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61) 기둥을 치면 들보가 운다 - 방고측격(旁敲側擊)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2023년 4월 29일, 인천광역시 검단신도시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지하주차장 1, 2층의 슬래브가 한밤중에 연쇄적으로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완공 전에, 그것도 아무 작업이 없던 시간에 발생해서 천만다행으로 인명피해는 없었다. 입주 후에 무너졌다면 지하에 있는 주민들은 압사 가능성이 있었기에 하늘이 도운 거라고 모두들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이 붕괴사고는 수많은 아파트 거주자들에게 매머드급 충격을 안긴 '철근 빠진' 아파트 사태의 서막이었다. 

우리나라는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한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아 장만한다 하여 '영끌'이란 말이 생겨났을 만큼 아파트는 단순히 주거공간의 차원을 넘어 중산층 진입의 관문 역할을 하는 재산목록 1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아파트 시세에 따라 서열이 매겨진 '부동산 계급도'마저 떠돈다. 이 아파트 공화국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가 층간소음 문제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간의 갈등은 종종 칼부림으로 이어지고 살인까지 저지를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여러분들은 나라의 동량입니다." 졸업식이나 수료식 등의 축사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동량(棟梁)'은 기둥과 들보를 말한다. 기둥과 들보는 집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기둥이 없으면 집을 세울 수 없고 들보가 없으면 집이 무너진다. 집을 지탱하는 기둥과 들보처럼 사회와 나라를 떠받치는 인재를 동량지재, 줄여서 동량이라고 비유하는 이유다. 지하주차장이 무너진 아파트에 쓰인 공법이 '무량판 공법'이라고 한다. '무량(無梁)'이란 이름 그대로 들보 없이 기둥만으로 천장 하중을 지탱하는 첨단공법이다. 

무량판 공법은 보가 없어 층고를 높일 수 있고 공사기간이 단축된다. 층간소음을 줄이는 데도 효과가 커서 인기가 높다. 강남 부유층 아파트의 상징 타워팰리스도 이 공법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상부 슬라브의 하중을 지탱하는 보가 없는 구조여서 수직하중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따라서 기둥만으로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철근을 충분히 보강하는 게 필수다. 이 중요한 철근, 즉 전단보강근을 빼먹어 아파트 붕괴라는 후진국형 사고를 초래한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공법에 문제가 있어 아파트가 무너진 거 아니냐는 오해를 받아 무량판 공법으로 지은 전국의 아파트가 난리가 났다. 이른바 '무량판 포비아' 현상이다. 철근이 없는 기둥이 마치 뼈를 발라낸 살코기와 같다 하여 '순살아파트'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대중의 언어감각은 늘 감탄을 자아낸다. 공법은 죄가 없다. 부실한 시공과 감리가 문제일 뿐이다. 

들보를 없애면 왜 층간소음이 줄까? '기둥을 치면 들보가 운다'는 우리 속담에 힌트가 있다. 기둥을 치면 소리의 파장이 그대로 들보에 전달되어 울린다. 무량판 공법에서는 소리를 전달하는 매개체인 들보를 없앴으니 층간소음이 줄어드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기둥을 치면 들보가 운다는 표현에는 넌지시 돌려 말해도 알아들으니 직접 대놓고 탓하는 걸 삼가라는 지혜가 담겨 있다. 이와 통하는 중국 성어가 '방고측격(旁敲側擊)'이다. 곁(旁)에서 두드리고 옆(側)에서 치듯, 말이든 글이든 직접 따져 묻거나 정면으로 공격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 돌려말하거나 변죽을 울리듯 한다는 의미다

전국 시대, 제나라에 순우곤(淳于髡)이라는 대부가 있었다. 박학다식하기로 유명했던 그는 익살스럽고 변설에 능하여 평소 농담이나 반어법, 수수께끼 같은 암시를 이용해 왕의 잘못을 풍자하곤 했다. 기원전 349년, 초나라가 침략하자 제나라 왕이 조나라에 구원병을 청하면서 선물을 준비했는데 지나치게 약소했다. 사절로 가게 된 순우곤이 돼지 족발 하나와 술 한 잔만을 제물로 차려놓고 토지신에게 온갖 복을 달라고 비는 농부의 예를 들어 조나라에 대한 성의가 부족함을 왕이 스스로 깨닫게 했다. 이로부터 사람들이 순우곤의 화법을 일러 '방고측격'이라고 했다.

방고측격은 노골적인 충돌을 피하는 지혜로운 화법이지만 의도를 숨긴 채 에둘러치며 압박하는 교묘한 화법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도 공존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부처 업무보고나 공개 회의에서 자주 구사하는 화법, 즉 특정 인물을 직접 호명하지 않는 질책이 좋은 예다. 예컨대, “과거 정부에서 임명된 일부 기관장들의 인식이 아직도 바뀌지 않았다”는 발언에는 이름도 직책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직접 해임을 언급하지 않았어도 당사자는 거취에 대한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 논란에 대한 모호한 언급도 마찬가지다. 전면 이전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이전 논의가 끝났다’고 선을 긋지도 않았다. 삼성전자는 어찌 해야 할까?

방고측격은 손자병법의 '성동격서(聲東擊西)'와 개념적으로 통한다. 직언을 가급적 피하는 중국인들의 심성에도 부합한다.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일까, 우리는 돌려 말하기보다는 직설적으로 말하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그게 남자답다는 편견도 있다. 남자답게 말하자는 건 돌려 말하지 말자는 얘기와 동의어로 간주된다. 돌려 말하지 않을 때 우리는 흔히 '단도직입적'이란 표현을 쓴다. '단도직입(單刀直入)'은 여러 말을 늘어놓지 않고 바로 요점이나 본론을 말함을 이른다. 본래 용맹정진하는 수행방식을 뜻하는 불교용어에서 왔다. 단칼에 바로 찔러넣는 그림이 연상되는 단도직입은 매운 음식처럼 일단 화끈하다. 영화 '친구'에서 유오성이 친구 장동건에게 자객을 보내 죽이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기습적인 단도직입 복부 공격에 부산 조폭계의 패권을 노리던 장동건은 저항 한번 못하고 무너졌다. 

때로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효과적이기도 하지만, 완곡하게 에둘러 말하거나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넌지시 뜻을 전하는 게 대체로 설득력이 높다. 벽창호가 아닌 이상 간접적으로 말을 해도 웬만하면 알아듣는다. 기둥을 쳐도 대들보가 울고 변죽을 쳐도 복판이 운다. 당구도 고수일수록 쿠션을 이용한 돌려치기에 능하고 행동경제학에서도 '넛지효과'라는 게 있지 않은가.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는 뜻의 '넛지(nudge)'는 강요에 의하지 않고 유연하게 개입함으로써 선택을 유도하는 기법으로 방고측격과 상통한다.

남자들이 화장실에서 소변기 주변에 흘리는 오줌은 미화원들의 오랜 골칫거리다. 일을 보는데 여성미화원이 엉덩이를 빗자루로 툭툭 치며 좀 더 앞으로 다가서라는 무언의 압박을 해서 당황했다는 경험담이 회자되기도 했고,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라는 신파조의 문구도 한때 유행했다. 요즘은 "한걸음 더 앞으로 오세요. 작은 배려 감사합니다" 같은 연성형 문구가 대세지만 큰 효과는 없어 보인다. 그렇기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의 사례가 더욱 돋보인다. 이 공항에서 남자화장실의 모든 소변기 중앙에 파리 한 마리를 그려 넣었더니 놀랍게도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나 줄어들었다. 목표물이 있으면 일단 승부욕을 발동하는 남자들의 본능에 착안하여 파리를 겨냥한 '조준 사격'을 유도한 것이다. 그저 옆구리를 슬쩍 찔렀을 뿐인데 만국공통의 난제가 멋지게 해결되었다.

정치를 '말로 하는 예술'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은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다. 면전에서든 SNS에서든 가리지 않고 독설과 혐오의 언어를 내뱉는 정치 풍토는 예술과는 거리가 멀고 '말로 하는 전쟁'과 가까우니 말이다. 말의 품격만 갖춰도 우리나라 정치 수준은 몇 단계 높아질 게 분명하다. 아파트 층간소음 분쟁도 처음부터 칼부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감정 섞인 말을 대놓고 주고받다가 그리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현자일수록 직설적인 표현보다 은유와 상징을 즐긴 것도 불필요한 감정 소모와 갈등을 피하려는 심모원려이자 방고측격의 지혜가 아닐까?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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