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가 발표한 6·3 지방선거 선거인 수는 총 4464만9908명이다. 2022년 제8회 지방선거보다 34만여 명 늘었고,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보다도 증가했다. 숫자만 보면 단순 통계 같지만, 그 안에는 지금 대한민국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도권 집중, 고령화 심화, 지방소멸 위기, 다문화 사회 진입까지 한국 사회 구조 변화가 선거인 명부 속에 압축돼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단순히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을 뽑는 선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구조를 결정하는 시험대에 가깝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수도권 집중 현상이다. 경기 유권자는 1187만여 명으로 전체의 26.6%를 차지했다. 서울은 18.6%, 인천까지 합치면 수도권 유권자 비중은 사실상 절반에 육박한다. 지방선거인데도 선거 이슈가 GTX, 재건축, 부동산, 교통망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권 역시 수도권 민심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선거가 사실상 대선급 정치 이벤트로 인식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문제는 수도권 집중이 단순한 인구 이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년과 일자리, 자본과 산업, 교육과 문화가 모두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지방은 인구 감소와 산업 기반 약화, 청년 유출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린다. 지방대학은 존폐 위기에 몰리고, 지방 상권은 무너진다. “지방소멸”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과장이 아닌 현실이 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왜 지역균형발전을 국가 전략으로 내세웠는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당시 혁신도시와 공공기관 이전 정책은 적지 않은 논란을 낳았지만 문제 인식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수도권 과밀과 지방 공동화는 단순 지역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흔드는 구조적 위기다. 특정 지역만 성장하는 국가는 장기적으로 균형을 잃는다. 지방이 무너지면 국가 경쟁력도 약해진다.
이번 선거인 통계가 보여주는 또 다른 현실은 고령화다. 연령별 비중을 보면 50대가 19.3%로 가장 많고, 60대와 70대 이상을 합치면 전체의 34%를 넘는다. 반면 20대는 12%대, 10대는 2% 수준에 그친다. 이는 앞으로 한국 정치가 미래 산업과 혁신보다 안정과 복지, 자산 방어 중심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연금과 의료, 부동산과 안전 문제가 정치의 핵심 의제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이 이미 이런 길을 걸었다. 일본 정치가 장기 침체 속에서도 과감한 구조개혁보다 고령층 안정 정책 중심으로 움직였던 배경에는 초고령 유권자 구조가 있었다. 한국 역시 비슷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제는 청년 세대다. 일자리와 주거난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세대가 정치적으로는 점점 주변부로 밀려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치가 미래보다 현재의 안정에 더 민감해질수록 국가 혁신 동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외국인 유권자 증가도 중요한 변화다. 지방선거 외국인 유권자는 15만 명을 넘어섰다. 2014년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한국 사회가 이미 다문화 산업국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제조업과 농촌, 물류와 돌봄 산업은 외국인 노동력 없이는 유지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 지방선거에서 외국인 투표권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 역시 산업 구조와 인구 구조 변화와 맞물려 있다.
유럽은 이미 이 문제를 경험했다. 독일과 프랑스 지방정치는 이민과 지역경제 문제가 결합되며 정치 지형 자체가 흔들렸다. 한국 역시 이제 “누가 지역 주민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이를 단기 표 계산 차원에서만 바라본다. 장기적 인구 전략과 산업 정책 차원의 논의는 부족하다.
이번 지방선거는 정치권에도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지방선거가 단순 정권 심판이나 진영 대결로 흐르면 지방은 더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의 본질은 지역 경쟁력이다. 어떤 도시가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 것인가, 어떤 지방정부가 청년을 붙잡을 것인가, 어떤 지역이 산업과 교육, 교통을 연결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할 것인가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중앙정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역 발전 전략보다 정당 간 전쟁이 앞서고, 지방 정책보다 중앙 권력 심판론이 먼저 등장한다.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대리전으로 소비될수록 지방자치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결국 피해는 지역 주민과 지역경제가 떠안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거대한 구조 전환기 위에 서 있다. 수도권 초집중 국가, 초고령 사회, 다문화 산업국가로 동시에 이동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 선거인 통계는 그 현실을 숫자로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니다. 그 숫자가 던지는 경고를 읽는 일이다.
4464만9908명의 유권자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표의 규모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집단적 신호다. 정치권이 이 경고를 외면한다면 지방선거는 반복돼도 지방의 미래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결국 지역을 살리는 것이 국가를 살리는 길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다시 확인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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