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①] "반짝이지 않아도 괜찮다"… 김민지의 단단한 고백

아나운서에서 엄마, 아내, 그리고 작가로 이어지는 여러 이름 속에서 김민지는 결국 ‘김민지’라는 본래의 자신을 마주했다. 그는 사회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반짝임이 없어도 삶은 충분히 의미 있고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전하고 있다.

아이들과의 일상을 기록하며 얻은 작은 평안, 엄마가 된 뒤 처음 느껴본 “이대로도 좋다”는 감각, 그리고 좌절 속에서도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운 힘까지. 김민지는 런던의 조용한 일상 속에서 오랫동안 붙들고 바라본 생각들을 글로 옮겼다. 반짝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그의 고백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로이자 용기다.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김민지 작가 사진 샘터
김민지 작가 [사진= 샘터]


‘반짝이지 않아도 잘 지냅니다’ 소개부탁드린다. 이 제목을 처음 떠올리게 된 순간이 있으셨나  
-‘반짝이지 않아도 잘 지냅니다’는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하는 반짝이는 것들 말고도 소중한 것이 있다고 이야기 하는 책이디.   
책에 수록된 글 가운데 버지니아 울프의 ‘서두를 일 없이, 반짝일 필요 없이, 우리는 우리 자신 외에는 다른 누군가가 될 필요가 없다’는 문구를 인용한 글이 있다. 살다 보면 스스로가 충분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지 않나. 왜 난 이런 사람일까, 왜 더 나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 누가 뭐라고 할 때 보다 스스로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제일 슬픈 거 같거든요.우리가 반짝일 필요가 없고 다른 누군가가 될 필요 없다는 것을 서로서로 말해 주면 어떨까 싶은 마음으로 제목으로 삼았다.    
         
         
아나운서, 엄마, 아내라는 타이틀이 아닌 ‘김민지’로 자신을 써내려간 이유는 무엇인가   
- 타이틀은 어떤 사람을 소개 하는 데 있어서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지만 그만큼 오해를 유발하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 중 누구도 한가지 역할에 고정 된 채로 영원히 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저 역시도 학생 이었다가 직장인이었다가 엄마가 되는 등의 다양한 역할과 책임들이 있어 왔지만 그것들을 칼같이 나누고 분리 하는 것은 애초에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모든 경험과 그 역할들을 포함한 총합이 저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책에서 그 모든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됐다.    
         
책 속에서 ‘바다가 되는 것’이라는 표현이 인상 깊었다. 엄마가 된 이후, 가장 크게 변한 점은 무엇인가   
- ‘이대로도 좋다’ 라고 자주 느낀다는 점인 것 같다. 항상 무언가 되어야 한다거나 무언가 뭔가를 향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서는 그런 어떤 사회나 세상에서 인정해 주는 성취 나 성공 같은 것들이 더 이상 탐나지 않았다. 아무도 몰라 줘도 괜찮다. 이대로 무언가 다른 것이 될 필요가 없는, 저 자체로 그냥 어떤 커다란 세상이 된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고 정말 소중해 잊고 싶지 않아 글로 남기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한 일상 중, 글로 남겨서 가장 잘했다 싶은 순간은 언제였나. 언제 기록의 힘을  느끼나            
- 무언가를 기록 하는 일은 저에게는 일상과 같다. 어떤 경험을 통해 유의미한 감정을 느끼거나 제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고 싶을 때 수시로 메모장을 켜서 메모를 한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반추하며 글이라는 형태로 치환 하는 과정이 그 일을 제대로 소화하고 충분히 경험 하게 해주는 것 같다.   
         
         
육아 중 벅차거나 지칠 때,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운 생각이나 태도는 무엇이었나      
-‘다행이도 내 앞에는 수많은 날들이 있고 그 날들을 살아갈 수많은 내가 있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 수많은 날들 중에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을 수 있지만, 불만족스러운 날에 따르는 후회와 아쉬움은 사실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의미이므로 내가 나의 부족함을 인정 한다면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날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런던에서의 생활이 글쓰기나 사고방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 런던에서는 저희가 워낙 조용한 동네에서 지내고 있기도 하고 아주 최소한의 친구들과 최소한의 일정 만을 소화 하며 지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경험을하거나 뭔가 느끼는 것이 있으면 그 일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보기도 하고 저렇게 보기도 하고, 이 입장과 저 입장을 고려해 보고, 그러다 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기도 하더라.   
         
‘반짝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확신은 어떻게 생겼나. 사회의 기대와 비교에서 자유로워지는 연 습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 저도 알고 싶지 않았다(웃음). 저도 제가 굉장히 반짝일 줄 알았다. 근데 생각보다 그렇게 잘 안되더라. 다양한 원인들이 있다. 능력이 기대만 못해서 체력이 달려서 타이밍이 안 맞아서 등등 말이다. 그런데 사회에서도 바라고 저 스스로도 기대했던 모습대로 되지 않더라도 잘 지낼 수는 있더라. 좌절을 겪을 때마다 그 일을 제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잘 지내는 데는 문제가 없나는 것을 알게 됐다.   
         
하루하루의 작고 사소한 순간들을 오래 기억하는 본인만의 습관이나 루틴이 있나   
- 저는 약간의 저장 기록 강박이 있는 거 같거든요. 심각한 편은 아니지만 사진도 많이 찍고 동영상도 많이 찍어서 스토리지가 감당을 못 할 정도다. 메모는 거의 1000개 가까이 되는데 분명히 뭔가 또렷한 감정을 느꼈기에 메모를 했을텐데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까맣게 잊어버린 경우가 많다.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쓰다가만 글도 다시 읽으면 새롭게 와 닿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혹시 힘들거나 괴로운 상황에 놓여도 이또한 지나갈 것이고 흐려 질 것이라는 것을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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