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선출된 권력 우위'는 위험한 착각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헌법학)]
   
 
최근 대법원장 청문회 및 대법원 국정감사에 대해 날카로운 견해 대립이 있다. 한편에서는 대법원이라 해서 치외법권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법부 독립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과연 두 가지 주장은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일까?

전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민주권과 더불어 선출된 권력의 우위를 내세우고 있다. 국민이 주권자이며,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국회나 대통령이 임명된 권력인 사법부의 상위에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나왔던 이런 논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민주당이 주장했지만 헌법학계에서는 삼권분립 위반, 사법권 독립 침해 등으로 비판받은 것이기도 하다.

선출된 권력이 임명된 권력보다 우위라는 주장에는 세 가지 모순이 있다. 

첫째, 선출된 권력이란 곧 위임된 권력이다. 즉,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권한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널리 살펴보아도 선출된 권력이 위임의 범위를 벗어나 독재적 권력이 된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가까이는 독일의 히틀러가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 집권했으나 결국 전체주의에 빠진 것이나, 국민의 압도적 지지로 통과되었던 유신헌법이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헌법으로 일컬어지는 것도 그런 사례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선출된 권력이고 민주적 권력이기 때문에 통제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근대 시민혁명의 시기에 삼권분립 폐지 주장이 나왔으나 결국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대표자들도 권한을 오남용하는 사례들이 많았고, 이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이 인정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마치 선출된 권력은 훨씬 정의로운 것처럼 말하는 것은 역사적 경험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둘째, 위임된 권력은 위임하는 사람의 의사를 따라야 한다. 물론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 주권자인 국민이 국회나 대통령에게 개별적으로 위임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현대 민주주의가 자유위임의 원칙에 기반한 대의제 민주주의로 운용되고 있는 것도 현실적으로 국민들이 개별적으로 대표자들에게 지시하는 것(즉, 기속위임)은 현대의 국가사무가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전문적인 사안에 대해 잘 모르는 국민들이 결정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의 이익에 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론정치에 대해 비판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민 여론에 따라 정책이 수시로 바뀌게 되면 국정의 안정성과 계속성이 흔들리며, 심각한 경우에는 법치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도 기준도 없이 오로지 다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라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베네수엘라 등을 망하게 만들었던 포퓰리즘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나 대통령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것들에 대한 기준을 정한 것이 바로 국민의사의 직접적 표현인 헌법이다. 단순히 최고법이라고 이름을 붙여서가 아니라, 국민이 헌법의 제정 및 개정을 결정하는 주체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경험과 현시대 국민들의 공감대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것이 헌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헌법에서 삼권분립을 규정하고, 헌법에서 사법권의 독립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선출된 권력의 우위를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다.

셋째, 삼권분립은 그 탄생부터 권력의 집중 및 이로 인한 오남용을 막기 위한 것이었고, 그로 인해 삼권분립의 핵심이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을 각기 독립된 기관이 담당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이들 삼권 간에는 견제와 균형이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삼권의 대등성을 전제로만 가능한 것이다.

초기의 삼권분립은 세력 균형의 이론이었다. 군주세력과 그가 담당하는 행정부, 시민세력과 이를 대표하는 입법부, 그리고 법복귀족들이 담당하던 사법부가 어느 한쪽도 절대적 우위를 갖지 못하고 균형을 이루도록 함으로써 권력 오남용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비록 근대 시민혁명을 통해 국민주권이 관철되었고, 군주세력과 귀족세력은 몰락했지만 삼권분립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런데 선출된 권력이 우위라는 주장은 사실상 사법부 독립의 침해를 넘어 삼권분립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제왕적 국회와 제왕적 대통령이 한 몸인 상황에서 사법부에 의한 통제마저 불가능해진다면 사실상 권력 집중이고 독재 아닌가?
 
여기서 한 가지만 더 짚어 보자. 대통령도 선출된 권력이고 국회도 선출된 권력인데, 양자의 우열관계는 어떻게 될까?

지금 당장은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국회가 한 팀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불과 몇 달 전 윤석열 정부에서는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국회의 충돌이 문제되지 않았던가? 이럴 때 무엇을 기준으로 국회 또는 대통령의 우위를 판단해야 할까? 아니, 어느 한쪽의 우위를 판단하는 것이 맞기는 한가? 

삼권분립은 현실적 힘의 균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위로서 삼권이 균형을 유지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현실 속에서 어느 기관의 힘이 강하다고 해서 삼권분립이 포기될 수는 없다. 계속 살인 등 불법이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해서 살인죄 등에 대한 처벌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삼권분립에서 삼권의 균형이 크게 흐트러진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현대 행정국가화로 인하여 행정부의 조직과 인력, 권한과 활동 범위가 크게 확장될 수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정당 국가화로 인하여 입법부와 행정부가 정당을 매개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불가피한 현실이 삼권분립의 포기를 요구하는 것일까?

이미 오래전부터 삼권분립의 현대적 형태는 삼권의 크기의 균형이 아니라 통제의 실질화를 통한 권한 오남용의 방지에 있는 것으로 재구성되었다. 국회가 입법권에 못지않게 국정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이나 헌법재판의 도입 등으로 사법부에 의한 각종 통제를 강화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 결과가 수백만의 공무원을 거느린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파면된 일이었다. 그런데 선출된 권력이 우위라는 주장은 위헌적으로 사법부의 통제 기능을 마비시키고 결국 독재적 권력을 만들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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