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영의 우.다.세] 사랑인 줄 알았더니 나락이었네-영화 'Monster'

▲ ‘다양성 영화’는 단순히 장르를 뜻하기보다 상업 중심의 주류 영화와는 다른 시선·형식·주제를 가진 영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양한 국적, 장르, 소수성 등을 포함하는 범주를 갖고 있다. 누군가는 불편하다며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마주하는 역할을 기대해본다. '우'리들의 '다'양한 '세'상을 위해.

 
사진영화 몬스터 스틸컷
[사진=영화 '몬스터' 스틸컷]

영화 속 주인공 에일린(샤를리즈 테론)은 등장부터 위태로워 보인다. 허름한 도로 위를 떠도는 그녀가 가진 것이라곤 낡은 가방 하나 뿐이다. 어렸을 적부터 폭력과 학대를 겪으며 자란 그녀는 안정적인 삶의 방식보다 생존의 감각을 먼저 익혔다. 

영화는 이 과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보여준다. 성 노동자로서 세상의 무시와 멸시를 받던 여성이 자신의 분노를 터뜨리고 폭주하며 결국 자신까지 산화하는 이야기. 하지만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판단은 미뤄진다. 대신 또 다른 감정이 끼어든다. 이 여자를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지, 아니 애초에 이해하려 드는 게 맞는 건지에 대한 망설임이다. 

‘몬스터’는 사건보다 시선을 드러내는 영화다. 그리고 그 시선은 스크린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있는 우리 쪽을 향한다. 이 영화는 계속해서 묻는다. 정말 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괴물’이었는가. 아니면 ‘괴물’로 낙인 찍히는 것인가.

이 영화는 그녀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 어떤 선택지 속에서 선택을 해왔는지 차례로 보여주면서 ‘괴물’이라는 단어가 한 사람을 얼마나 쉽게 낙인찍는가 되묻게 만든다.

영화의 제목인 ‘Monster’는 단순한 규정이라기 보다 질문에 가깝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한 사람을 괴물이라 부르는가. 그리고 그 판단은 과연 어디까지 정당한가 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결핍에서 피어난 사랑, 혹은 필요한 사랑
에일린이 연인 셸비(크리스티나 리치)를 만나는 장면은 어둡던 영화의 분위기를 조금은 환하게 바꾼다. 에일린은 셀비 앞에서 만큼은 잠시 평범한 사람이 된다. 함께 스스럼없이 손을 잡고 웃고, 사랑받기를 원하고, 다른 삶을 꿈꾼다.

셸비 또한 아무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외로움 속에 자신과 웃고 떠드는 에일린과 사랑하게 되고 결국 같이 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두 사람이 서로를 붙잡는 방식은 사랑이라기보다 생존에 더 가까운 듯 보인다. 팔이 부러져 생활비를 벌 수 없는 셸비의 몫까지 매춘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에일린에게 셸비는 어떠한 위로의 말도, 위안의 말도 해주지 않는다. 에일린은 사랑이 필요했지만 셸비는 이 사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삶 속에 이어나가는 삶은 금세 무너질 것만 같다. 두 사람이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연결, 그리고 그 연결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에일린의 눈에 어른거린다.
 
사진영화 몬스터 스틸컷
[사진=영화 '몬스터' 스틸컷]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 그리고 사회에 던져진 질문
이 영화는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 에일린 워노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56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태어난 에일린 워노스는 1989년~1990년 7명의 남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에일린의 어머니는 그녀가 4살 때 집을 떠났고 알코올 중독자인 조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이후 할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고, 할아버지 친구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그녀는 임신까지 하게 돼 아이를 낳자마자 강제로 입양을 보낸 뒤 집에서 쫓겨나 매춘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영화의 내용처럼 에일린은 자신과 연인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매춘에 나섰다가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당시 여론은 그가 금품을 노린 계획적인 살인이라고 판단했으나 에일린은 “남성들로부터 성폭행 혹은 위협을 당했으며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2002년 플로리다 주립 교도소에서 독극물 주입형으로 처형됐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남는 불편함은 단순히 폭력이나 범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 여성’, 혹은 ‘익숙한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삶’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지 모른다.

다양성 영화가 의미를 갖는 지점도 바로 여기일 것이다. 주류의 문법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삶을 보여주고 그로 인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시선에 균열을 만든다. ‘몬스터’는 그 균열을 불편함의 형태로 남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영화가 만들어낸 감정이라기보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던 기준이 흔들릴 때 생기는 감각에 가깝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물음 하나가 떠오르는 이유다.

‘몬스터’에서 진정한 괴물은 누구인가. 누군가를 너무 쉽게 단정 짓고 한 사람의 인격에 폭력을 휘둘렀던 사회 역시 또 다른 얼굴의 괴물은 아니었을까.
 
[사진=영화 '몬스터' 스틸컷]
[사진=영화 '몬스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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