 우량주나 지수형 상품에 투자한다. 그러나 강세장이 길어지고 주변에서 수익 경험담이 늘어나면 분위기가 바뀐다. 처음엔 “좋은 회사를 오래 들고 가자”던 투자자들이 어느 순간 “더 빨리, 더 크게 벌 수 없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시장의 중심은 현물 투자에서 방향성과 변동성에 베팅하는 상품으로 이동한다.
 
최근 한국 증시가 딱 그런 모습이다. ETF 시장 확대 자체는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저비용 분산투자 수단의 성장은 자본시장 발전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문제는 성장의 방향이다. 단순 인덱스 ETF보다 특정 종목 상승·하락을 몇 배로 증폭시키는 레버리지 상품,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상품, 선물형 ETF 거래가 급격히 늘고 있다. 투자자들이 기업 가치보다 변동성과 단기 수익률에 베팅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특히 단일 종목 집중은 더 우려스럽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우량기업이지만,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주가는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실적 기대, 밸류에이션, 글로벌 경기, 금리, 수급 변화에 따라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그런데 특정 종목의 하루 방향성에 수배의 레버리지를 걸겠다는 투자 방식은 장기 투자보다 투기에 가까워진다. 오를 때는 수익이 극대화되지만 방향이 틀어지는 순간 손실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역사는 이런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줬다. 2007년 코스피 상승기에도 개인 자금은 ELW와 선물옵션 시장으로 몰렸다. 상승장의 낙관은 “더 세게 베팅하면 더 벌 수 있다”는 믿음을 키웠지만, 이듬해 금융위기가 닥치자 고위험 상품 투자자들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21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초저금리와 유동성 장세 속에서 레버리지 ETF 열풍이 불었지만, 2022년 급격한 금리 인상과 성장주 조정이 시작되자 낙폭은 배가 됐다. 

물론 위험을 감수하고 수익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그건 자본시장의 본질이다. 다만 지금 시장이 경계해야 할 것은 위험 자체보다 위험에 대한 둔감함이다. “남들은 다 벌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뒤처진다”는 조급함은 투자자를 점점 더 자극적인 상품으로 이끈다.

순한 맛에 익숙해진 혀는 더 강한 매운맛을 찾는다. 하지만 매운맛에도 한계가 있다. 혀가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 탈이 난다. 시장 역시 과도한 위험 선호가 누적되면 작은 조정에도 큰 충격을 받는다. 손실은 복리처럼 커지고 회복은 훨씬 더 어려워진다. '매운맛 디톡스'를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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