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윤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전략·정보학과 겸임교수]
최근 일본에서 최초로 여성 총리에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는 “여자 아베”라고 불리는 강경 보수 성향의 정치인이다. 신임 총리 선출을 앞두고,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유지해왔던 공명당이 관계 단절을 요구하여 한때 다카이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자민당이 극우 색채를 가진 일본유신회와 손을 잡아 다카이치가 총리에 당선되었다.
친한 성향의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는 한일관계 발전에 관심을 기울였다. 반면 다카이치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해왔던 인물인데다, 외무상에 극우 성향을 띤 모테기 도시미쓰를 기용하였으며, 방위비를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2%로 증액할 것을 목표로 정하였다. 신임 일본 총리는 일본판 CIA인 국가정보국 창설 검토를 지시하였으며 친 대만 성향을 보인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 가을에 열린 야스쿠니 신사 제사에는 참석하지 않았으며, “한국 화장품을 쓰고 있다. 한국 드라마를 본다”며 한국에 호감을 표명하고 있다. 또한, “한일관계의 중요성이 한층 커지고 있으며,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다”고 발언하고 있어 지속적인 한일 협력관계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으로 본다.
3국 정상들은 한반도와 동북아지역 평화를 위해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 체계가 중요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2023년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윤석열 정부, 기시다 후미오 정부와 함께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 체계를 구축하였다. 역대 미 정부는 동북아지역에서 한·미·일 삼각 안보 체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번번이 불편한 한일관계로 인해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발전적인 한일관계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점은 일본의 독도 망언, 일본 교과서 역사 왜곡,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강제징용 문제,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이었다. 일제 강점기는 한국 국민에 뼈아픈 역사다. 일본 극우 정치인들이 반성하지 않고 이것을 들먹이며 한국을 자극할 경우, 한국 국민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한일관계가 험난했던 시기는 진보 정권인 문재인 정부와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정부 시절이었다. 당시 트럼프 1기 정부는 아베 정부와 밀월관계를 유지했으며, 문재인 정부의 지원 속에서 미북정상회담에 주력하였다. 문 정부는 일제 강제징용이라는 과거 역사 문제를 놓고 일본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 아베 정부의 잘못된 역사 인식 때문이었다. 2019년 7월 아베 총리가 한국을 상대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라는 경제보복까지 단행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문재인 정부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결정으로 일본에 맞대응하여 트럼프 1기 정부의 우려를 촉발하는 등 논란이 많았다. 한일관계는 최악이었으며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진보 성향을 띈 이재명 정부가 지난 6월 출범하여 한일관계가 과거로 뒷걸음질하는 것 아닌지 걱정했다. 그러나 우려했던 것과 달리, 현 정부가 이시바 전 정부와 세 차례나 한일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발전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행스럽다.
미 정부는 미일동맹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린치핀(lynchpin·핵심축)이라고 불렀으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이후 한미동맹을 린치핀으로 비유하기 시작했다. 린치핀은 외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미·일 3국이 동북아지역에서 삼각 안보협력 체계를 발전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한일관계가 필요하다. 한·미·일 안보협력의 핵심축으로 한일관계를 표현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국제정세를 “신냉전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하고 있다. 동북아지역에서 한·미·일 삼각 안보 협력체계와 북·중·러 삼각동맹 관계 간에 대결 구도가 조성되어 있으며,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그동안 비핵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핵 무력 강화에 집중해왔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고도화와 신형 전략무기 개발에 주력하면서, 한국과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은 2024년 6월 북·러 군사조약을 체결한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 군병력을 파병함에 따라 국제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다. 북한·러시아는 UN의 대북 제재를 노골적으로 위반하면서 군사적으로 밀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9월 3일 중국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서 중국 시진핑 주석, 러시아 푸틴 대통령,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나란히 선 모습이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북·중·러가 힘을 합쳐 트럼프를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에 맞서겠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북·중·러 3국 밀착은 안정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하는데 공감대를 조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중패권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트럼프 1기에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봉쇄정책으로 발전되었으며, 현재 트럼프 2기에서도 시진핑 정부와 치열한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강해질수록 미국과 일본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일본은 동북아지역에서 중국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기에 동북아지역은 물론 인도·태평양지역에서 미 정부의 대중국 봉쇄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일본은 중국 견제를 위해 만들어진 쿼드(Quad) 회원국이다. 아베 전 수상은 일찍부터 중국의 군사력 확장에 맞서기 위해 미국과 함께 호주, 인도로 외교 역량을 확대해왔다. 일본도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고 중국·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안보협력 체계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APEC 회의에 참석하여 곧 이재명 대통령과 만나게 된다. 이재명 정부와 이시바 전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왔던 셔틀 외교가 다카이치 정부로 계속 이어져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되길 바란다. 한국과 일본은 안정적인 한일관계를 기반으로 한·미·일 삼각 안보 협력체계를 더욱 강화하여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지역 평화에 이바지하길 기대한다.
엄태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국어대 국제관계학 박사 △Pace 대학 경영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 △주 보스턴 총영사관 영사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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