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그룹을 필두로 은행권이 중동발 충격에 대응해 53조원 규모의 자금 공급과 민생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기업에는 신규 자금과 만기연장·상환유예를 제공하기로 했고, 보험사는 가계에 보험료 할인과 주유비 혜택 확대를 약속했다. 지난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 주재로 열린 금융권 간담회에서 나온 내용이다.
우선 KB국민·신한·하나·우리·NH 등 5대 금융그룹과 정책금융기관은 이란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총 53조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공급한다. 대출금리는 은행별로 최대 0.8~2%포인트까지 낮추고, 최장 12개월 범위 내에서 만기 연장과 원금 상환 유예를 지원한다. 외환 수수료 인하도 병행된다.
보험사들은 영업용 차량 등을 대상으로 보험료 지원에 나선다. 금융 당국은 소상공인이 주로 사용하는 화물차를 중심으로 보험료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서민과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보험료 납입 유예, 보험금 신속 지급, 보험계약대출 이자 상환 유예도 추진한다.
카드사와 캐피털사는 화물차 할부 금융 원금 상환을 최대 3개월 유예한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화물차 할부 금융 취급 잔액은 약 4조원 수준이다. 일부 카드사는 청년·저소득층 대상 대중교통 특화 카드 환급 비율을 확대하고, 주유 특화 카드 이용 시 추가 할인과 캐시백 제공도 검토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권도 유가·환율·시황 관련 정보 제공을 늘리고 정부의 시장 안정화 조치에 참여할 방침이다.
특히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본비율은 전분기 대비 소폭 하락했지만, 이는 주주환원 확대에 따른 배당 증가와 환율 상승의 영향이 반영된 결과다. 5대 금융지주의 총자본비율은 모두 15%를 웃돌고, 상당수는 16%를 상회하는 매우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5대 금융지주의 총자본비율은 KB(16.16%)·우리(16.13%)·신한(15.92%)·농협(15.63%)·하나(15.61%) 순으로 집계됐다.
지금 금융시장은 단순한 외부 충격을 넘어 구조적 불안을 드러내고 있다. 시장금리는 미국과 일본보다 훨씬 가파르게 상승했고, 원화 약세 역시 더 빠르다. 이는 글로벌 요인을 넘어 한국 시장에 추가적인 위험 프리미엄이 반영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 충격이 은행을 거치며 그대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약 3년5개월 만에 처음으로 고정금리 상단이 7%를 넘어섰다. 기업 자금 사정은 더 악화돼 BBB등급 회사채 금리는 10%에 근접했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차환 자체가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금리 상승은 이제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럼에도 은행들은 시장금리를 이유로 대출금리 인상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하면서, 부담 완화에는 한없이 신중하다. 시장이 흔들릴수록 이자 수익은 늘고, 차주의 부담은 커지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이자 장사를 하면서 유동성 지원에 동참하는 이중적 태도는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은행가는 날이 좋을 때 우산을 빌려주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곧바로 돌려달라고 하는 사람이다”라고 꼬집었다.
5대 금융그룹은 앞장서 위기 시 진정성이 있다면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과도하게 시장금리를 반영해 대출금리를 끌어올리는 관행부터 자제해야 한다. 가산금리의 적정성을 점검하고, 취약 차주에 대한 금리 조정과 만기연장, 상환유예 등 실질적인 완충 장치를 선제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은행의 역할은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금융 중개다. 위기 국면에서는 그 본령이 더욱 분명해진다.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는 금융은 중개기관이 아니라 위험 전이 통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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