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부터 벤처 시장에 들어온 자금들이 이제 만기를 맞았는데, 나갈 문(Exit)이 아예 잠겨버렸습니다. 가격을 낮춰 불러도 받아줄 곳이 없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최근 벤처 투자 현장에서 들려오는 비명 섞인 목소리입니다. 실제로 올해 벤처 시장에서 만기가 도래하는 자금 규모만 무려 16조9252억원에 달하는데요. 꽉 막힌 회수 시장의 '혈전'을 뚫기 위해 증권사들이 구원투수로 등판했습니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황성엽 금융투자협회장은 주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2조원 규모의 세컨더리(Secondary) 펀드 조성을 제안했습니다. 향후 3년간 모험자본 20조원을 투입해 벤처 생태계를 정상화하겠다는 거대 프로젝트의 일환인데요. 과연 이 대규모 자금 투입은 시장의 진짜 해법이 될 수 있을까요?
프라이머리 펀드가 '직구'라면, 세컨더리 펀드는 '중고 거래'
보통 스타트업들은 사업 초기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개인이 리스크를 전적으로 부담하기는 어렵기에, 대표이사의 역량이나 비전을 보고 투자하는 펀드가 결성되는데 이를 '프라이머리(Primary) 펀드'라고 합니다. 기업이 새로 발행한 주식을 직접 사들이는 직구인 셈입니다.이때 등판하는 것이 세컨더리 펀드인데요. 기존 투자자가 보유한 지분을 다른 펀드에 매각하는 일종의 중고 거래 시장으로, 펀드 만기에 쫓겨 무리한 상장을 선택해야 하는 투자자들에게 활로를 열어줄 수 있는 오아시스가 될 수 있습니다.
2조원의 수혈, 벤처 생태계 '선순환'의 마중물
시장 관계자들은 세컨더리 펀드 시장이 안착하면 시장에는 기분 좋은 변화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초기 투자자들은 지분을 넘겨 수익률을 조기 확정 짓고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고, 이 자금은 다시 새로운 스타트업으로 흘러가는 선순환의 마중물이 되기 때문이죠.기업 입장에서도 환금성이 보장되니 초기에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기 쉬워지고 내실이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코스닥 상장을 서두르다 상장폐지나 개인 투자자 피해를 낳는 비극도 막을 수 있게 됩니다.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계 역시 2조원 규모의 새로운 운용 자산을 확보하면서 모험자본 공급의 핵심 주체로 부상하게 됩니다.
'클럽하우스 딜'의 그림자…부실 전이 사각지대 주의보
하지만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세컨더리 펀드 시장이 자칫 부실 자산을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특히 비상장 주식은 객관적 가격이 없는 깜깜이 구조라 매도자와 매입자 간의 정보 비대칭이 심각하기 때문인데요. 또 세컨더리 자금은 기업(발행인)에게 직접 가는 돈이 아닌 만큼, 이 돈이 다시 시장에 유동성으로 재공급되지 않는다면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위험도 상존합니다.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역량 없는 VC가 펀드를 운용할 경우, 이는 단순히 부실 자산을 연명시키는 자금 낭비에 그칠 수 있다"며 "장외 호가는 운용역 간 협의에 따라 자의적인 가격 설정이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어 "소위 '클럽딜'이라는 명목하에 VC와 사모펀드(PE) 관계자들이 골프장 클럽하우스 등 사적 네트워크를 통해 딜을 주고받는 관행이 여전하다"며 "최근 경영난을 겪는 VC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선별적인 옥석 가리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부실 운용사에게 자금을 퍼부어주는 리스크 전이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진정한 구원투수가 되려면
결국 세컨더리 펀드가 벤처 생태계의 진정한 산소호흡기가 되기 위해서는 가격 산정의 투명성 확보가 최우선 과제입니다. 매도자는 기업 정보를 소상히 아는 반면 매수자는 정보 열위에 놓이는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세컨더리 펀드 이후의 최종 엑시트 경로까지 면밀히 마련돼야 합니다.시장 관계자는 입을 모아 과거 비상장 자산 가치를 자의적으로 평가해 돌려막았던 라임 사태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17조원의 만기 폭탄을 맞은 벤처 시장에 2조원의 자금이 '약'이 될지, 부실을 감추는 '독'이 될지는 결국 시스템의 투명성과 운용역의 전문성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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