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컬럼] 2018년의 악수, 2026년의 만찬

  • 카펠라 호텔이 다시 묻는 한반도 평화의 가능성

2018년 6월 12일, 전 세계의 카메라는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한 호텔을 비추고 있었다. 그곳은 카펠라 싱가포르. 이 호텔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나라는 전쟁을 멈춘 지 70년이 넘었지만 평화협정을 맺지 못한 상태였다. 핵 문제와 군사적 긴장이 반복되던 시기, 두 정상이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계는 놀랐다. 그 만남은 기대만큼의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후 북미 관계는 다시 경색됐고 한반도 긴장도 반복됐다. 그러나 그날의 악수는 하나의 가능성을 남겼다. 적대의 역사 속에서도 대화는 시도될 수 있다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2026년 3월 2일, 같은 장소에서 또 하나의 외교 장면이 펼쳐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국빈 방문해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대통령과 공식 만찬을 가진 것이다. 과거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바로 그 공간에서 다시 ‘평화’라는 단어가 언급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싱가포르 대통령오른쪽 주최 국빈방문 공식만찬에 참석했다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싱가포르 대통령(오른쪽) 주최 국빈방문 공식만찬에 참석했다.[사진=연합뉴스]


물론 두 만남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2018년 회담은 적대 관계에 있던 두 당사자가 군사적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마주 앉은 자리였다. 핵과 제재, 안보가 중심 의제였다. 반면 이번 한–싱가포르 정상 만찬은 이미 우호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 간 협력을 확대하는 외교 일정이다. 갈등을 멈추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신뢰를 넓히기 위한 전략적 교류다.


그럼에도 장소가 주는 상징성은 무시하기 어렵다. 같은 공간이 다시 외교 무대로 사용됐다는 사실은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다. 갈등의 기억을 품은 장소가 협력의 공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이 만찬사에서 이곳을 “싱가포르 외교의 평화 리더십을 상징하는 장소”라고 강조한 것도 그 맥락에서 읽힌다.


싱가포르는 군사 강대국은 아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균형과 신뢰를 자산으로 삼아왔다. 미·중 사이에서도 전략적 중립을 유지하며 외교적 신뢰를 축적해 왔다. 2018년 북미 회담을 유치했고, 2026년 한국 대통령을 같은 공간에 초청했다는 사실은 싱가포르가 공간을 외교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른바 ‘장소 외교(Place Diplomacy)’다. 특정 공간에 축적된 역사적 기억을 국가 브랜드로 전환하는 전략이다.
 

이날 만찬에서는 문화 이야기도 오갔다. 싱가포르 대통령은 한국의 요리 프로그램과 K-팝에 대한 관심을 언급했고, BTS에 대한 이야기도 화제가 됐다. 문화는 군사나 안보보다 먼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노래와 드라마는 국경을 쉽게 넘는다. 시민들의 호감은 외교적 신뢰의 토대가 된다. 정치가 멈출 때에도 문화는 흐른다.


한반도는 여전히 완전한 평화 체제에 이르지 못했다. 남북 관계는 대화와 긴장을 반복해 왔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평화는 단번에 완성되는 사건이 아니라 축적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 번의 회담으로 신뢰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여러 번의 시도와 국제적 지지 환경이 함께 쌓여야 한다.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이 ‘위험을 멈추기 위한 대화’였다면, 2026년 한–싱가포르 정상 만찬은 ‘평화를 지지하는 환경을 넓히는 외교’에 가깝다. 방향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안정이라는 큰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카펠라 호텔은 조용히 서 있다. 8년 전에는 역사적인 악수가 있었고, 이번에는 건배가 오갔다. 악수와 건배는 외형적으로는 단순한 장면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공통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의지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국제 정세는 복잡하다. 이해관계는 얽혀 있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 구조가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갈등을 키우는 방향이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선택은 의미를 가진다. 전쟁의 가능성이 줄어들수록 우리의 일상은 안전해지고, 국제적 신뢰가 높아질수록 경제와 교류도 활발해진다. 평화는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다.


카펠라 싱가포르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실패의 기억만을 남길 것인가, 아니면 가능성의 기억도 함께 축적할 것인가. 공간은 중립적이지만, 그 공간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갈등의 장소가 협력의 상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 변화 역시 외교의 일부다.


결국 평화는 거대한 선언으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작은 만남과 반복되는 신뢰의 축적 속에서 자란다. 2018년의 악수와 2026년의 건배는 그 과정을 보여주는 서로 다른 장면일 뿐이다. 그 장면들이 어떤 흐름으로 이어질지는 앞으로의 선택과 실천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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