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부산시장 "해사법원 항소심, 반드시 부산 전담해야"

  • 부산·인천 이원화 수용하지만 기능 비어선 안 돼

  • 해수부 이전 맞물린 해사 사법체계 개편

  • 부산이 축적해온 15년 논리, 여야 합의로 흔들릴까

그래픽박연진 기자
[그래픽=박연진 기자]

해사법원의 부산 설치가 여야 합의를 거쳐 부산·인천 이원화로 정리되자, 부산 지역에서 다시 긴장이 감돌고 있다.

가장 먼저 해사법원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해사 사건이 발생하는 부산이 정작 ‘정치적 절충’의 현장으로 밀려난 것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러한 우려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그는 “해사법원은 부산 시민의 오랜 염원이었고, 한국 해사 사법체계의 중심이 서야 할 도시 역시 부산”이라며 “그럼에도 여야가 지지부진한 협상 끝에 본원을 두 곳으로 나누면서 부산의 15년 노력이 정치적 표 계산에 희생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 통계를 보면 박 시장의 문제 제기는 상당 부분 근거를 가진다.

전국 해사 사건의 약 45%가 부산지방법원 관할에서 처리되고 있으며, 선박·조선·물류·보험이 결합된 복합 사건 특성상 전문 인력과 기관도 대부분 부산에 집중돼 있다. 

해양수산부 산하 공공기관, 한국해양대학교와 부경대를 비롯한 해양 특화 교육기관, 조선·해양플랜트 산업, 해운·물류 기업 등이 집적된 구조는 부산을 해사 사건의 ‘자연적 관할지’로 만든다는 평가가 많다. 

부산이 2009년부터 해사법원 유치를 공식 요구해 왔고, 15년간 시민사회와 경제계가 공동 캠페인을 이어온 배경도 이 때문이다.

그는 “해사법원이 가장 먼저 요구된 곳이 부산이고 실제로 가장 필요한 곳도 부산인데, 왜 부산이 정치적 타협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도 “대승적 차원에서 이원화 자체는 받아들인다”고 말하며 갈등 확산을 경계했다.

박 시장이 항소심을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명확하다.

국내 대기업·금융기관·보험사의 70~90%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대형 법무법인 역시 서울에 몰려 있다.

해사 사건은 그 성격상 복잡한 대기업 분쟁·보험 분쟁이 많아, 2심 재판부가 수도권에도 있다면 사건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수도권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는 이를 두고 “이건 기울어진 운동장 정도가 아니라 아예 벼랑처럼 깎아지른 운동장”이라고 표현했다.

부산에 해사법원이 생기더라도 실질적 사건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껍데기 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부산 시민사회 역시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항소심 부산 일원화가 아니면 해사법원 설치의 본래 목적이 실종된다”고 주장해 왔다.

박 시장은 해사법원 조기 개원 필요성도 강조했다. 현재 국내 해사 사건 상당수가 런던·싱가포르·홍콩 등 해외 중재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그 비용이 연 30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업계에선 일반적이다.

그는 “법원이 없어서 해외로 나가는 돈이 이 정도인데, 청사를 짓고 수년 뒤에야 여는 방식은 너무 한가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20세기 초까지 독립 청사 없이 운영됐던 사례를 언급하며 “법원의 위신은 건물이 아니라 시민에게 얼마나 신속하고 전문적인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존 부산 법원 시설을 활용해 곧바로 해사법원을 출범시키는 것이 매년 해외로 빠져나가는 막대한 비용을 막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부산이 해사법원을 요구해 온 배경에는 분명한 현실이 있다.

한국 최대 항만인 부산항을 중심으로 해운물류·조선·해양에너지·해양금융 기능이 집약돼 있고, 해양 전문 인력과 교육기관이 한 도시 안에 집중된 구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사실상 국가의 해양 사법 기능이 이곳에서 작동해야 하는 근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셈이다.

박 시장은 “부산은 이미 해사사법체계가 자리 잡아야 할 도시적 기반을 충분히 갖춘 곳”이라며 “정부와 여당이 항소심의 부산 일원화를 추진해 해양수도 부산 공약이 실천 의지를 가진 약속임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역 이익을 넘어 한국 해사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국가적 과제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무게가 실린다.

정치권 합의로 해사법원 설치 논의는 일단 진전됐지만, 부산이 기대한 ‘해양사법 허브’ 구상이 실질 기능을 갖출 수 있을지는 항소심 구조에 달려 있다.

부산의 전문 사건을 부산에서 다루고, 전국 해사사건의 사법적 중심성을 확보하느냐 여부는 앞으로의 입법 과정에서 결론난다.

박형준 시장의 메시지는 이번 논의의 핵심을 정확히 겨냥한다. 그는 “부산은 이원화를 받아들였지만, 핵심 기능이 빠진 구조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그가 제시한 문제의식은 부산의 자존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해양수도 부산의 위상, 국가 사법 체계의 균형 발전, 해사산업의 국제경쟁력이라는 세 축이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국가 물류의 관문이자 해양산업의 중심지인 부산이 항소심 기능까지 전담해야 한다는 요구는 이러한 구조적 배경에서 나온다.

이번 해사법원 설치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결론 날지, 부산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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