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지방선거, '정의는 무엇인가' 를 묻는다

21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충남 공주산성시장에서 지원 유세를 펼치고 있다. [사진=박종호 기자]
21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충남 공주산성시장에서 지원 유세를 펼치고 있다. [사진=박종호 기자]




역대 어느 선거든 여당과 야당이 앞세우는 선거 구호는 정해져 있었다. 여당의 국정 안정론과 야당의 국정 견제론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란 심판’, 국민의힘은 ‘독재 저지’를 내세운다. 민주당은 내란 심판이 정의라고 주장하고, 국민의힘은 독재 저지가 정의라고 주장한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쪽이 더 유권자들, 특히 중도층 유권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낼지가 관건이다. 중도층 국민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무엇인지가 이들의 표심에 영향을 미치고 선거 결과를 좌우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전통적 지지층은 당파심에 따라 '묻지마 투표'를 한다. 어느 당을 찍을지가 이미 정해져 있으니 선거에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도층 국민들은 다르다. 이들은 논리적 판단과 정서적 공감 여부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른 정당에 투표한다. 당연히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힘은 아직도 '내란 세력'?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을 ‘내란 세력’이라며 공격하고 있다. 정청래 대표는 “국민의힘은 위헌정당 해산 심판 이전에 지방선거에서 민심의 혹독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내란을 옹호하는 ‘반헌법·반민주 세력’이며 위헌정당 해산 심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끊임없이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대표는 “‘윤 어게인’을 공천하고 내란 옹호라고 인식되는 사람들을 공천하는 것이 더 큰 독”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내란 심판 주장은 장동혁 대표 등 국민의힘 일부 지도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2월 20일 장 대표가 기자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이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 혐의 재판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다음 날이다. 장 대표는 1심 판결에 대해 “안타깝고 참담하다”고 했다. “아직 1심 판결”이라며 “무죄 추정 원칙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한다”고 했다. 

 

1심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는 “대통령이 국헌 문란 목적의 내란죄를 저지를 수 있다”며 “헌법 기관의 기능을 못하게 만드는 게 국헌 문란이고,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  의회를 점령하는 게 대표적”이라고 밝혔다. 지 부장판사는 “법원이 판단한 핵심은 군을 국회에 보낸 것”이라고 두 차례 강조했다. 

 

그럼에도 장동혁 대표는 “국민의힘은 줄곧 ‘계엄이 곧 내란은 아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고 했다. 당내에선 ‘완전한 절윤(윤 전 대통령과 절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러나 장 대표는 ‘절윤’을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과 절연하는 것을 앞세워 당을 갈라치기 하는 세력, 단호하게 절연해야 하는 대상은 오히려 이들”이라고 했다.

 

장 대표가 무죄추정 원칙을 들어 내란죄 여부에 대한 최종 결론은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려 봐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은 논리적으로는 옳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윤석열 비상 계엄’을 보는 중도파 국민들 마음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지귀연 부장판사 말대로 ‘군을 국회에 보낸 것’을 주목한다. 무장한 군 병력이 국회의사당 본청 유리창문을 깨고 진입하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 장 대표 말은 논리적으로는 옳지만 중도층 국민들의  감정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중도층은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하는 ‘내란 심판’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 


'내란 심판', 끝났다? 안 끝났다? 
 

그러나 장 대표가 이날 한 말에는 ‘내란 심판’ 주장을 다르게 볼 측면도 있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은 탄핵을 통해 계엄에 대한 헌법적·정치적 심판을 받았다”며 “지금 사법적 심판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에게 정치적 심판을 받았다”고 했다. 장 대표 말대로 지난해 치른 대통령 선거는 ‘내란 심판’이 최대 쟁점이었다. 

 

결국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국민들은 이 선거를 통해 국민의힘을 정치적으로 심판했다. 윤 전 대통령은 내란 혐의 1심 재판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에 대한 정치적·사법적 심판은 끝난 셈이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내란 심판을 외치고 있다. 중도층 국민들이 이 주장에 얼마나 공감할지가 관건이다. 내란의 정치적·사법적 심판은 사실상 끝났음에도 더불어민주당이 끊임없이 내란 심판을 주장하는 것은 내란의 정쟁화라고 보고 민주당 주장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 입법권을 악용해 법치를 파괴하고 있다며 입법 독재 저지를 선거 쟁점으로 삼고 있다. 국민의힘은 ‘공소 취소권을 가진 특검법안’을 대표적인 입법 독재 사례로 꼽는다. 이 법안은 윤석열 정부 시절 검찰이 기소한 12개 사건에 대해 특검이 조작 기소했다는 이유로 공소를 취소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다. 여기에는 대장동 개발 비리, 백현동 개발 비리, 위례 신도시 개발 비리, 성남 FC 불법 후원, 쌍방울 대북 송금, 경기도 법인 카드 유용, 공직선거법 위반, 증인 위증 교사 사건 등 이 대통령이 기소된 8개 사건이 모두 들어 있다. 이 대통령은 이 가운데 5개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중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재판이 중지됐다. 현행 법대로라면 퇴임 이후 재판을 받게 된다. 그런데 특검이 공소 취소를 하면 이 재판은 아예 없던 일이 된다. 


'이 대통령 공소 취소'는 사법 정의? 사법 내란?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특검은 사법 정의 실현을 위한 시대적 소명이자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의 과오를 바로잡는 사법 정상화의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추미애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는 “수사를 통해 조작 기소 실체가 명명백핵히 밝혀진다고 하면 억울하게 피해를 본 분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게 당연한 것”이라며 “그걸 촉구하는 것이 왜 잘못됐다고 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 

 

반면에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민주당의 행위는 위력으로 국가기관의 활동을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내란과 크게 다르지 않다. 헌법이 설계한 권력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입법 독재로 대체하려 한 것”이라고 했다. 장 대표는 “자기(이재명 대통령을 지칭)가 특검을 임명해 자기 범죄를 지우겠다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들은 ‘사법 내란 저지를 위한 긴급 연석 회의’를 열고 “사법 쿠데타를 막기 위한 범국민 저항 운동을 시작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영남권 광역단체장 후보들은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왕이 아니다”고 했다.

 

공소 취소 특검법안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사법 정의 실현’ ‘사법 정상화’라고 주장한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 권력으로 법치를 짓밟는 ‘사법 쿠데타’ ‘사법 내란’이라고 역공한다. 중도층 국민들은 어느 쪽 주장을 더 논리적으로 수긍하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일까? 

 

‘조작 기소를 했으면 공소 취소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은 그럴듯해 보인다.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은 머리를 끄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허점 투성이다. 우선 특검은 ‘조작 기소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권한이 없다. 법원이 재판을 통해서만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특검 수사로  조작 기소가 드러나면’이라는 전제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설사 조작 기소가 드러난다고 해도 그다음 절차는 특검이 공소를 취소하는 게 아니다. 법원이 공소를 기각(없던 일로 함)하거나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다. 이게 사법권을 법원에 부여한 헌법과 형사 사법 절차를 규정한 형사소송법의 기본 원칙이다. 


중도층 국민들 '정의 감각'에 달려
 

특검법안 발의를 주도한 박성준 민주당 의원은 “시민 10명 중 8~9명은 공소 취소 뜻을 잘 모른다”고 했다. “조작 수사, 조작 기소가 쉽다. 공소 취소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도대체 뭔지를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이거는 선거 전략상 어려운 것”이라고 했다. 국민들이 공소 취소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국민의힘이 공소 취소 특검법 비판을 선거 전략으로 삼기 어렵고 결국 민주당이 선거에서 불리할 게 없다는 취지이다. 실제로  공소 취소 뜻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법률적인 의미를 잘 모른다고 해서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는 상식적인 정의 감각이라는 게 있다. 부당한지 아닌지를 직감적으로 알아채는 감각이다. ‘대통령이라고 정상적인 사법 절차를 통하지 않고 별도의 법을 만들어 있는 재판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게 과연 온당한가’ ‘법 앞에 평등 원칙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라고 여길 수 있다.

'내란 심판' 주장도 마찬가지다. 중도층 국민들은  직감적 정의 감각에 따라 내란 심판이 아직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고 심판은 이미 끝났다고 볼 수도 있다. 결국 독재 저지든, 내란 심판이든  핵심은 어느 쪽 주장이 더 중도층 국민들의 정의 감각에 부합할 것이냐이다. 이번 선거는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정의는 무엇인가'를 가르는 선거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을 듯하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전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