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과 러시아워의 지하철
국립중앙박물관(NMK,National Museum Of KOREA)이 연간 관람객 650만 명(2025년 기준 추산) 돌파라는 경이로운 성과를 거두며, 이를 바탕으로 파리의 루브르, 바티칸 박물관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랐다고 한다. 이는 분명 고무적인 일임에 틀림이 없다. K-엔터에 이어 K-컬처의 위상 강화와 맞물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지표인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 과연 ‘방문객 수’란 단일 지표가 박물관의 위상을 결정짓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유네스코(UNESCO)나 산하의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와 제시하는 박물관의 정의와 표준은 단순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방문했는가’에 머물지 않는다. 박물관의 진정한 가치는 소장품의 관리, 연구의 깊이, 보존 역량,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기여도라는 복합적인 전문성 위에서 결정된다. 양적 팽창이 질적 성숙으로 이어지지 못할 때, ‘세계 몇 대’라는 수식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장 미구엘 팔로미르(Miguel Falomir,1966~)의 발언과 조치는 오직 관람객 숫자만 가지고 세계 3대 박물관 운운하는 우리를 머쓱하게 만든다. 그는 2025년 미술관 방문객이 역대 최고치인 350만 명을 기록하자, “미술관 관람이 러시아워의 지하철을 타는 것 같아서는 안 된다”며 “프라도 미술관은 더 이상 방문객이 필요하지 않다. 350만 명이면 충분하다”고 선언하고 양적 팽창보다 관람의 질을 우선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쾌적한 관람 환경 유지와 시설 과부하 해소를 위해 소위 ‘안피트리온 계획(Proyecto Anfitrión/Plan Host)’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의하면 입장 시간대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피크타임의 혼잡을 줄이며, 덜 붐비는 시간대를 선택하도록 관람객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미술관 내 동선을 최적화해 전시실 내 관객의 순환을 개선해 루브르 등 세계적인 미술관 박물관들이 겪고 있는 과잉 관광 문제를 해결하고, 문화유산 보호와 관람 경험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지속 가능한 모델로 전환을 의미한다.
‘양’보다 ‘질’
국립중앙박물관이 단순히 관람객 숫자를 내세우기 전에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들은 관람의 ‘양’보다는 ‘질’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사실 세계 3대 박물관의 반열에 들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장품의 질과 그 다음 양이다. 박물관의 정체성은 소장품의 희귀성, 대표성, 그리고 수집의 연속성에서 나온다. 단기적인 흥행 위주의 특별전이나 이벤트로 모객된 관람객 수는 소장품이 지닌 역사적 무게를 대체할 수 없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닌 컬렉션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이를 엄격한 윤리적 잣대로 관리하느냐가 세계적 박물관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보존 역량이다. 이는 미래 세대에 대한 박물관의 책임이다. 650만 명의 발길이 닿는 동안 우리 문화유산은 미세한 환경 변화와 물리적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적정한 항온·항습 시스템, 학예연구직 직렬이 아닌 박물관학에서 말하는 공식적인 전문 보존과학자 즉 컨서베이터(Conservator)의 확보, 그리고 장기적인 보존 예산 투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오늘의 관람객 증가는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문화유산의 수명을 가불 해 쓰는 것에 다름 아니다.박물관은 지식 생산의 허브로 전시 공간인 동시에 연구와 학술 활동을 통해 문화유산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곳으로 문화유산이라는 물리적 실체를 ‘지식’이라는 무형의 가치로 전환하는 핵심기관으로 전시 공간인 동시에 학술 기관이어야 한다. 연구가 없다면 문화유산은 ‘물건’에 지나지 않으며 ‘전시’는 단순한 ‘나열’에 그치게 된다. 따라서 박물관은 국제 공동연구를 주도하고, 수준 높은 학술 출판물을 정기적으로 발행하며, 새로운 담론을 형성할 때 비로소 국제 박물관계의 ‘리더’로 인정받는다. 내부 연구 역량이 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홍보는 알맹이 없는 포장에 그칠 위험이 크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와의 유대를 강화하고,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시공간을 초월한 디지털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도 오늘날 박물관의 필수 덕목이다. 특히 단순히 관람객을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라, 지식의 공유와 확산에 능동적으로 참여시키는 거버넌스를 통해 단 한 명의 외로운 관람객도 전시실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디테일에 집중하는 “포용적 전시 운영 정책”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이제 ‘수치 이상의 신뢰’를 구축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보존시설과 인력 확충과 분야별 학예전문 인력 충원에 전력을 다하고, 유물의 국제 대여 및 교류를 활성화해 한국 문화의 독창성을 세계 박물관 네트워크의 핵심으로 들고 들어가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소장품 가치를 데이터로 투명하게 공개하고, 연구 성과를 지표화하며, 재원을 다각화하여 정치·경제적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관람객 수 중심의 박물관의 위상은 자칫 박물관이 직면한 질적 개선의 과제들을 가리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 ‘세계적 위상’은 스스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남들이 인정하는 제도적 완결성과 축적된 역량 끝에 자연스럽게 부여되는 명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650만이라는 숫자를 넘어, 인류의 기억을 지키는 가장 신뢰받는 전당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박물관의 놀이공원화?
사실 650만이란 관객 동원은 성과주의에 매몰된 박물관 운영과 무료입장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박물관이 관람객 유치에 집중하면서 세계 몇 위와 같은 순위에 집중하면서 박물관 본연의 임무인 수집, 보존, 연구보다는 대중의 이목을 끌 만한 휘발성 강한 콘텐츠 제공에 치중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소위 ‘사유의 방’이나 감각적 디자인의 기념품은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는 유물의 역사적 맥락이나 심층적인 학술 연구 결과보다는 시각적 경험과 소비 중심의 문화에 편승한 결과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박물관이 단순한 ‘문화 플랫폼’이나 ‘오락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는 박물관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사실 ‘사유의 방’ 같은 ‘감각적 전시 기법’은 박물관 문턱을 낮추는 성과를 냈지만, 문화유산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역사적 맥락’을 단절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사유의 방 내외부에는 문화유산의 명칭, 제작 시기, 불교적 배경 등에 대한 설명이 최소화되어 있어 두 점의 반가사유상이 지닌 학술적 차이와 역사성을 설명하기보다는 시각적 분위기에만 침잠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자 고대사의 핵심 유물인 불상을 단순히 미학적 대상화를 통해 ‘아름다운 오브제’나 ‘힐링 아이템’으로 소비하게 함으로써, 문화유산의 종교적·문화적 위상을 약화시키고, 어두운 조명과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공간을 스펙터클화함으로서 소셜 미디어(SNS)에 최적화된 ‘인증샷 성지’를 만들었다. 따라서 관객은 문화유산 자체의 심오한 의미보다는 세련된 공간 경험을 인증하는 데 집중해, 박물관이 ‘오락 공간’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경주박물관의 ‘신라 금관특별전’이나 부여박물관의 백제금동대향로 전용 전시관인 ‘백제대향로관’을 마련해 박물관 전시의 기본인 맥락화(Contextualization)에서 벗어나 걸작을 활용한 관객유인에 급급하고 있다. 사실 박물관 전시는 기본적으로 소장품의 조사연구를 통해 “특정한 사실의 중심에서 시작해 그 정황에 대한 관심을 넓혀가며 연구의 초점인 사건과 활동을 체계화해 그와 관련된 환경 내에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는 점에서 원칙을 저버리고있는 것이다.
이는 박물관이 교육과 연구라는 본질적 가치보다 대중의 재미, 자극, 그리고 관람객 수 또는 수익성에 몰입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오늘날의 박물관은 대중화란 이름으로 ‘지식’보다 ‘자극’을 선호하는 전시 연출을 선호한다. 특히 문화유산 자체의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기보다는 화려한 조명, 대형 스크린, 인터랙티브 영상 등 기술 자체의 화려함이나 대중적 인기나 재미에 영합해 예술 본연의 가치는 사라진 ‘유사 미디어 아트’라는 이름의 ‘몰입형 기술(Immersive Art)’을 사용해 시각적 효과에 치중한다. 따라서 관람객은 문화유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만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능동적인 주체인 ‘학습자’가 아닌 구경꾼인 ‘관객’으로 만든다. 이때 문화유산이 지닌 역사와 예술성은 거세되고, 대중이 소비하기 좋은 가볍고 흥미 위주의 가공된 이야기만 강조된다.
전시 기획 단계부터 홍보 효과를 염두에 두고 ‘사진 찍기 좋은 지점’을 설정함으로써 관람객은 문화유산과 대화하기보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전시를 소비하면서 깊이 있는 사유가 단절로 이어져 박물관은 포토존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래서 모든 관람객이 똑같은 구도에서 사진을 찍고 공유해 박물관이 제공해야 할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영감을 저해한다. 때로는 박물관 방문목적이 문화유산 감상보다 기념품 구매일 경우도 있다. 문화유산을 캐릭터화하거나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구입욕구를 자극하고자 문화유산에 담긴 종교적·민속적 엄숙함이 훼손될 경우도 있다. 결국 관람객 수와 매출액이 박물관 평가의 절대적 지표가 되면서, 예산과 인력이 학술 연구보다는 대형 이벤트와 마케팅에 우선 배정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결국 이런 현상은 박물관의 정체성 위기로 나타난다. 박물관이 놀이공원과 경쟁하려 할수록, 박물관만이 대중들에게 줄 수 있는 ‘진정성'은 사라진다. 놀이공원은 가상의 세계를 팔지만, 박물관은 ‘진짜’와 그것의 고상하고 독특한 분위기 즉 아우라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곳이기 때문이다. 박물관의 공공성이 상업적 논리에 밀려날 때, 박물관은 더 이상 사회의 지적 자산이 아닌 일회성 소비 공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박물관이 대중성을 확보하면서도 지적 권위를 잃지 않으려면, 재미의 요소가 반드시 학술적 고증이라는 뼈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
본질에 충실한 박물관
박물관의 가장 기초적인 기능은 유물의 수집과 보존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학술적 연구이다. 즉 미술박물관을 포함한 박물관은 모두 학술 가치 중심의 운영이 전제되어야 한다. 전시가 단순한 볼거리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도 전문 학예연구원을 통한 심도 있는 선행연구와 이를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하여 관람객에게 깊이 있는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 이와 함께 유행에 편승하기보다 국가나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문화유산 즉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기록해 후대에 전승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박물관은 학교 밖의 대표적인 ‘사회 교육 기관’이자 ‘평생교육기관’이다. 따라서 단순한 ‘체험’이나 ‘오락’을 넘어선 ‘즐거운 배움’을 제공해야 할 책무가 있다.특히 문화유산을 매개로 과거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관람객이 현재의 시점에서 의미를 찾고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참여형 역사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한다. 여기에 어린이, 노인, 소수자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포용적 가치를 지향하는 전략적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이와 함께 성과 지표의 다각화를 통해 질적 평가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관람객 수’로 박물관의 성공을 평가하는 성과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히 관람객이 전시를 통해 얻은 만족도, 지식 습득의 정도, 정서적 교감 등 관람 경험의 질을 평가하는 질적 성과 지표를 도입해 운영 목표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재정 자립과 공공성의 균형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수익을 위한 상업적 활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박물관의 공익적 목적과 설립 취지를 훼손하지 않도록 엄격한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 결국 박물관은 즐거움을 제공하되, 그 즐거움은 반드시 ‘학문적 발견과 교육’이라는 기초 위에 세워질 때 비로소 올바른 박물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미술관과 박물관의 본질을 둘러싼 논의가 더욱 요동치는 이유는 박물관이 ‘성과’라는 열매에 매우 오염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관객 동원, 소셜 미디어 노출도, 전시의 ‘입소문’ 가능성, 박물관 샵 매출 같은 지표들이 박물관을 평가하는 잣대로 떠오르면서, 예술은 점차 콘텐츠화되어 소비의 한 항목으로 환원되는 위험에 직면했다. 따라서 최근 식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미술박물관을 비롯한 박물관의 역할은 단순히 ‘콘텐츠’를 생산·배포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예술의 관계적·시간적 가치를 보존하고 확장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우선 박물관에서 중요한 것은 문화유산이나 미술품을 ‘과거의 잔재’ 또는 ‘결과물로서의 사후적 존재’라는 ‘포스트(Post)’로 만 보지 않는 태도다. 문화유산이나 미술품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 즉 결과로 보지 않고, 현재에도 살아 움직이며 새로운 관계를 맺고 가치가 확장되는 ‘진행형의 존재’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미술품은 작가의 에너지와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해석이 만나며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다. 박물관의 학예연구원은 단순한 전시 기획자가 아니라, 이 의미의 통로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큐레이팅은 작품을 진열하는 행위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도록 장을 여는 일이다. 큐레이터의 해석은 하나의 관점일 뿐이며, 관객의 해석과 동등하게 존중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또한 ‘공공’의 개념을 재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박물관을 중심으로 모든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전통적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문화유산이나 미술품은 가정의 식탁, 지역 커뮤니티, 수집가의 거실 등 다양한 장소에서 세대 간 기억과 대화를 이어간다. 기관은 이런 다층적 생태계의 한 축으로서 연결자가 될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즉 기관과 독립적 조직, 개인 수집가, 커뮤니티가 서로 함께 작동할 때 문화유산이나 미술품의 의미는 더욱 풍부해진다.
접근성에 대한 논의도 재고되어야 한다. 단순한 무료입장이나 이벤트로 접근성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진정한 접근성은 기관이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스스로 맞추는 능력이다. 이는 제도 내부의 언어와 관행을 해체하고, 다양한 진입점을 설계하는 일로 이어가야 한다. 여러 포인트에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정렬(Alignment)’ 즉 박물관이 일방적으로 문턱을 낮추는 수준을 넘어, 대중의 삶이라는 궤도 위에 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나란히 놓는 근본적인 변화를 말한다.
수집과 감상에 대한 태도 역시 세상과 함께 변하고 있다. 수집은 권력자나 부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돌봄과 애정의 행위이다. 할머니의 자개장, 집안의 기념품처럼 개인의 삶 속에서 예술은 이미 수집되고 있다. 큐레이터와 비평가는 다시금 ‘감식안’의 본래 의미로 돌아가, 작가와 작품을 사랑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회복해야 한다. 이는 문화유산이나 예술품을 단순한 자산이 아닌 관계의 매개로 보는 시선이다.
마지막으로 제도는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제도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제도 내부의 사람들과 협력해 새로운 방법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목적이 문화유산의 내력이나 작가의 경력 서술에만 머물지 않고, 유산의 의미와 가치 또는 작가의 사유와 경험을 드러내는 데까지 확장될 때 관객과의 진정한 대화가 시작된다. 결국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미래는 콘텐츠의 확산이 아니라 관계의 심화에 달려 있다. 문화유산이나 작품과 사람, 장소가 맺는 다층적 연결을 설계하고 보존하는 기관만이 예술의 본질을 지키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전할 수 있다. 따라서 미술관과 박물관은 더 이상 단순한 전시장의 역할을 넘어, 기억을 이어주고 대화를 촉발하는 공공의 장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박물관의 위상을 ‘질’로 정하는 국제적 지표
박물관의 위상과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하기 위해 가장 널리 사용되는 지표로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박물관협의회(ICOM)가 제시하는 기준이 있다. 이 기준은 관람객 수보다는 ‘질적 전문성’으로 박물관을 평가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물론 우리 박물관과 미술관의 진정한 평가를 위해서 그리고 국가공인제도의 내실있는 운영을 위해서도 질적인 성과 지표를 살펴보자.우선 핵심 국제 표준 지표(International Standard Metrics)에 의하면 과거에는 단순 방문객 수나 소장품 규모를 중시했으나, 현재는 박물관 주요성과 지표(ISO)를 통해 다각도로 평가하고 있다. 우선 연간 총방문객 수는 여전히 중요한 성과 지표다. 하지만 단순한 관람객 수뿐만 아니라, 인구 대비 방문 비율, 방문객 만족도, 재방문율 등을 중요하게 측정한다. 또 자원 및 관리의 효율성을 평가하기 위해 예산 대비 운영 비용 즉 방문객 1인당 비용, 조직 구성의 전문성, 재정적 자립도 등도 평가대상이다.
여기에 소장유물의 관리 상태, 디지털화 비율, 연간 학술 연구 및 출판 성과를 포함하는 소장품 연구 성과도 포함된다. 그리고 교육 프로그램의 실시 횟수 및 참가자 수, 특별 전시 개최 실적 등이 주요 지표 중 하나다.
이후 2022년 ICOM 프라하 총회에서 새롭게 규정한 박물관의 정의에 따라 사회적 영향력이 박물관 위상 결정의 핵심 지표로 부상했다. 따라서 박물관의 접근성과 포용성 즉 장애우의 접근성, 다문화 교육 이니셔티브, 다양한 계층의 참여도는 중요한 지표다. 특히 기후위기 대응 및 지속가능개발 목표(SDGs)의 전략적 반영 정도 등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소장품 수집의 윤리적 절차(Ethical sourcing) 및 지역사회와의 능동적인 상호작용 등도 박물관의 위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지표다.
박물관이 진정한 세계적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관리해야 또 다른 의미의 질적 성과 지표는 지식을 생산하는 ‘연구소’라는 박물관 본연의 임무 수행을 통해 나타나는 국제 학술 영향력 지표(Research Impact)이다. 이는 박물관의 학예연구원을 비롯한 전문직원들의 연구성과 즉 논문이 국제적인 학술지나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의 등재지에 얼마나 게재되었으며 또 그 논문이 얼마나 국내외에서 인용되었는가 하는 것이 관람객 수보다 중요하다. 또 스미스소니안이나 영국박물관 같은 해외 유수 기관과 공동 진행한 연구, 보존 처리, 발굴 또는 소장품 해제 작업 건수 등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컬렉션 활용 및 이동성 지표(Collection Mobility)도 박물관 평가의 중요한 지표중 하나다. 이는 소장품이 박물관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 박물관 네트워크에서 얼마나 많은 ‘러브콜’ 즉 대여요청을 받고 대출해 주느냐는 것으로 이는 박물관 소장유물의 질적 가치의 증거가 된다. 특히 해외 대출 및 순회 전시 횟수 즉 국보급 유물이 해외 기획전에 초대받는 횟수는 해당 컬렉션의 국제적 위상을 대변한다. 여기에 국제박물관협의회(ICOM)가 강조하는 지표인, 고해상도 아카이브의 공개 범위와 이를 활용한 2차 연구, 저작물 생성 건수가 측정지표로 활용된다. 다음은 소장유물을 미래 세대에 온전히 전달하는 ‘금고’이자 ‘병원’으로서의 능력 즉 보존 및 관리 전문성이 지표가 된다.
특히 보존 과학자와 큐레이터 한 명당 담당하는 유물 수가 적정해야 세밀한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문 인력 1인당 관리 유물 수도 매우 중요한 지표이다. 또 전시실과 수장고의 항온·항습 데이터가 국제 보존 기준을 365일 동안 얼마나 충족하는지에 대한 수치인 환경 관리 준수율도 중요하다.
다음은 교육 및 사회적 포용성 지표(Educational Inclusion)로 박물관이 지역사회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측정하는 것이다. 여기에 취약계층 접근성과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즉 장애인, 외국인, 다문화 가정 등을 위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의 비중과 만족도, 재방문율 및 체류 시간 즉 단순히 한 번 스쳐 지나가는 650만 인파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방문해 관람이란 학습행위를 하는 ‘충성 관람객’의 비율도 지표의 하나다. 마지막으로 재정 자립 및 거버넌스 지표이다. 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구조적 안정성을 의미한다. 특히 정부 예산 외에 민간 기부금, 메세나, 자체 문화상품 개발 수익 등의 재원 다각화 비중과 유네스코나 국제 박물관 관련 단체나 기관으로부터 받은 외부 평가, 인증 및 수상 실적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질적 지표들은 ‘박물관 연례 보고서(Annual Report)’를 통해 대중과 전문가 집단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수집과 감상에 대한 태도 역시 변하고 있다. 수집은 더 이상 박물관이란 국가의 다락방 수장용이나 지배계급 아니 부호,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라, 돌봄과 애정의 행위다. 할머니의 자개장, 집안의 기념품처럼 개인의 삶 속에서 예술은 이미 수집되고 있다. 따라서 박물관과 큐레이터는 다시금 ‘감식안(Connoisseurship)’의 본래 의미로 돌아가, 문화유산이나 작가 또는 작품을 사랑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회복해야 한다. 이는 문화유산이나 작품을 단순한 자산이 아닌 관계의 매개로 보는 시선을 회복하는 것이다.
제도나 시스템은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제도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제도 내부의 사람들과 협력해 새로운 방법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전시의 목적이 관객들의 호기심이나 눈요기에 머물거나 작가의 위대한 경력이나 유명한 이름의 서술에만 머물지 않고, 문화유산이나 작품이 지닌 사유와 경험을 드러내는 데까지 확장될 때 관객과의 진정한 대화가 가능해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박물관과 미술관의 미래는 콘텐츠의 확산이 아니라 관계의 심화에 달려 있다. 작품과 사람, 장소가 맺는 다층적 연결을 설계하고 보존하는 기관만이 예술의 본질을 지키며, 더 많은 사람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전할 수 있다. 따라서 박물관과 미술관은 더 이상 단순한 전시장의 역할을 넘어, 기억을 이어주고 대화를 촉발하는 공공의 장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실은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이 세계 정상급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받는 지표는 ‘관람객’ 숫자가 아니라 ‘디지털 역량’과 ‘보존과학 전문성’, 그리고 최근 급성장한 ‘문화상품 파워’이다. 루브르나 영국박물관 같은 유서 깊은 기관과 비교할 때 우위를 점하는 부분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역사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기(ICT) 기술을 접목해 만든 디지털 박물관 분야에서 세계적 표준을 선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e-뮤지엄’을 통해 약 200만 건 이상의 전국 국공립 박물관 소장품 데이터를 통합 제공함으서 물리적 전시 공간의 한계를 넘어, 유럽 연합(EU)이 주도하는 통합 디지털 문화유산 플랫폼인 ‘유로피아나(Europeana)’를 능가하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 고해상도 디지털 복원 기술을 활용해 ‘파노라마 실감 영상’은 UNESCO에서도 차세대 박물관 모델로 주목받을 만큼 하드웨어와 콘텐츠 면에서 루브르, 영국박물관 등 전통적 박물관보다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실감영상’이 전통적인 ‘박물관다움’의 틀을 깨 흥미를 유발함으로써 관람객 확대에 기여했지만, 한편으로는 과하게 모든 것을 실감영상화하는 것은 문제다. 특히 화려한 전자기술에 비해 내러티브나 영상 언어의 표현이 빈약한 것은 문제다. 현란한 기술적 완성도에 치중해 전시의 본질인 ‘메시지’가 사라지고 영상만 남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은 문제다. 또한 VR 기기나 3D 안경 착용 시 발생하는 어지러움, 피로감 등의 신체적 불편을 해소할 방법도 필요하다.
특히 높은 구축 및 유지비용은 문제다. 고성능 장비와 소프트웨어의 비용과 기술의 발전에 따른 지속적인 콘텐츠 업데이트, 기기 관리 등은 박물관의 부담이란 점에서 그리고 아우라 없는 박물관을 만들어 ‘진품’이 사라진 박물관을 만들 위험이 있다. 즉 벤야민이 말한 유물의 “지금 그리고 여기(hic et nunc)”라는 고유한 역사적 시공간은 사라지고, 오직 정교하게 계산된 데이터의 재현(Simulation)만 남게 되어 “시각적 소비의 장소”로 전락하는 문제에 대해 이를 선도해온 박물관으로서 해결책을 고만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중앙박물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유물 복원과 보존 과학 기술이다. 이는 아시아 박물관 중에서는 독보적인 수준을 인정받고 있는데 세계 박물관 중 드물게 대형 문화재 전용 산업용 컴퓨터단층촬영기(CT, Computed Tomography)를 보유하고 유산의 비파괴 분석을 통해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등 분석 역량은 스미소니언 보존 센터와 대등한 수준으로 평가를 받는다. 다만 여전히 보존과학자들의 직렬과 직제없이 학예연구원이란 직렬 묶여있는 점은 이런 평가를 무색하게 하는 대목이다. 아무튼 박물관의 보존과학기술은 베트남, 카자흐스탄 등 아시아 국가들에 보존 기술을 전수하는 ‘박물관 ODA’ 사업으로 이어지며 아시아 지역의 보존과학 기술의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세 번째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로 대표되는 기념상품 열풍은 박물관의 사회적 영향력을 측정하는 지표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뮤지엄숍의 매출과 브랜딩은 대중성 측면에서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비즈니스 모델에 근접하고 있다. 이는 관람객을 단순 방문자에서 문화 향유자로 전환한 질적 성과로 평가되지만, 수익사업을 할 수 없는 문화부 산하의 ‘일반행정기관’의 하나인 박물관이 ‘문화재단’이란 편법적인 기구를 통해 수익사업을 하는 것은 하루빨리 시정될 부분이다.
반면, ‘해외 소장품의 다양성’과 ‘글로벌 학술 인용 지수’에서는 여전히 열세이다. 이는 인류 문명 전체를 아우르는 컬렉션을 보유한 루브르나 영국박물관에 비해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학 중심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원래 국립중앙박물관 설립 당시 연간 적정 입장객 수를 200~250만으로 잡고 설계된 건축물이다. 따라서 지금의 650만은 적어도 2~3배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는 것으로 혼잡도가 이미 건물의 수용능력을 넘어선 것으로, 적어도 방문은 가능하지만 ‘감상을 통한 사유’는 불가능한수준이다. 그래서 더더욱 프라도미술관의 ‘호스트 플랜(Plan Host)’이 설득력을 얻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 국립중앙박물관과 산하 13개 국립지방박물관이 진정한 세계적으로 ‘질’을 인정받는 박물관으로 거듭나려면 우선 소장유물의 지속적인 확대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연구 성과와 전시의 유기적 결합이 필요하다. 지금같은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것이나 스펙타클한 전시연출로 시각적인 재미를 제공하기 보다는 최신 고고학, 미술사학의 연구 성과를 반영한 심도 있는 기획전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이런 기획전을 통해 박물관이 살아있는 학문 연구의 중심지임을 증명해 내야 한다. 특히 감각적인 ‘사유의 방’이나 ‘백제대향로관’, 권력과 위신이 사라진 “신라금관, 권력과 위신”전처럼 일회성 경험으로 끝나는 전시가 아니라, 문화유산, 유물의 심층적 의미를 이해시키는 전문 해설 및 교육 콘텐츠를 강화해야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단순 방문’을 ‘의미 있는 학습 경험’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입장료 유료화 문제도 단순한 수익 확보 차원이 아니라, 전시의 질을 높이고 유물을 보존하는 “지속 가능한 연구 환경 조성”을 위한 투자라는 관점에서 투명하게 논의하고 설득해야 한다. 지금처럼 국립박물관이나 미술관 입장료 수입은 스스로 번 돈을 스스로 쓸 수 없는 구조이다. 즉 입장료 수입은 일반회계로 국고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로부터 세금으로 예산을 받는 행정적 성격의 공공기관(Établissement public à caractère administratif, EPA)으로 독립된 법인격과 재정 자율성을 지닌 루브르는 총 입장료 수입의 20%를 무조건 새로운 소장품 구입을 위해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박물관 재정 자립을 위한 핵심 자원이 되고 있다. 따라서 현행제도 아래서 입장료를 징수한다는 것은 국가의 수입만 증대시킬 뿐 박물관의 소장품 수집이나 연구, 전시 등에 도움이 안된다. 따라서 입장료 징수문제는 ‘수입’의 사용에 대한 문제까지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국고 여입하면, 입장료 징수는 하나 마나다.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이 나아가야 할 길은 숫자의 함정에서 벗어나, 양적 성장과 질적 심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이제 관람객 수라는 허상에 깨어나 해외 유수 박물관과 공동 연구나 유물 교류 등 국제 학술 네트워크에서의 영향력을 키워 질적인 위상을 공고히 해야 할 때이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동시에 학계의 존경을 받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적 문화 권위를 확보하는 것이 다음 시대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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