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재의 경제가 답이다] '오천피.천스닥' 시대 …잠재성장률 3% 도전하자

··박원재 논설고문
[박원재 논설고문]


코스피 질주에 이어 코스닥도 기력을 되찾은 모습이다. 투자자들의 외면 속에 존재감조차 희미했던 코스닥이 25년 만에 1000 고지에 안착하면서 주식시장은 ‘오천피·천스닥’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1980년 지수 100으로 출발한 한국 증시는 반세기 만에 50배 성장했고, 시가총액은 5000조원에 육박하며 독일과 대만을 제치고 세계 8위로 올라섰다. 1980년대 중후반 3저 효과(저유가·저달러·저금리)에 힘입어 고도성장을 구가했던 때를 일컫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 21세기 주식시장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실물경제 지표는 증시의 호성적과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역대급으로 악화된 생산과 투자 감소, 내수 부진을 숫자가 증명한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3조원 규모의 소비 쿠폰을 뿌리고도 1%에 턱걸이했다. 반올림하지 않은 성장률은 0.97%로 엄밀히 따지면 0%대다. 코스피가 반도체 특수(特需)로 상승 엔진을 가동하기 시작한 4분기(10~12월)에는 –0.3% 역성장이라는 믿기 힘든 성적표를 받았다.

작년의 경제성장률은 역사상 6번째로 낮은 것이다. 경제가 뒷걸음치는 마이너스 성장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한국 경제의 작년 성적이 왜 낙제인지는 역설적으로 더 나빴던 때를 떠올리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성장률 최저치는 1998년 외환위기(–4.9%)와 함께 찾아왔다. 2차 오일쇼크에 따른 물가 급등으로 고통을 겪은 1980년(-1.5%)과 코로나 팬데믹 시기인 2020년(-0.7%)에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0%대 저성장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0.7%)과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9년(0.8%) 두 차례뿐인데 이번에 횟수가 늘었다.

수출이 세계에서 6번째로 7000억 달러를 넘었는데 성장률은 정체에 빠졌다. 증시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투자 열기가 뜨겁지만 체감 경기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작년 성장률 중에서 반도체 중심의 정보기술(IT) 제조업 기여도는 0.6%포인트를 차지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없었다면 성장률이 0.4%에 그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같은 경제권에서 이처럼 열기와 한기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현상이다.

미국 경제는 2023년 2.9%, 2024년 2.8%로 견조한 성장세를 보였고 작년에도 2%대 성장을 지속했다. 유엔이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2.7%, 미국은 2.0%로 전망하면서 2023년부터 시작된 한국과 미국의 성장률 역전은 4년째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 규모가 한국의 16배인 미국보다 성장률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성장 잠재력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의미다. 세계도, 미국도 경제가 정상적으로 가동되는데 한국은 마이너스를 걱정하는 저성장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미국 경제가 고용 부진과 소비 둔화에도 활기를 띠는 것은 엔비디아,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같은 대표 기업들이 인공지능(AI), 반도체, 로봇 등 첨단산업에 경쟁적으로 엄청난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도 과감한 규제 완화와 파격적인 감세로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처럼 관세를 무기로 기업을 끌어올 상황이 안 되면 미국보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기업들의 이탈을 막고 투자를 늘릴 유인책을 총동원해야 한다. 여러 부문의 균형 성장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미국 사례에서 보듯 성장의 중심은 생산과 투자를 책임지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전망하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대체로 1.8% 안팎이다. 정부는 2026년을 ‘모두가 성장하는 대도약의 원년’으로 정하고 목표치를 2.0%로 높여 잡았다. 전년보다 8.1% 늘어난 727조9000억원의 슈퍼예산과 634조원의 막대한 정책금융을 풀어 수출에 이어 내수까지 살리면 저성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올해가 이재명 정부의 사실상 집권 첫해인 만큼 성장률이 바닥을 치고 상승곡선을 그리는 성과물로 국민에게 평가받고 싶은 건 당연하다. 성장률을 높여 일자리를 늘리고 내수를 살려 경기 침체를 끝내려는 의지도 충만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산업과 기업을 키워내지 못하는 허약한 경제 체질을 그대로 둔 채 돈의 힘으로 성장률을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고 부작용도 크다. 인위적인 반짝 성장 뒤에 어김없이 찾아와 고통을 안겼던 버블 붕괴의 경험이 증명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개방형 경제인 한국에서 기록적인 수출 증가에도 성장률이 떨어진 진짜 이유는 잠재성장률의 추락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 경제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5% 안팎의 잠재성장률로 고성장이 가능한 기초체력을 갖췄지만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와 기업 투자 부진, 생산성 하락을 방치하면서 속수무책으로 체력이 고갈되는 상황을 맞았다. 2010년대 3%대, 2016~2020년 2%대 중반으로 하락한 뒤 현재 1%대 후반까지 내려간 것으로 추정된다.

한 나라의 경제가 부양책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잠재성장률이 바닥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성장판이 닫히고 있음을 의미한다. 1%대 잠재성장률로 고성장을 기대하는 건 공부를 하지 않아 문제를 풀 능력이 없는 학생이 편법과 꼼수로 점수를 올리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2021년(4.6%) 이후 한번도 3% 성장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은 잠재성장률을 감안하면 당연한 현상이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기업의 투자 의욕이 떨어지고 산업현장의 생산성이 퇴보했지만 눈앞의 지표에 매몰돼 구조개혁에 소홀했던 역대 정권의 직무유기성 태만이 차곡차곡 쌓여 생긴 결과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잠재성장률이 1%포인트씩 떨어졌다”는 자성이 이제야 나오는 것이 안타깝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구조개혁이 지체되면 2040년대에는 잠재성장률이 0%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단계가 되면 세수 기반 축소, 복지 부담 확대, 재정건전성 악화가 겹쳐 나라 살림이 쪼그라들고 민생이 기댈 언덕도 없어진다.

증시에 자금이 몰리고 수출이 ‘7000억 달러 클럽’에 진입했어도 잠재성장률이 1%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 경제의 실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현실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경제 재도약의 최적 경로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올해 성장률은 한국은행 예측대로 1.8%만 돼도 잠재성장률 범위에서 성장했다는 점에서 선방했다고 할 수 있다. 유동성 공급을 과도하게 늘리는 경기 부양으로 성장률을 무리하게 끌어올리다 보면 물가, 재정, 부채 등 부작용이 따르고 성장률 착시(錯視)를 부를 위험이 커진다.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이 가능하고 증시가 호황인 지금이야말로 구조개혁 숙제를 풀어나갈 절호의 기회다.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를 집약한 3·3·5비전(인공지능 3대 강국, 잠재성장률 3% 달성, G5 진입)에서 잠재성장률 회복을 강조한 것은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잠재성장률은 분기별 연도별 결산을 통해 수치로 드러나는 경제성장률과 달리 경제주체들의 피부에 와닿는 지표가 아니고 효과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난다는 점에서 당장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함정에서 벗어나 예전과 같은 성장 메커니즘을 되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관건은 실행력과 진정성이다. 창의적인 시도를 막는 규제를 없애 첨단산업과 혁신기업을 키우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정책과 입법의 엇박자를 줄여 예측 가능한 기업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3월 10일 시행을 앞둔 노란봉투법의 폐해를 줄이는 작업은 잠재성장률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

1980년대 중후반 고도성장기에는 10%를 넘나드는 성장률 덕택에 일자리가 늘어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규모가 커진 지금 그때와 같은 고도성장을 재현할 수는 없지만 경제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면 일자리 부족과 고용의 질 저하, 내수 침체 같은 고질병은 상당 부분 치유할 수 있다.

잠재성장률 3%는 한국이 저성장의 늪에 계속 갇힐지, 성장 궤도에 다시 진입할지를 가르는 기준선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코스피 5000 달성과 경기지사 시절 계곡 정비와 비교해 “부동산 정상화는 훨씬 쉽고 더 중요한 일”이라며 “표 계산 없이 국민을 믿고 비난을 감수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유불리에 흔들리지 않고 정책의 필요성만 보고 간다면 잠재성장률 3%는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충분히 넘을 수 있는 목표다.

코스피 5000을 이룬 정부와 잠재성장률 3%를 달성한 정부. 난이도로 보나 국가경제와 민생에 미치는 파급효과로 보나 잠재성장률 쪽이 훨씬 더 역사에 길이 남을 영예로운 훈장이다.

박원재 필자 주요 이력
▷핀란드 알토대 경영학석사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논설위원, 경제부장 ▷동아닷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 ▷경성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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