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아리랑'을 달고 영어로 노래할 때

'아리랑'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유난히 특별하다.

한(恨), 정서, 그리고 수백 년을 통과해온 집단적 기억까지. 이 세 글자에는 유독 많은 것이 올라타 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정규 5집 앨범명 '아리랑'이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자연스레 기대했다. '얼마나 한국적인 작품일까' 하고.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반응은 갈렸다. 특히 타이틀곡 'SWIM'을 비롯한 주요 트랙이 대부분 영어 가사로 채워졌다는 점에서 적잖은 아쉬움이 나왔다. 앨범 제목은 '아리랑'인데, 정작 노랫말은 영어라니. 낯설다는 반응을 이해할 만하다.
 
사진빅히트 뮤직
사진=빅히트 뮤직


다만 여기서 한 번쯤 물어볼 필요는 있다. 정말 이상한 것은 영어 가사일까. 아니면 '아리랑'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자동으로 전통의 외양부터 떠올리는 우리의 기대일까.

이 질문은 단순한 취향 문제가 아니다. "왜 하필 영어인가"라는 물음은 곧 K-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드러나는 건 한국적 정체성을 눈에 보이는 기호로만 확인하려는 습관이다. 한복이 나와야 하고, 국악 샘플이 들려야 하고, 한국어가 전면에 있어야만 "이건 한국적이구나" 하고 안심하는 식이다.

하지만 문화는 그렇게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방탄소년단이 이번 앨범에서 택한 건 팀의 뿌리에 가까운 힙합 사운드다. 힙합은 지역성과 개인적 이야기에서 출발한 장르지만 동시에 전 세계가 공유하는 음악적 문법이기도 하다. 그 문법 안에서 영어는 가장 넓게 통용되는 언어다. 영어 가사는 정체성의 포기가 아니라 멀리 가기 위한 전달 방식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질문을 조금 바꿔야 한다. 왜 영어냐고 묻기 전에, 그 영어로 무엇을 싣고 가느냐를 봐야 한다.

실제로 '아리랑'이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건 전통의 노골적 재현과는 거리가 있다. 이 앨범은 한국적인 것을 전시하듯 내세우기보다 은근한 층위에서 작동시키려는 쪽에 가깝다. 반복적으로 감정을 끌어올리는 구조, 집단적 정서를 환기하는 후렴의 감각, 그리고 멤버들이 인터뷰에서 밝힌 '한국인으로서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감각' 같은 것들. 한국적인 것이 표지판처럼 꽂혀 있어야만 한국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너무 대놓고 보여주려 애쓸수록 그건 전통이라기보다 연출이 된다. 장식은 화려해질지 몰라도 정서는 얕아진다. 한국적인 것을 지키겠다고 하면서 정작 한국적인 것을 박제된 이미지로만 다루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아리랑' 자체가 원래 그런 노래였다. 처음부터 단 하나의 고정된 형태로 존재한 것이 아니다. 지역마다 가사가 달랐고, 부르는 방식도 달랐으며, 시대마다 실린 감정도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이별의 노래였고, 누군가에게는 삶을 버티는 노래였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저항과 위로의 노래였다. 그렇게 끊임없이 변주돼 왔기에 오히려 오래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영어로 불리는 '아리랑' 역시 그 긴 변주의 역사 바깥에 놓인 예외라기보다, 그 연장선에 놓인 또 하나의 방식이다. 언어가 달라졌다고 해서 문화적 정체성까지 증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대와 매체, 청자에 따라 계속 번역되고 이동하는 과정 자체가 문화의 생명력에 가깝다.

결국 이 논쟁이 보여주는 것은 영어 가사에 대한 불편함만이 아니다. 우리가 아직도 '한국적'이라는 말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적인 것은 반드시 한국어여야 하고, 전통적인 외양을 갖춰야 하며,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달고 있어야 한다는 믿음. 그런 기준으로만 따지면 살아 있는 문화보다 기념품 가게가 더 한국적일지도 모른다.

K-팝은 특정 지역 안에 갇힌 음악이 아니다. 글로벌 시장을 전제로 생산되고 전 세계의 청자가 동시에 소비하는 장르다. 이 흐름 속에서 영어는 선택이라기보다 전략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그 전략이 무엇을 지우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새롭게 실어 나르느냐다.

그래서 질문도 조금 세련돼질 필요가 있다. "아리랑인데 왜 영어냐"에 머물 것이 아니라 그 영어 안에 어떤 정서가 번역돼 들어갔는지, 무엇이 남았고 무엇이 변주됐는지를 봐야 한다. 문화는 그렇게 움직인다. 형태는 바뀌고, 언어는 옮겨가고, 감각은 다른 그릇에 담긴다. 그래도 끝내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정체성일 것이다.

정말 물어봐야 할 건 이것이다. 한국적인 것을 너무 쉽게 알아보려는 우리의 시선이 지나치게 낡은 것은 아닌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