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는 지출 아닌 투자"... 일본, '적극 재정'으로 경제안보 요새 쌓는다

  • 요미우리, 경제안보 추진법 개정안 보도… "정부가 기업대신 리스크 진다"

  • '책임있는 적극 재정' 본격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사진지지AFP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사진=지지·AFP·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집권 후 첫 대형 입법 과제로 경제안보 추진법 개정을 선택하며 자신의 핵심 경제 철학인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법적 미비점을 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국가가 안보 리스크를 직접 관리하며 산업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거대 설계도의 첫 실질적인 집행으로 평가된다.

요미우리신문은 12일 일본 정부가 오는 18일 소집되는 특별국회에 제출할 경제안보 추진법 개정안의 전모를 보도했다. 이번 개정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일본 기업이 해외 진출 시 마주하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국가가 분담하는 ‘특정 해외 사업’ 제도의 신설이다. 정부 산하 금융기관인 일본국제협력은행(JBIC)법을 개정해, 이익은 민간에 우선 배분하되 사업 손실 발생 시에는 국가가 먼저 부담을 짊어지는 ‘열후출자(劣後出資)’를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동남아시아(ASEAN) 등 전략적 요충지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에 대응해 일본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항만이나 데이터 센터 등 기초 인프라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국가가 안전판 역할을 자처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정책의 저변에는 다카이치 총리의 오랜 지론인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부터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 경제의 침체 원인을 지나친 긴축 사고와 미래 투자 부족에서 찾아왔다. 그는 국채 발행을 통한 과감한 재정 투입이 오히려 경제 성장을 촉진해 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높인다는 논리를 펴왔다. 이번 경제안보법 개정은 그가 주장해온 ‘위기관리 투자’를 실체화한 것이다. 안보를 위해 쓰이는 예산을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국내 고용과 소득을 늘리는 성장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치환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현재 일본 정계의 상황을 견제 세력이 사라진 ‘당내 1강’ 체제를 뜻하는 ‘당 제로(党ゼロ)’ 시대로 규정하며 다카이치 정권의 독주 체제를 조명했다. 중의원 선거 대승 이후 자민당 내에서 총리의 정책에 제동을 걸거나 비판할 수 있는 반대 세력이 사실상 사라지고 과거 재정 규율을 중시하던 당내 신중론자들의 목소리가 힘을 잃으면서, 다카이치 총리는 자신의 경제 안보 구상을 거침없이 밀어붙일 수 있는 정치적 동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이 12일 회견에서 “경제안보와 AI·반도체 등 위기관리 투자를 통해 강한 경제를 실현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정권 내부의 일치된 기류를 반영한다.


요미우리 보도에 따르면 이번 법안은 안보의 대상 또한 획기적으로 확장했다. 기존의 반도체나 중요 광물 같은 물자 중심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국제 통신의 중추인 해저 케이블의 부설 및 유지보수, 우주 산업의 핵심인 로켓 발사 서비스 등을 ‘특정 중요물자’ 범주에 포함했다. 또한 의료기관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판단에 따라, 의료 분야를 전력·가스와 같은 ‘기간 인프라’로 지정해 국가가 직접 보안 설비를 사전 심사하기로 했다.

결국 이번 경제안보법 개정은 경제안보담당상을 경험한 다카이치 총리의 전문성과 그의 경제 철학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일본은 앞으로 정부가 기업의 리스크를 대신 지고 안보를 명분으로 시장에 깊숙이 개입하는 ‘다카이치표 경제 모델’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안보가 곧 국가의 산업 경쟁력이 된 시대, 일본 정부의 이러한 공세적인 리스크 분담 정책은 글로벌 공급망 경쟁 속에서 한국 기업과 정부에도 새로운 대응 과제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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