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설 | 기본·원칙·상식] 3·1의 정신과 한일관계 60년…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를 닫지 말자

107주년 3·1절을 맞아 이재명 대통령은 “3·1혁명은 독립선언이자 평화 선언”이었다고 밝혔다. 힘의 논리가 국제질서를 흔드는 격변의 시대에 1919년의 만세 함성을 오늘의 평화와 공존의 나침반으로 삼겠다는 메시지다. 이번 기념사는 남북관계와 동북아 질서,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를 하나의 평화 구상 속에 배치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3·1운동은 일제에 대한 저항이었지만 동시에 보편적 가치의 선언이었다. 독립은 배타적 민족주의의 표출이 아니라, 자주와 인도적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 문명에 기여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독립선언서가 밝힌 포부는 단순한 해방을 넘어 새로운 질서에 대한 비전이었다. 대통령이 이를 다시 언급한 것은 과거의 상처를 미래의 책임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한일관계는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대통령은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는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고, 고통받는 피해자와 유가족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출발점이다. 과거를 덮지도, 과거에 머물지도 않겠다는 입장이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60년 동안 양국은 외교·경제·문화 전반에서 긴밀히 연결돼 왔다. 교역과 투자, 인적 교류는 일상화됐고, 안보와 공급망, 첨단기술 경쟁이라는 전략적 과제 역시 공유하고 있다.
 
엄혹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관계는 감정의 영역을 넘어 전략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북핵 위협과 미중 전략경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한국과 일본을 같은 좌표 위에 세워놓고 있다. 대통령이 ‘실용외교’와 ‘셔틀외교 지속’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단 없는 소통과 예측 가능한 관계가 국익을 지탱한다.
 
다만 실용은 원칙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역사 문제는 피해자 중심이라는 보편적 기준 위에서 다뤄져야 한다. 관계가 안정될수록 역사 인식은 더욱 정교하고 책임 있게 다뤄져야 한다. 불편한 문제를 미루는 방식의 봉합은 장기적 신뢰를 담보하지 못한다.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태도와 지속적인 호응 역시 관계의 성숙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1919년의 조선은 힘이 없었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2026년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력과 세계 5위 수준의 군사력, 그리고 높은 문화적 영향력을 갖춘 국가로 성장했다. 이제는 피해의 기억을 반복하는 국가에 머무르지 않고, 질서를 설계하고 책임을 분담하는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한일관계 또한 과거의 당사자라는 틀을 넘어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이웃국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동북아 평화 구상 속에서 한일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조건에 가깝다. 안중근 의사가 역설한 동양평화론은 여전히 유효한 화두다. 갈등을 관리하고 협력의 접점을 넓혀갈 때 동북아는 세계 질서의 불안정을 완충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감정의 외교로는 그 문을 열 수 없다.
 
3·1절은 기억의 날이지만 동시에 방향을 가다듬는 날이기도 하다. 반일과 친일이라는 단순한 구도는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국익과 가치, 역사와 미래를 함께 놓고 판단하는 성숙한 전략이 요구된다. 과거를 잊지 않되 미래를 닫지 않는 태도, 원칙을 지키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균형이 오늘의 3·1정신일 것이다.
 
대통령이 언급한 “사이좋은 새 세상”은 감상이 아니라 실천의 과제다. 정부는 일관된 전략과 세밀한 외교로 신뢰를 쌓아야 하며, 일본 정부 역시 책임 있는 자세로 응답해야 한다. 107년 전 “대한독립 만세”의 외침이 오늘 “평화와 공영”의 제도와 정책으로 이어질 때, 한일관계는 비로소 과거의 그림자를 넘어설 수 있다.
 
3·1의 정신은 대결의 기억을 넘어 공존의 용기로 이어져야 한다. 그 용기를 외교의 언어와 정책의 실천으로 증명하는 일이 남아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107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107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