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은 못 사는 도시?... 日 도쿄 23구 월세 100만원 시대

  • 기업 인재 확보 경쟁이 밀어 올린 '월세'에 시민들은 변두리로

  • 지자체는 '빈집세' 카드로 응수

도쿄 전경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도쿄 전경[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해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꿈에 그리던 일본 대학에 합격해 설레는 마음으로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던 19세 유학생 A씨. 하지만 그녀의 설렘은 부동산 중개소 문을 열기도 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불과 몇 달 전 유학 예산을 짤 때 알아봤던 '적당하다' 싶었던 매물들은 이미 자취를 감췄거나, 그사이 월세가 앞자리를 바꿔 달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주거비 부담을 덜기 위해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 지역 위주로 발품을 팔았음에도, 괜찮은 매물은 월세가 13만 엔(약 123만원)을 훌쩍 넘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A씨는 "서울 월세도 비싸다지만 일본은 물가가 워낙 안정된 나라라고 해서 안심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일본 부동산도 무섭게 뛰는 것 같다"며 부모님께 추가 지원을 부탁해야 하는 미안함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수십 년간 일본 경제를 지탱해 온 '저물가·안정' 기조에 선명한 균열이 생기면서, 전 세계적인 부동산 폭등의 파고가 일본 주거 시장의 가격 체계를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부동산 정보 서비스 엣홈이 발표한 2월 도쿄 23구의 전용면적 30㎡ 이하 1인 가구용 임대 아파트 평균 월세는 전월 대비 2.3% 상승한 11만 177엔(약 104만원)을 기록했다. 2015년 조사 시작 이래 처음으로 11만 엔 선을 돌파한 것으로, 21개월 연속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무려 12.0%(1만 1,831엔)나 치솟은 수치다. 언뜻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151만 원대)와 비교하면 도쿄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일 수 있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이번 통계는 9평 내외의 1인 가구용 아파트가 이미 일본 내 심리적 저항선인 10만 엔을 훌쩍 넘어 11만 엔대에 안착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월세가 우리 돈 100만 원 시대를 열면서 서민들의 실질 주거비 고통이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이 같은 가파른 상승세의 이면에는 기업들이 인재 확보를 위한 '주거 복지' 강화 차원에서 직접 월세 계약에 뛰어드는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엣홈랩의 관계자는 "기업이 직원용 사택을 구하기 위해 직접 임차 계약을 맺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기업은 개인보다 자금력이 풍부해 높은 월세도 기꺼이 수용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체 부동산 시세를 끌어올리는 강력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물가와 이사 비용 상승으로 기존 세입자들이 이동을 꺼리면서 매물 공급이 급감하자, 자금력을 갖춘 기업과 법인이 인기 매물을 선점하며 임대료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역세권이나 구조가 좋은 인기 매물은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임대인이 가격을 높게 책정하기 유리한 '임대인 우위' 시장이 고착화되고 있다.

도심 월세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치솟자,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웃지 못할 '생존 전략'이 공유되고 있다. 일본 최대 경제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최근 월세를 아끼기 위해 주요 터미널역에서 한두 정거장 떨어진 곳을 선택하는 이른바 '즈라시 에키(옆 동네 역)' 현상을 집중 조명했다. 닛케이는 급행 열차가 서지 않는 완행 전용 역 주변 매물을 선택하거나 역에서 도보 거리가 먼 매물을 고르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소개했다.

유력 경제지인 닛케이가 지극히 기초적인 주거 비용 절감 방법을 비중 있게 조언하고 나선 것은, 일본 도심의 주거비 압박이 일상의 평범한 수준을 넘어 생존을 위한 고심의 영역으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목이다. 실제로 닛케이는 시부야까지 30분 거리인 노선에서 급행이 서는 '무코가오카유엔'역보다 완행만 정차하는 '요미우리랜드마에'역의 월세가 1만 엔 이상 저렴하다는 구체적인 비교 수치까지 제시하며 시민들의 '타협'을 독려하고 나선 상태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일본 지자체들은 육아 세대 등 젊은 인구의 유출을 막기 위한 대책 수립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도쿄도는 올해부터 시세보다 약 20% 저렴한 '어포더블(Affordable) 주택(감당 가능한 주택)' 공급에 나선다. 이를 위해 100억 엔을 출자해 민간 기업과 일본 최초의 민관 연계 주거 펀드를 조성하고, 배당 수익률을 인위적으로 낮춰 저렴한 임대료를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민간 투자자들 입장에서 보면 수익보다는 사회공헌의 성격이 강한 사업이지만, 도쿄도는 어포더블 주택 건설 시 용적률을 완화해 공급 가구 수를 늘려주는 인센티브 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등 민간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광역 지자체인 도쿄도의 대책에 발맞춰 도심 내 기초 지자체들도 더 직접적인 유인책을 꺼내 들었다. 도쿄 지요다구는 오피스 빌딩이나 빈집을 주택으로 전환해 시세보다 20~30% 낮게 공급하는 사업자에게 최대 1,000만 엔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러한 파격적인 지원책의 이면에는 지자체장의 절박한 위기감이 깔려 있다. 히구치 다카아키 지요다구청장은 "이대로 방치하면 평범한 시민들은 도저히 살 수 없는 도시가 될 것"이라며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신규 주택 공급만으로는 폭등하는 임차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잠자고 있는 기존 매물을 시장으로 강제로 끌어내려는 '채찍'도 등장했다. 교토시는 2030년부터 빈집이나 별장 소유주에게 세금을 물리는 '빈집세' 도입을 확정했고, 고베시 역시 아파트 공실 소유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집주인 보유 부담을 높여 매물을 시장으로 밀어내겠다는, 지자체 차원의 강력한 '공급 유도책'인 셈이다.

프랑스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한 이러한 강력한 공적 개입은 전 세계적인 도시 주거난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순이라는 분석이다. 도시경제학 전문가인 나카가와 마사유키 니혼대 교수는 "부동산 투자의 글로벌화 등으로 인해 가격 급등은 이미 세계 공통의 과제가 됐다"며 "일본에서도 빈집세나 공실세 등을 통해 유휴 자산을 시장으로 환원시키는 시스템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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