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영화 이야기⑯ | 인간·문화·자연] '왕과 사는 남자'의 열풍...이제 한국영화 관객 1위 자리 넘본다

한국 영화사에 또 하나의 분수령이 세워졌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관객 수 1,660만을 돌파하며 역대 한국 영화 2위에 올라섰다. 매출액에서는 사실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숫자는 단순한 흥행 지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집단적 감정, 더 깊게 말하면 한국인의 정신세계가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다.

오늘날 영화 흥행은 단순한 오락의 소비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무의식이 선택한 이야기다. 사람들이 극장에 모여 무엇을 보고, 무엇에 눈물을 흘리며, 무엇에 분노하는가를 보면 그 사회의 가치와 내면이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왕과 사는 남자’의 폭발적 흥행은 단순한 작품의 완성도를 넘어, 한국인이 무엇을 그리워하고 무엇을 갈망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권력의 승자가 아니다. 오히려 패배한 자, 그러나 정통성을 가진 자에 대한 연민과 존중이다. 조선의 어린 왕 단종은 혈통과 명분에서는 왕이었으나 권력에서는 철저히 패배한 존재였다. 반면 숙부인 세조는 능력과 결단, 정치적 수완으로 권력을 장악한 인물이다. 역사적 사실만 놓고 보면 세조는 성공한 군주다. 그러나 영화는 그를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의 시선은 처참하게 무너진 단종에게로 향한다.

왜일까.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정서다. 한국인은 단순한 승자보다 ‘정당한 자’에게 마음을 둔다. 힘으로 얻은 권력보다 도리와 명분을 중시한다. ‘왕과 사는 남자’는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왕위 찬탈이라는 정치적 사건을 넘어 그것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윤리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준다. 숙부가 조카를 몰아내고, 왕이 왕을 죽음으로 내모는 그 장면 속에서 관객은 단순한 권력 투쟁이 아니라 ‘인륜과 천륜의 붕괴’를 목격한다.

유교적 가치로 표현하면 '인의예지신'의 붕괴다. 인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고, 의는 마땅함이며, 예는 질서이고, 지는 판단이며, 신은 신뢰다. 이 다섯 가지가 무너질 때 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다. ‘왕과 사는 남자’는 바로 이 근본 질서가 깨지는 순간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그 붕괴 앞에서 관객은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낀다. 이것이 흥행의 본질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영화 ‘명량’을 떠올리게 된다. ‘명량’은 외세의 침략 앞에서 나라를 지켜낸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다. 여기에는 또 다른 한국인의 정서가 담겨 있다. 그것은 충과 효, 그리고 애민과 애족의 정신이다. ‘왕과 사는 남자’가 내부의 윤리 붕괴를 다룬다면 ‘명량’은 외부의 위협 속에서 공동체를 지켜낸 정신을 그린다.

이 두 영화는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의 축으로 연결된다. 하나는 무너진 도리를 애도하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지켜낸 도리를 찬양하는 이야기다. 전자는 비극이고 후자는 승리다. 그러나 그 근원은 같다. 그것은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 질서, 즉 사람다움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인의 정서는 이 두 축 사이에서 형성된다. 부당하게 무너진 것에 대해 깊이 슬퍼하고, 정당하게 지켜낸 것에 대해 뜨겁게 감동한다. 단종의 비극에 눈물을 흘리고, 이순신의 승리에 환호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단순한 역사 인식이 아니라 집단적 도덕 감각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이 정서는 홍익인간이라는 근본 이념과 맞닿아 있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이 사상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지향하는 철학이다. 하늘과 땅과 인간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천지인의 관념이 그 바탕에 흐른다. 이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우리의 정신적 DNA다.

‘왕과 사는 남자’에서 드러난 비극은 이 질서가 깨지는 순간이다. 인간이 인간을 짓밟고 권력이 도리를 압도하며 관계의 윤리가 붕괴되는 장면은 곧 천지인의 조화가 무너지는 장면이다. 그래서 관객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슬픔을 느낀다. 그것은 존재의 근본이 흔들리는 감각이다.

반대로 ‘명량’은 이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이야기다. 이순신은 단순한 장수가 아니라 무너진 질서를 바로 세운 존재다. 그는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백성과 나라를 위해 싸웠다. 그의 충과 효, 백성을 향한 마음은 곧 홍익인간 정신의 구현이다. 그래서 관객은 그에게서 안도와 자부심을 동시에 느낀다.

영화속 영월 청룡포의 강물은 말이 없다. 바람은 낮게 불고, 산과 물은 오래된 시간을 품은 채 침묵한다. 그 고요 속에서 단종의 마지막은 더욱 또렷해진다. 그는 더 이상 왕이 아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왕다웠다. 권좌는 빼앗겼으되, 인간의 도리는 끝내 빼앗기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화려한 결말을 거부한다. 대신 자연으로 돌아간다. 강물은 흐르고, 산은 변하지 않으며, 하늘은 모든 것을 내려다본다. 인간의 권력은 찰나였지만, 인간의 슬픔은 오래 남는다. 그 슬픔은 미움이 아니라 연민으로, 분노가 아니라 조용한 성찰로 남는다.

관객은 그 장면에서 깨닫는다. 인간은 결국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그 관계가 무너질 때 문명도 함께 무너진다는 사실을. 단종의 고요한 최후는 패배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인간다움을 지켜낸 한 존재의 완성이다. 그것이 바로 ‘측은지심’의 끝이며, 한국인이 끝내 놓지 않는 마음이다.

영화 ‘명량’ 속에서
이순신이 서 있는 바다는 이미 전투가 끝난 뒤의 바다다. 포연은 걷히고 물결은 다시 제 자리를 찾는다. 수많은 죽음과 생존이 교차한 자리 위에 고요가 내려앉는다. 그러나 그 고요는 공허가 아니라 지켜낸 것에 대한 깊은 울림이다.

그는 승리했으나 기뻐하지 않는다. 장수의 눈에는 백성의 삶이 먼저 들어온다. 나라가 존재해야 백성이 있고, 백성이 있어야 삶이 있다. 그의 싸움은 적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바다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인간의 전쟁은 끝났지만, 바다는 여전히 인간을 품는다. 그 위에 서 있는 이순신의 모습은 한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이다. 충과 효, 그리고 사람을 향한 마음이 어떻게 역사를 지켜내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관객은 그 장면에서 안다. 지켜낸다는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것이 ‘명량’이 남긴 울림이며, 우리가 이어가야 할 인간의 길이다.

결국 두 영화의 마지막은 하나로 이어진다. 하나는 무너진 인간다움에 대한 침묵의 애도이며, 다른 하나는 지켜낸 인간다움에 대한 장엄한 확인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문화의 뿌리,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답을 찾는다.

힘은 사라지지만, 도리는 남는다. 그리고 그 도리를 향한 마음, 그것이 곧 인간이며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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