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걸 하는 것에 대해 즐거워해주시고 재밌다고 해주셔서 안심하고 있어요. 해외 분들도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서 신기하기도 하고요. 한국 정서가 있는 작품에 대한 관심도 높으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전은 쉽지 않았다. 보는 것과 직접 해내는 것은 달랐다. 김향기는 자신이 가진 기본 톤을 어디까지 끌어올려야 코미디가 되는지부터 새롭게 익혀야 했다. 특히 여의주는 혼잣말과 대사량이 많은 인물인 만큼, 말맛과 리듬을 잡는 과정에도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코미디에 대한 감각이 아예 없는 상태였어요. 보는 걸 좋아하는 것과 직접 하는 건 다르잖아요. 그동안 해왔던 역할들에서 제가 기본적으로 가진 톤을 어느 정도까지 꺼내야 코미디의 톤이 되는지도 잘 몰랐고요. 대사량도 많고 혼잣말도 많아서 연습을 많이 했어요. 스스로 봤을 때 제가 가진 최대치를 꺼내도 오버스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치를 꺼내놓고 감독님이 잡아주시는 방향을 따라가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준비할 때 코미디 장르를 해온 분들이나 희극인분들의 연기를 찾아봤어요. 결국 공통적인 건 웃기려고 하지 않아야 웃기다는 거더라고요. 웃기려고 하는 순간 감을 잃는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저도 대본 안에서 의주로 살아내는 게 제 미션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의주가 재밌는 이유는 너무 솔직하고 매 순간 진심인데 자기 안에 드는 생각을 감당하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아이가 하는 말은 다 진심이고 그 진심이 티가 많이 나는 아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게 맞다고 봤어요."
여의주의 비주얼 역시 캐릭터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였다. 짧게 자른 앞머리와 빨간 안경은 의주의 엉뚱함과 자기만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김향기는 머리 모양 하나에도 의주의 사고방식과 코미디적 요소를 함께 담고 싶었다고 했다.
"이전 작품이 끝났을 때는 차분한 단발 기장이었어요. 크게 변화를 주려면 머리를 붙이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긴 했는데, 작품적으로나 의주라는 캐릭터로나 만화적인 느낌이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만의 꿈을 위해 빨간 안경을 쓰고 작업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자유롭게 사고하는 의주를 표현하려면 삐죽삐죽한 짧은 기장감이 어울릴 것 같았고요. 코미디 요소도 살리고 싶었어요. 앞머리를 캐릭터적으로 활용하면 재미를 더할 수 있겠다 싶어서 자르게 됐어요."
표정 연기도 새롭게 접근했다. 처음에는 많은 대사와 혼잣말의 리듬을 살리는 데 집중했지만,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얼굴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이전 작품들에서 감정을 절제해왔다면, 이번에는 표정근을 마음껏 움직이는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에는 표정을 살린다기보다 말이 많고 대사량이 많으니까 말맛을 살리자는 마음으로 연습했어요. 혼잣말의 비중이 크다 보니 운율감도 살리려고 했고요. 그런데 감독님과 맞춰보는 과정에서 톤이 너무 연극적으로 들릴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의주가 계속 장면에 나오는데, 그렇게 가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얼굴을 많이 쓰자, 표정근을 많이 쓰자고 방향을 바꿨어요. 그동안 장르적인 작품을 하면서 제한된 표현 안에서 얼굴을 써왔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의주는 김향기에게 자신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게 만든 인물이기도 했다. 촬영 중 중·고등학교 시절 사진을 찾아봤다는 그는,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친구들과 매일 웃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한 동네에서 오래 자라며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한 친구들의 존재도 의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촬영하면서 중학교, 고등학교 때 사진을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매일 웃잖아요. 그 모습이 궁금해서 과거 사진을 많이 봤어요. 저는 실제 친구들에게 고마운 부분이 많아요.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아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진 동네 친구들이 있거든요. 자연스럽게 저를 받아들여줬고 학교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함께 즐기면서 지냈다고 생각해요. 그런 추억들이 참고가 됐어요."
아역 배우로 시작해 오랜 시간 현장을 지켜온 김향기에게 학생 역할은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온다. 불과 얼마 전까지 아역 배우의 고민을 말하던 그는 이제 위아래로 폭넓은 나이대의 인물을 오가며 자신의 현재를 다시 바라보고 있다.
"당연히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스스로 생각하면서 웃기기도 했던 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역이 가진 고충을 이야기했는데 이제는 또 위아래로 나이대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상황이잖아요. 감사한 일이고 좋은 일이니까 받아들이고 하자고 생각했어요. 고등학생 역할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지금의 김향기는 자신을 하나로 규정하기보다 변화의 한가운데에 놓인 상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래 활동해온 배우지만 어떤 현장에서는 여전히 막내이고, 어떤 현장에서는 작품을 이끌어야 하며, 또 어떤 현장에서는 동생들과 에너지를 주고받아야 한다. 그 복합적인 감각은 배우 김향기뿐 아니라 사람 김향기에게도 새로운 질문을 남기고 있었다.
"저는 지금 저를 잘 모르겠어요. 스스로 애매하다고 느껴요. 이번에 더 느낀 건 처음으로 현장에 동생들이 많았다는 점이에요. 항상 거의 막내였는데 친구도 생기고 그런 경험을 하니까 경력은 오래됐지만 어느 현장에서는 막내이고, 여기서는 친구들과 있으면 즐겁고 또래인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언니더라고요. 그런 복합적인 것들이 배우로서도 그렇지만 저라는 사람으로서도 새롭게 느껴지는 혼란으로 다가왔어요."
그 애매함을 김향기는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자신을 통제하거나 규정하기보다, 변화하는 감각을 열어두고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라고 했다. 현장마다 달라지는 자신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는 마음도 커졌다.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뭘까 생각하면 매 작품마다 달라요. 연극에서는 완벽한 막내였고, '로맨스의 절댓값'에서는 제가 끌고 가야 하는 부분이 있었고 이번에는 중간에서 에너지를 받고 주는 역할도 해야 했어요. 그래서 열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저를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의 상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애매함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렵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요."
배우로서의 태도도 조금씩 명확해지고 있다. 김향기는 무언가를 잘하려고 힘을 주기보다, 작품 안에서 제 몫을 해내고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마음으로 현장에 서려 한다. 오히려 그 태도가 자신을 더 자유롭게 만든다고 했다.
"모든 감각들이 새롭게 느껴지고 있어요. 배우로서는 제가 어떤 작품에서든 피해를 주지 않고 해내면 괜찮다는 마음으로 하려고 해요. 그렇게 생각해야 덜 겁이 나기도 하고 더 잘 나오더라고요. 그런 태도를 유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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